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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박씨 Feb 22. 2019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아이의 등장

아이를 통해 낯선 세상을 읽다 - 8

제나 & 스테파니

프리스쿨은 두 개의 반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재하반 선생님은 2명의 담당 선생님과 1명의 보조선생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나는 마닐라에서 공부를 하고 왔을 정도로 다른 나라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30대 초반의 백인 여자 선생님이었다. 이후에 안 사실이지만 프리스쿨 선생님 외에도 여러 다른 일들을 겸하고 있었는데 한 가지는 요가 강사, 또 한 가지는 맥주 전문점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것이었다. 

스테파니는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역시 백인 여선생님이었다. 제나에 비하면 좀 더 활달하고 발랄한 유학생활 중 종종 보아왔던 밝은 여대생의 모습이었다. 둘을 굳이 비교하자면 제나는 좀 더 포근하게 아이들을 품어주는 역할이라면 스테파니는 교실을 좀 더 생기 있게 해주는 역할이랄까.

뛰지마. 넘어져 재하야.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아이의 등장

그 당시 재하는 한국말로 더듬더듬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는 정도였다. 영어는 당연히 하지 못했다. 6개월 간의 생활 탓인지 이제 막 '영어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외국인을 구분하는 수준이었다. 

재하의 등장은 프리스쿨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낯선 곳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재하에게도 다른 나라 언어를 사용하는 학생을 둔 선생님들에게도. 

이후에 안 사실이지만 때때로 재하의 표현을 이해하지 못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두 선생이 함께 상의했었다더라. 때로는 그림을 그려서 알려줘야 했을 것이고, 제스처, 표정 등등 여러 소통의 도구를 시도해봤을 것이다. 재하가 말하는 한국말을 이해해보려고 했을 테고 재하 역시 그들의 표정을 통해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렇게 재하는 여느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게 소통의 첫걸음을 떼고 있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친구의 등장 

프리스쿨로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길은 내가 일하고 있는 오피스 주차장과 연결된 작은 언덕을 통해 이어져있다. 아침에 언덕을 내려가 학교에 재하를 내려다 주고 3시쯤이 되면 회사에서 잠시 나와 재하를 데리러 학교로 간다. 이 언덕을 오고 가는 길 재하와 같은 반 친구들과 그들의 부모를 만나게 된다. 

재하를 데려다 주던 언덕길

'하이페샤'라는 이름의 친구의 부모는 밴드에 있는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스페니쉬를 가르치고 있다. 어느 날 재하를 데리고 차로 가는 언덕길에서 그들과 잠시의 대화를 나눴는데 지난밤 하이페샤와 아빠가 나눈 대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이페샤, 너도 스페인에 갔을 때 스페인어를 몰라서 대화하는데 어려웠던 기억이 있지? 네이튼도 똑같아.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이해해줘야 해.'


참 고마운 이야기였다. 말을 하지 못하는 낯선 친구의 등장을 아빠에게 이야기했을 때 이해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길 조언하는 그들의 대화에 따스함이 묻어났다. 그렇게 재하는 오래지 않아 학교내 유명인사가 되었다. 언덕길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우리를 단번에 네이튼의 부모인지 알아보았다. 따뜻한 인사를 건냈다. 그 따스함은 재하의 첫걸음을 잔뜩 긴장한 채 바라보던 우리를 한결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지역의 특성에 따라 인종에 대한 차별 또는 선입견은 존재한다. 다양한 인종이 거주하는 베이 지역이나 엘에이 같은 곳에서는 많은 다민족들을 볼 수 있고 그들의 공동체를 만날 수 있다. 그로 인해 직접적인 차별로부터는 좀 거리를 둘 수 있을지 모른다. 또 다른 인종의 경험이 적은 중부 지역이나 백인 중심으로 구성된 지역에서는 그들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다름으로 인해 관심을 받게 되어있고 때로 그 관심은 불편한 감정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밴드는 다소 특별한 곳이다. 백인의 구성이 90% 이상인 사회이지만 사회 구성원의 많은 수는 대도시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경험은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간극을 없애준다. 우리의 타인에 대한 차별은 낯섦에서 오는 두려움으로 부터 자신 또는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에서 비롯된다. 내가 소속된 사회 안에서 습득된 정보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낯섦을 통해 오는 두려움을 설렘 또는 기대로 바꿀 때 그 경험의 축적이 타인을 이해하는 배려로 연결될 것이다. 그렇게 세상의 온기가 서로를 통해 유지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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