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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마 May 22. 2022

놓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핸드폰을 놓으면, 그리고 고개를 들면

핸드폰 없이 보내는 일상이라니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누군가의 연락을 받지도,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지도 못하니 얼마나 답답할까요? 


어제 우연치 않게 핸드폰을 놓고 운동을 갔습니다. 숙취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운동 갈 준비를 마치니, 곧 버스가 올 시간이었습니다. 행여나 버스를 놓칠까 정신없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겨우겨우 버스에 몸을 싣고 교통카드를 찍고 나서야, '아.. 핸드폰을 놓고 왔구나' 깨달았지요. 핸드폰이 없는 답답함 보다, 운동에 늦어 제대로 운동하지 못할 제 자신이 더 답답할 것 같아 과감히 핸드폰을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체육관으로 향했습니다.


풍경


핸드폰을 놓고 버스에 타니 평소 귀에서 절대 빠지지 않던 에어팟도 정말 콩나물에 불과했습니다. 노래도 못 듣고, 영상도 보지 못하니 무얼 해야 하나.. 하던 찰나 숙취와 함께 찾아온 멀미 덕분에 버스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 1달 만에 가는 토요일 운동길, 핸드폰도 없는 제가 불쌍했는지 다행히 날씨는 좋았습니다. 토요일 오전이 이렇게도 밝았나, 언제 계절이 흘러 나무가 이렇게도 푸르러졌나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버스는 제가 내려야 할 곳에 도착했습니다. 


선물


운동이 끝나고 숙취를 해결하러 해장국집으로 향했습니다. 함께 운동한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해장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향했습니다. 야속하게도 마을버스가 점심시간에 걸려, 꽤나 긴 시간을 밖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영상도 못 보고, 음악도 못 들으니 자연스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데, 남들보다 조금 느린 종종걸음으로 한 손엔 드라이플라워 꽃다발을 들고 가시는 할아버지가 보였습니다. 그 꽃은 할머니, 혹은 가족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꽃이었겠지요? 종종걸음에도 꽃다발을 꼭 쥔 그 손을 보며 내심 할머니께 선물하는 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선 젊은 시절 어떤 분이셨을까요? 비록 무뚝뚝하지만 가끔 툭-하고는 꽃다발을 건넬 줄 아는 남편이셨을까요, 아니면 꽃을 좋아하는 부인을 생각하며 꽃집을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로맨틱 가이였을까요? 무엇이 되었든 꽃집 앞에 서 부인이 좋아할 꽃을 생각하다 고민 끝에 작은 꽃다발을 하나 들고 가는 그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겠지요.


횡단보도를 건너고 버스를 타러 가는 데, 이제 갓 전역을 마쳤을 법한 젊은 청년이 보였습니다. 꽃다발을 들고 다니는 게 부끄러운 지 다발을 아래로 향한 체, 허벅지 옆에 숨기려는 듯 걷는 청년이었습니다. 저 청년도 마찬가지였겠지요? 꽃집 앞에 서 이 꽃이 좋을지, 저 꽃이 좋을지, 무슨 색 꽃이 좋을지, 또 꽃다발은 어느 정도 크기가 적당할지 고민하며 꽃을 골랐을 겁니다. 


큰 꽃다발, 이쁜 시계, 이쁜 신발, 화려한 옷.. 그 무엇이 되었든 선물이 소중한 이유는 그 선물을 고르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받을 이를 생각하며 고민하고 또 고민한 그 이쁜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지요. 종종걸음으로 소중하게 꼭 쥐고 가는 할아버지의 꽃다발에도, 부끄러운 듯 아래로 향한 체 애써 숨기며 지나가는 청년의 꽃다발에도, 받을 이를 위한 소중한 마음이 담겨있었을 겁니다.


도움


버스 시간이 한참 남아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떼우고 있었습니다. 경사가 가파른 길이었는데 한 할머니가 꽈당하고는 뒤로 넘어지셨지요. '도와드리러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던 찰나, 할머니보다 앞서가던 한 청년이 넘어지는 것을 보고는 고민도 하지 않고 뒤돌아 할머니를 도우러 갔습니다.


그 청년은 조금 어색한 발음으로 "괜찮아요?" 묻고는 할머니를 도와 일으켜 드리고, 가파른 경사가 끝날 때까지 부축해드렸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계시던 분들도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할머니셨는데 그 청년에게 '아휴 정말 고마워요'라며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그 청년은 할머니의 "이제 괜찮다"는 말을 듣고서야, 부축해드리던 팔을 놓고 다시 자기 무리로 돌아갔습니다.


"괜찮아요?"가 어색하게 들렸던 이유는 그 청년이 외국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앳되 보이는 얼굴의 청년은 마치 이런 일이 익숙한 듯,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할머니를 도왔습니다. 나라를 떠나 먼 타국에서 한치의 고민도 하지 않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그 마음이 무척이나 멋있었고, 잠시나마 고민하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청년의 삶은 어땠을까요? 무슨 이유로 먼 한국까지 와 고생하며 공부하고, 일하고, 그렇게 지내는 걸까요? 제 생각과 달리 청년은 고생하지도 않고, 무척이나 풍족한 삶을 살지도 모릅니다. 고생하며 공부하고, 일한다는 것도 저의 편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마음은 정말이나 풍족하다는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를 보고 고민하지 않고 도울 수 있는 그런 마음, 그런 마음이 정말 풍족한 마음이 아닐까요?


고개를 들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핸드폰을 놓고 나와 고개를 드니 미처 신경 쓰지 못하던 것들이 보이고, 평소 하지 못하던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핸드폰을 놓아서 일지, 아니면 숙이고 다니던 고개를 들어서 일지.. 아무래도 후자가 맞는 거 겠지요?


내일이면 주말이 끝나고 다시 또 한 주가 시작됩니다. 대중교통을 타고 간다면 한 번쯤 창문 바깥 풍경을, 자차를 타고 회사에 간다면 차를 타러 나가는 길의 풍경을 한번쯤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요?


작지만 아름답고 멋진 것들을 그냥 지나치고 지내진 않았을까요?, 글을 읽은 여러분의 하루가 평소보다 조금 더 아름답고 멋지길 빌어봅니다.


핸드폰을 놓고, 고개를 들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조금 따뜻한 하루였습니다. 녹음이 우거진 풍경과 아름답고 멋있는 것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 내일은 글을 꼭 써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적어봤습니다. 출퇴근길에 하나씩 글을 써 모아 일주일에 한 편 글을 발행하겠다던 다짐은 처참히 무너져버렸지만, 그래도 아직 글을 쓰려는 마음은 조금 남아있나 봅니다.


다음엔 또 어떤 따뜻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제 눈에 들어올지 궁금해집니다.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 모두 따뜻한 한 주,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는 한 주가 되시길 빕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하노마 드림.


*Main Photo by Edi Libedinsky on Unsplash


추신. 아!, 저도 마음을 담아 꽃을 한 송이 선물했습니다. :)

거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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