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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마 Jan 17. 2022

아침 출근길의 30분짜리 쉼터, 첫 번째 주

아침 출근길의 30분짜리 쉼터

아침 출근길에 글을 써보기로 다짐했습니다. 최근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면 “나를 담아낸 글 그리고 내가 남긴 생각과 마음이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빌며 글을 씁니다.”라는 글쓰기의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매일 아침 새벽에 작성된 이 글은 매주 토요일에 발행할 예정입니다. 한 젊은 청년의 생각과 마음이 담긴 글, 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당신에게 도움이 되기를..


첫 번째 월요일, 세월


한 때 SNS에 돌아다녔던 29살 취준생의 지식인 글에 달린 답글을 아시나요?, 인생은 지겹고 기운도 없고 우울감에 빠진 취준생에게 한 지식인이 달아준 글입니다.


4시에 지하철 역으로 가세요.. 그리고 1, 3호선을 타세요.. 2호선도 좋고요.. 그렇게 한 바퀴 쭉~~ 도세요. 뭐가 보이느냐면요.. 요즘같이 추워지는 날에는 두꺼운 옷 잘 바쳐 입은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가득 타고 계세요..

출퇴근 시간이 아닌데도 그렇게 꽉 차요.. 그분들 어디 가시는 줄 아세요..??? 다들 먹고살기 위해 일하러 가세요.. 제가 24살 때 제대하고 양천구 국제 우체국에서 4개월 정도 밤 9시부터 새벽 4시 정도까지 알바를 했어요.. 퇴근할 때 5시 못되어서 첫 지하철 타니까.. 깜짝 놀랐어요..

사람이 가득해서.. 다들 일하러 나가시는 바쁘게 사시는 분들 보고.. 저는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7시 정도 아니 6시 30분 정도 되면요... 지하철 역 바깥쪽이나 안쪽에 김밥 파시는 분들 많이 계셔요.. 샌드위치 파시는 분들도 있고요.. 젊은 사람들 꽤 많아요.. 아시겠지만... 그거 팔려면 새벽 완전 새벽부터 일어나서 싸야 하든가 아니면 잠 못 자던가 그래요..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참 많아요..


이 글을 처음 본 건 꽤나 어릴 때였던 것 같습니다. 대학생 시절 밤새도록 놀고 다음날 오후에 눈을 떠 처음 본 글이 이 글이었습니다. 새벽까지 노는 것 또한 스무 살 대학생의 의무 중 하나라며 잠깐의 죄책감을 뒤로한 채 다시 새벽까지 나가 놀기 바빴지요.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부랴부랴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 무척이나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득 저 글이 생각났지요. 스무 살의 하노마는 시간이 흘러 질문자와 같은 고민을 거쳐 답변 글 속에 나오는 직장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언젠가 세월이 흘러 저 답변을 달아주는 누군가의 모습이 되어있기도 하겠죠? 돈을 많이 벌어 좋은 차와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삶, 사회가 성공이라 말해주는 삶, 그런 삶보다는 한 청년의 고민에 공감하고 힘내라고,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세월을 보낼 수 있길 빌어봅니다.


첫 번째 화요일, 나의 불가사리


요즘 퇴근길에는 故 장영희 교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고 있습니다. 책 속에서는 '나의 불가사리'라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나의 불가사리'는 장영희 교수가 어디선가 읽은 일화로 소개되지요.


거센 폭풍우가 지나간 바닷가에서 아침이 왔다. 어젯밤 폭풍우로 바다에서 밀려온 불가사리들이 백사장을 덮었다. 태양이 천천히 잿빛 구름을 뚫고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한 남자가 해변을 걷고 있는데 열 살 정도의 어린 소년 하나가 무엇인가를 바다 쪽으로 계속 던지고 있었다.

남자가 다가가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소년이 답했다. "이제 곧 해가 높이 뜨면 뜨거워지잖아요. 그럼 여기 있는 불가사리들이 모두 태양열에 죽게 될 테니까 하나씩 바닷속으로.."
남자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소년을 보고 말했다. "얘야, 이 해변을 봐라. 폭풍우로 밀려온 불가사리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 많은데 네가 하는 일이 무슨 도움이 되겠니?"

소년은 아닌 게 아니라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듯, 잠시 하던 일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문득 다시 불가사리 하나를 집어 힘껏 바다를 향해 던졌다. 불가사리는 첨벙 소리와 함께 시원스럽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소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적어도 제가 방금 바닷속으로 던진 저 불가사리에게는 도움이 되었겠지요."

(장영희 교수) '무더기' 불가사리 중에서 요행히 그 소년이 바닷속으로 보내준 그 불가사리는 생명을 건진 셈이다. 그리고 그런 불가사리가 하나씩 둘씩 모이면 결국 '무더기' 불가사리가 되는 것이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 한다는데 그깟 한 명 도와준다고 세상 달라질 것 있나 했던 새각은 '무더기 환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무더기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아가는데 익숙한 내가 한, 참으로 알량한 생각이었다.

올해 내 계획은 주변의 '무더기' 사람들, '무더기' 학생들 중에서 한 명씩 끄집어내서 '나의 불가사리'로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무더기 환자'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내 소망이다.


지난주는 교육으로 출근시간이 고정되어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출근을 했습니다. 게다가 평소 여유를 두고 출근을 하는 편이라 회사에 도착하면 많게는 1시간, 적게는 40분 정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도착해서도 충분히 시간이 있으니, ‘지하철 한 개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여유를 갖고 출근할 수 있었죠.


에어팟을 끼고 환승통로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찾아 헤매시는 할머니가 급하게 지하철을 타러 가는 한 여성분을 붙잡고 길을 묻고 있었죠. 하지만 이번 지하철을 꼭 타야 하는 것 같았던 그 여성 분은 죄송하다고 자기도 모른다고 고개를 꾸벅하고는 빠른 발걸음을 이어갔습니다.


얼핏 들으니 지하철 방향을 헷갈려 잘못 들어오신 거였습니다. 평소와 다른 길로 출근을 해 이쪽 길은 잘 모르기에 “괜히 잘못 알려드리지 말고 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두세 걸음 옮겼을 때 즈음, “적어도 비상게이트를 통해 직원을 연결해줄 수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걸음을 되돌려 할머니를 모시고 비상게이트에서 직원을 연결해드렸습니다. 한 할머니가 방향을 헷갈리셔서 잘못 찍고 오셨는데 반대로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자, 직원분도 아주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잘 나가시는 걸 보고는 다시 가던 길을 갔지요.


평소보다 늦게 출근해 한 시가 급했더라면, 저도 그 여성분처럼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었겠죠?, 여유롭게 출발한 덕분에 곤경에 처한 할머니를 도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마음에 여유가 생길 때면, 그 여유를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보다 여유롭게,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그러면 저도 인생의 '무더기' 속에서 '불가사리'를 찾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첫 번째 수요일, 재택근무


오늘은 재택근무를 하는 날입니다(그래서 사실 밀린 수요일치를 목요일 출근 때 쓰고 있습니다). 덕분에 전 날 저녁 친구들과 잠깐 만남을 갖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평소보다 잠을 조금 더 잘 수 있으니 마음에도 여유가 좀 생긴 것 같습니다. 방역지침으로 못 가던 운동도 다녀올 수 있는 날입니다.


아침엔 버스에서 지하철로, 지하철에서 또 다른 지하철로 옮기는 피곤함을 겪지 않아도 됩니다. 점심엔 식당을 고민하고 부랴부랴 이동해서 밥을 먹고 오는 귀찮음도 덜을 수 있죠. 저녁엔 줄인 이동시간만큼 평소 못하던 휴식을 취하거나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죠.


코로나로 많은 회사가 앞당겨 재택근무를 시행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재택근무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마치 “회사는 무조건 얼굴을 보면서 일해야지!, 그래야 의사소통이 되지!”하는 시대가 이미 지난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얼굴 보며 일하는 회사를 다닌 세대와 재택근무에 익숙해져 버린 세대의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요.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주 6일제가 5일제로 바뀌며 꽤나 많은 반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나라 망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하지요. 하지만 어느덧 주 5일제가 주 4.5일이 되고, 주 4일을 시행하는 회사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이라면 언젠가 나라 전체가 주 4일을 시행하는 그런 날이 올 것 같기도 합니다. 재택근무도 마찬가지겠지요. 재택근무가 불가한 특정 산업군도 언젠가는 방법을 찾아내 재택근무를 도입하고, 그렇게 사람들이 조금 더 여유를 찾아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혹은 재택근무를 못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수많은 우려 속에도 우리가 주 5일제를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4.5, 4일도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재택근무도 언젠가 그런 인식이 되어서 우리 삶에 조금 더 여유를 가져다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여유가 가족 친지, 지인, 사회에 나눠질 수 있었으면 더욱더 좋겠지요.


첫 번째 목요일, 아침 출근길의 풍경


지하철역을 내려 회사까지 꽤나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많은 분들이 버스를 타고 회사 근처에 내려 걸어가곤 합니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일하다 보니 운동량이 몹시 적어질 것 같아 "조금이라도 걷자"라는 생각으로 약 15-20분 거리를 늘 걸어갑니다.


걷다 보면 많은 풍경을 마주칩니다. 어둑했던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다리 밑 하천에 안개가 끼어있기도 합니다. 이른 시간임에도 빙판길 위를 뛸 수밖에 없는 직장인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입김을 호호 불며 어딘가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기도 하죠. 콩나물시루만큼은 아니더라도 사람이 꽤나 가득해 보이는 버스가 지나가기도 합니다.


"오늘도 해가 떴구나.", "날이 추웠나?", "오늘 중요한 발표가 있어 저렇게 뛰어가는 걸까, 넘어질 것 같은데..?!", "좀 더 바람을 막을만한 곳에서 버스를 태울 순 없었나?" 등.. 풍경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덧 회사에 도착합니다.


여러 생각 중 늘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저렇게 사람이 바글바글한 버스에 끼여 학교를 갔던 적이 있었는데, 저 사람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었겠지.. 대학에서도, 사회에 나와서도.." 참 슬픈 생각입니다. 힘겹게 힘겹게 학창 시절을 버텨내 대학에 가서 까지도 사람에 끼여 강의를 들으러 가고, 다시 사회에 나와서도 아침마다 또 사람에 끼여 회사에 가야 하니깐요. 대중교통이 아니더라도 늘어진 자동차 행렬 속에서 회사로 향하는 건 마찬가지겠지요.


어린 시절엔 학교를 마치면 놀이터로 나가 뛰어놀고 흙을 잔뜩 묻히다가 "OO아 밥 먹으러 들어와라~!" 하는 어머니의 소리를 듣곤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때만큼은 어떤 부담감도 없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나이가 들며 콩나물시루 같은 곳에서 조금 더 잘난 콩나물이 되려고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가끔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이가 들어 후손들에게도 "어린 시절을 즐겨라, 결국 나이가 들면 좀 더 잘난 콩나물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얘기하게 될까요?, 절대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가 행복한 일을 찾아, 행복한 누군가를 만나, 콩나물시루 속이 아니더라도 산속에 마구잡이로 피어있는 산나물도 좋고, 들판에 피어있는 민들레가 되어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살아온 인생이 콩나물시루 속이었고, 살아갈 인생도 콩나물시루 속이 될 것만 같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렇게 살면 콩나물시루 속에 콩나물이 되는 거란다"라고 얘기해 줄 순 있겠네요.


첫 번째 금요일, 어머니의 밥상과 나태주의 풀꽃


새벽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부랴부랴 옷을 입고 늦지 않게 버스를 타려면 아침은 항상 거르기 마련입니다. 아침잠 5분이 아침밥보다 달콤해서 절대 양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할 땐 아침을 챙겨 먹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점심시간에 배도 좀 덜 고프고 정신도 조금 더 말짱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커피를 마셔도 깨지 않는 정신이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다 보면 금세 차려지기도 합니다.


이립(而立) 기초를 세우는 나이라는 서른, 공자는 서른이 되어 자립을 했다고 하는 데 서른이 넘은 저는 아직도 아침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 어머니가 차려준 아침밥을 얻어먹습니다. 쓰다 보니 정말로 불효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20살이 되어 29살에 집으로 들어와 어머니의 밥을 본격적으로 얻어먹었으니, 이제 3년 차에 돌입하는 셈입니다.


어머니는 제가 아침밥을 먹을 때면 늘 물으십니다. "어때, 맛있지? 오늘은 이걸 이렇게 해봤어.", "오늘은 뭐가 좀 다르지 않아?, 뭘 더 넣어봤어." 정작 얻어먹는 아들은 아침에 할 일을 정리해야 하고 지난밤 퇴근 후 생긴 일을 쳐다보느라 "어 맛있네, " 하고는 점심이 되도록 일만 하곤 했지요.


그러다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어 차려준 음식을 조금 더 음미하고 더 잘 표현해드리고 싶어 좀 더 집중해서 음식을 들여다봤습니다. 막 올라간 듯 보이는 야채는 자세히 보면 한 곳에 몰려있지 않고 이곳저곳에 퍼져 어딜 씹더라도 맛을 낼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골고루 펼쳐진 치즈는 토스트의 풍미를 더해주고 있었지요. 그리고 자세히 보면 모르고 지나칠 법한, 겉만 바삭하게 익혀진 빵까지.


쳐다보기 전까진 잘 몰랐던 어머니의 음식이었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생각났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매일 먹다 보니 당연해져 버린 어머니의 음식도 자세히 보면 참 예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그 음식을 만들어오며 사랑을 담아주셔서 그런지, 사랑스럽기도 합니다. 당연하다고 여긴 부모님의 사랑처럼요. 내일 아침엔 꼭, 어머니께 이런 말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음식이 참 사랑스럽네, 꼭 엄마처럼"


글을 쓰다 보니 출근시간이 어찌나 짧은 지, 길다고 툴툴대던 그 시간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재택근무를 하고는 그 마음이 사라졌지만요).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면 잠을 좀 더 자기 위해 글을 쓰는 둥 마는 둥 한 적도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재택이더라도 글 쓰는 시간만큼은 꼭 가져보려고 합니다. 울적했던 출근길이 조금 더 즐거워졌습니다. 잠들기 전이면 "내일은 이런 얘길 써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느라 조금은 들뜨기도 합니다.


올해 꼭 이루고 싶은 이 글쓰기가 꼭 성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결국 토요일이 아닌 월요일이 되어서야 글을 발행합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노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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