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십구일, 이천열여덟년
세상의 외관이 누군가의 손끝에서 이루어진 한 폭의 그림이라면, 그 누군가가 신이었든 누구였든 바보와 같은 천재의 작품인지 천재라 불리는 바보의 작품인지 모르겠다.
유럽을 온갖 형형색색으로 그림을 그리다 독일을 그릴 때 색이 부족해 검정과 흰색으로 명암만 주었나?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 지독한 잿빛의 나라를 설명할 수가 있을까?
징글징글한 잿빛을 사는 이 나라 사람들은 그래서 자동차 색깔에 힘을 주는 것 같다. 한국과 다르게 분홍부터 노랑, 에메랄드까지 없는 색이 없다.
독일의 겨울은 그렇게 늘 회색이다. 그러면서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몇 해를 걸러 한 번씩 이례적으로 볕이 많은 겨울이 있다. 또 어떤 달은 겨울이 아니어도 비만 오고 우중충한 달도 있다. 그러면 그다음 달은 또 볕이 좀 나온다. 독일의 날씨는 이렇다. 내가 날씨 때문에 이러다 죽겠지.. 하면 곧 위로하듯 좋은 날들이 한동안 지속된다. 독일 날씨는 참 사람의 인생과 닮아 있다.
처음 난임이라는 터널을 들어설 때, 저 멀리 끝이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앞으로만 달렸고 희미한 빛은 출구를 점차 더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조금만 더 가면 터널을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살면서 무수히 많은, 지독한 터널을 지나며 살았고 그때마다 그보다 더 지독한 것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는 게 그렇다. 사는 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사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지나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오늘을 버티고 또 내일을 버티는 것이었다. 내가 버텨온 시간만큼 내 삶이 점점 홀가분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버텨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내 어깨로 쌓여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내 어깨를 누르는 내 지난 시간을 버티고 오늘을 또 버티는 게 사는 거였다.
나이를 먹는 만큼 찾아오는 시련이나 문제들은 내 나이만큼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이 시간을 잘 버티고 오지도 않은 다음 시간들에 벌써부터 긴 숨을 모으게 된다.
내 지금 살고 있는 이 시간은 과연 나의 선택일까, 나의 선택이 아닐까?
내가 이 시간을 미리 안다면 나는 과연 같은 선택을 할까, 아닐까?
요즘은 이런 의미 없는 잡생각들이 끊이지 않는다.
남편과 유전자 검사를 하고 온 뒤로 나에게는 또 다른 지옥 같은 시간이 시작되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것. 그러나 어쩌면 이미 반은 결과를 미리 알고 있는 것과 같다.
최소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우리 결정에 객관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확신을 얻기 위한 검사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쁜 결과가 나올까 전전긍긍하기보다 자명한 결과를 내가 어떻게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가 초점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것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아픔과 고민에 덮이고 치여 한쪽에 방치되는 것이지 괜찮아질 수 없다.
시간이 지나서 잊히고 괜찮아질 만한 일이었다면 애초에 내게 상처가 되지도 않을 것이며 힘들지 않았을 일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상처나 아픔,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시간들의 대부분은 시간이 지난다고 괜찮아지지 않는다고.
세상에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한 슬픔이 있다. 그런 상처가 더 많다.
물론, 덜 생각나고 덜 아프고 덜 심각할 수는 있다.
덜 생각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서 잊힌 것이 결코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나로 받아들이듯 그 아픔도 자연스럽게 내가 된 것이다.
꽃집에 들어오는 계절 꽃처럼 새롭고 신선한 기억들이 현재를 지배하기 때문에 오래된 기억은 구석 어딘가 처음과 다른 모양으로 잊힌 척 있는 것뿐 그것들은 여전히 나의 한 부분으로 분명 존재한다. 시들어 버렸거나 말라비틀어졌어도 꽃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아픈 시간들을 받아들이고 내가 되는 시간을 지나 어느 순간 나의 일부가 되면 그것을 대하는 내 시선과 마음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괜찮아지는 거라고 여기는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지금 내 고통도 시간이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작은 깨달음 뒤에 슬픔은 이상하게도 배가 되어 극심한 우울함이 찾아왔다.
그냥저냥 행복하게 잘 살아가다가 겨울이 오는 것만으로 좀 더 우울해지는 나라에 살던 어느 날, 내 우울이 다소 위험하다는 것을 자각했다.
십여 년 전 우울증 치료를 받았던 때와 비슷했다. 상태는 꽤 심각했다.
그때에 나는 먹는 것을 포함해 의지가 있어야 하는 모든 행동에 의욕이 전혀 없었다. 습관처럼 출근하고 습관처럼 일을 하다 집에 오면 씻지 못하고 잠에 드는 경우도 많았고 주말엔 친구도 만나지 않고 내내 먹지도 않고 잠만 잤었다. 친구의 손에 이끌려 갔던 병원에서 의사가 그랬다.
혼자 살았다면 그렇게 모든 의욕을 잃고 잠만 자다가 죽는지도 모르게 죽는 거라고 했다. 우울증이 정말 심각하면 죽고 싶다는 의욕도 없이 삶을 놓는 것이라 했다. 그렇게 치료를 시작했고 다행히도 약에 잘 반응하여 상태는 곧 호전되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돌아왔던 나의 의지가 식욕과 수면욕이었다. 내 경우엔 식욕을 기준으로 심각성의 정도를 알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점점 식욕도 잃어가고 있다.
새해가 되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걷기 운동을 하는 것도 사실 걷고자 하는 의지보다는 맘 편히 울기 위한 본능에 가까웠다. 어떤 날은 매일 다니는 것이 좋다며 내 등을 떠미는 남편 덕분에 억지로 나서기도 했다. 어떤 이유로 어떻게 내가 운동을 시작하든, 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운동 자체라기보다 편하게 울기 위함이었다. 인적이 드문 산책로나 밭 길로 운동을 다녔는데 겨울엔 더욱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 눈물이 나올 땐 원 없이 울 수 있었다. 남편은 이런 나를 충분히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두려웠다.
내 눈물이 잘 버텨주고 있는 그를 나처럼 심각한 상태로 끌어내리지는 않을까? 무엇보다 이런 연약한 마음 상태로 내 하루도 버티기도 힘든데, 남편이 나처럼 우울해지면 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지금 이런 겨울을 보내고 있다.
출구가 보였던 터널을 다시 입구까지 되돌아왔고 출구는 다시 아득하게 멀어졌다.
거기에 지독한 독일 날씨와 감정은 통제를 벗어나 아래로만 가라앉고 있는 상황이다.
매일 울면서 걷고 또 걸었다. 걷다 보면 몸이 지치고 몸이 지치면 눈물도 멈췄다. 눈물이 멈추면 나는 매일 내 기억을 반추했다. 십 년 전에 나는 그 우울함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더 이상 떨어질 곳 없을 때까지 떨어지면 결국 다시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땐 그게 바닥인지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그랬다.
나는 지금 다시 그 바닥에 있는 건지, 아니면 더 떨어져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여 나는 지금은 그냥 이대로 힘들어하고 충분히 슬퍼하기로 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면 그때처럼 나는 다시 위로 올라갈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