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틋한 일상에 리듬감을 주고 싶을 때 글을 쓴다. 손으로 일기도 쓰고,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은 옮겨 적는다. 모르는 단어를 받아 적고 언젠가 문장에 활용해야지 생각한다. 이제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각오를 다진다. 생에 드문드문 도착했던 격려들을 이르집어본다.
나란히 걷던 이십 년을 뒤로하고, 다른 평행세계를 구축한 아버지. 내 머리가 굵어지고 이혼, 재혼을 했으니 부녀사이는 너절해졌다. 추억은 견고했지만 유대에는 금이갔다. 가끔 달허리를 붙잡고 하던 통화의 주파수는 책이야기뿐이었다. 문득, 신춘문예에 도전할 거라고 선언했다. 평행세계로 떠난 아버지도 이 선택은 뜨겁게 지지해 줄 거라고 믿었다.
아버지는 '내 꿈의 절반은 네게 남겨두었다.'라는 답장을 보냈다. 피는 못 속인다며 기뻐했을까.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광-탈이었지만, 이 도전 덕분에 닿은 격려는 영원히 내 것이다.
책을 빌려달라는 남자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관상에 책이 없는데, 책을 빌려달란다. 쉬운 책을 골랐다.('나미야잡화점의 기적'이었다.) 그걸 빌미로 자꾸 만나자고 보챘다. 자취하는 직장인에게 밥과 술을 사주니 거절할 수 없었다. 어느 날에는 벚꽃을 보러 가자며 데이트를 청했다. 이혼가정의 자녀라는 이유로 상견례 일주일 전에 파혼한 일을 말했다.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던 그 남자. 스스럽게 사귀기 시작했다. 회식이 끝나면 바래다줬다. 자취방을 옮겼더니 이사를 도와주고, 재혼해서 귀농한 엄마를 보러 간다니 강원도까지 데려다줬다. 무감한 남자가 내게는 다정하니 속절없이 마음을 주었다. 청혼은 보배로웠다. 나의 습작을 엮은 책이 신의 한 수였다. 되는대로 써 내려간 글이 한 권의 분량은 된다니, 내 키만큼 쓰면 좀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겠구나. 남편의 의도가 아니었으리라 짐작하지만 이 또한 힘이 되었다.
눈물로 수놓은 지난한 시간을 딛고, 아이를 품었다. 매주 가는 산부인과지만 늘 걱정이 발목을 잡았다. 드디어 심장소리를 들려준 아이. 주수에 맞는 성장을 증명하는 초음파사진까지 받고 나니 불안이 사그라들었다. 로비 기둥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다른 환자들이 보면 가슴이 저릴까 봐, 뒤돌아서 산모수첩에 초음파사진을 끼웠다. 어깨너머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원장님이 다시 들어오시래요."
진료에서 놓친 부분이 있는 걸까, 아이에게 문제가 있나? 끊임없이 피어나는 생각들. 파리한 얼굴로 다시 의자에 앉았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원장님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말하려고 했는데 깜빡했어요. 블로그에 글 쓰고 있죠?"
아, 난임일기를 보셨구나. 의료용어를 잘못 기재해서 말씀하시는 걸까? 병원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드시나? 내 돈 내고 다니는 병원이라 광고도 아니고, 딱히 악의적인 내용을 적거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는데.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글이 참 좋아요. 글쓰기를 따로 배웠나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썼으면 좋겠어요. 난임에 대한 글 말고도 계속 글을 쓰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정말이에요. 아이를 낳고도 꼭 글을 쓰세요."
난임의 원인은 24 절기보다 많다. 첫 임신과 유산으로 알게 된 나의 진단명은 자궁 외 임신과 난관수종이었다. mtx치료를 받고, 양측 나팔관과 유착된 왼쪽 난소의 일부를 절제했다. 수많은 난임수기가 있어도 나와 같은 계절을 지나온 글은 드물었다. 양쪽 나팔관이 없으면 자연임신은 불가능하다. 임신까지는 외길, 시험관시술뿐이다. 우직하게 관통하는 수밖에 없다. '제가 먼저 걸어봤는데, 퍽 견딜만한 장마였어요.'라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 원장님의 말은 내가 이 여정을 잘 마칠 것이라는 격려로 다가왔고 나는 끈질기게 기록했다.
첫째를 낳고, 둘째를 마중하러 갔다가 쌍둥이를 만났다. 조기진통으로 입원해서 병동 생활을 하는 내내 나는 비루해졌다. 그래도 난임일기를 보러 오는 이들의 안부인사 덕분에 마지막 끈은 붙잡고 있었다. 기어코 33주 5일에 태어난 이른둥이 쌍둥이는 첫째와 12개월 10일 차이가 나는 연년생이 됐다. 난임이던 부부에게 연년생 받고 쌍둥이라니.
매콤하지만 황홀한 육아를 받아들이고 아이들의 일상을 관찰한다. 앙증맞은 입으로 자아내는 영롱한 문장과 해사한 몸짓에서 뿜어내는 광휘는 찰나라서, 글로 옮기지 않으면 금세 휘발된다. 세 아이는 날마다 자라니 꼭 하루치의 사유를 내게 선물한다. 엄마에게 글을 쓰라며 보내는 말랑하고 따스한 지지라고 믿는다.
넓게 바라보고 부드럽게 다가가서 온기 있게 풀어내려고 한다. 집요하게 고치면서 벼려내면 다소 나은 글이 될 테니까. 그런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 내 삶에 내려앉은 응원의 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쓸 수 있겠지. 지친 이에게 한점 그늘 같은 글, 슬픈 이의 소나기를 함께 맞아주는 우산 같은 글도 언젠가는 쓸 수 있겠지. 내 글로 위로받는 사람들이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