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이십이일, 이천열여덟년
봄에 내리는 눈.
내게 봄눈은 눈꽃이었다. 꽃잎이 눈처럼 폴폴 내리다 사뿐히 땅에 쌓여하는 것이 마치 눈처럼 곱게 느껴졌다. 특히, 벚꽃이 그러했다. 이제 이르면 곧, 늦어도 다음다음 주초면 벚꽃이 필 때가 되었다.
긴긴 겨울이 지나고 곧 꽃눈이 내리겠구나 싶었는데, 느닷없이 함박눈이 내렸다.
지난 시월에 뜬금없이 내린 첫눈처럼 올 겨울 마지막 눈도 꼭 그랬다.
만물이 모두 옷을 벗고 꽃들은 몽우리로 이미 봄을 맞을 준비를 마쳤는데, 보란 듯이 서리와 함박눈이 세상을 하얗게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나도 그랬다.
이제라도, 늦게라도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꽃을 피울 준비를 한껏 했는데, 서리가 내리고 눈이 쌓였다.
그렇게 쌓인 눈은 벌써 몇 년째 녹을 생각을 안 하고 있다.
펑펑 함박눈이 내렸던 어느 봄날, 꿈을 꾸었다.
영원히 깨지 않는 꿈이었다. 사실 지금도 꿈속에서 현실의 나에게 구호의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려달라는 내 간절한 외침이 어느 누군가에게도 내렸으면 좋겠다. 봄 눈처럼 곧 사라진다 해도..
꿈속에서 내가 사는 곳은 농부와 씨앗 둘 중에 하나로만 태어날 수 있었다.
내가 무엇으로 태어날지는 애초에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농부로 태어나거든, '아. 나는 농부로 태어났구나!' 하는 것이고, 내가 씨앗이 되었거든, '아. 나는 씨앗이로구나!' 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디에 따져 물을 사람도 없고 책임을 물을 곳도 없다. 그래서 처음에 세상은 운명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무엇이 될지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며 내가 바꿀 수 없으니 운명이라 여겼다.
그런데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농부라면 내게 할당된 내 밭을 어떻게 관리하냐에 따라 내 밭을 비옥하게 가꿔 더 많은 수확물을 얻을 수도 있었고 내가 씨앗이라면 부지런히 볕에 몸을 누위고 바람을 쐬어 단단하게 몸을 지켜 빨리 싹을 틔울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또 생각했다. 이 세상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모든 할 수 있는 것이구나,라고 말이다. 그런데 또 아니었다.
농부든, 씨앗이든 일단 태어나고 나면 그 뒤에 비가 오고 눈이 오는 날씨와 같은 환경은 또 내가 선택할 수 있거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여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세상은 결국 반은 숙명, 반은 개척이었다. 반운명론. 그것은 꿈 밖의 세상과 다르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농부로 태어났다.
농부로 태어난 사람은 태어나면서 각자에게 일정한 크기의 밭이 주어진다. 내가 밭은 제대로 돌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기 전까지 나는 밭에서 무엇도 할 수 없었다. 투명한 결계와 같은 것이 밭에 둘러 서 있으며 때가 될 때까지 나는 이따금씩 돌아볼 수 있는 정도였다. 가끔은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땅이 썩거나 천재지변에 의해 밭이 유실되거나 망가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 역시 특별히 대비하거나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운이 좋아 완전히 유실되기 전에 밭을 구하거나 아슬하게 태풍이 피해 가서 지킬 수 있기도 했지만, 모두에게 그런 기적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다행히도 내 밭은 커다란 문제없이 그런대로 잘 있어주었다. 다만, 다른 농부들이 벌써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도 내 밭에 결계는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끔씩 조바심이 나긴 했지만, 언젠가 나도 옆집 농부나 앞집 농부처럼 탐스러운 열매나 예쁜 꽃을 피울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 날, 나도 밭을 가꿀 수 있는 때가 되었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열심히 하는 나는 또 열심히 내 밭을 가꿨다. 거름도 주고 물이 부족하면 물도 주고 지극정성으로 땅을 일궜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도 내 밭으로 할당된 씨앗을 받을 수 없었다. 화가 나 몇 해는 밭을 돌보지도 않았다. 나중에 씨를 얻고 나서 보수를 해도 늦지 않겠지 싶어 안일하게 방치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나 겨우 내 씨앗을 얻었다. 그런데 내가 너무 오래 내 땅을 방치했는지 그 해에 씨앗을 뿌릴 수 없었고 이듬해에도 씨앗을 뿌리기에 땅은 형편없었다. 씨앗을 받고 또 몇 해가 지나고 겨우 씨앗을 처음으로 밭에 뿌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밭도 잘 관리했고 홍수나 가뭄없이 볕도 적당하니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그런데 그 해에 내 밭에서는 단 하나도 싹이 나지 않았다. 싹이 하나라도 나면 그거라도 잘 키워보자 했건만, 그 수많은 씨앗 중 단 하나도 발아하지 못했다.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내년에 더 열심히 밭을 가꾸면 될 거라고 생각해서 많이 속상하진 않았다. 나도 곧 싹일 틔울 것에 조금도 의심이 없었다. 내가 가진 씨앗이 사과나무가 될지, 밤나무가 될지 아니면 꽃이나 토마토가 나올지 상상하며 밭을 가꾸는 일에만 열심히 했다. 곧 열매를 맺을 줄 알았던 내 씨앗은 몇 해가 지나도록 결국 싹 한번 틔우지 못했고 그 사이 내 주변 밭의 주인들은 사과나 밤, 토마토를 수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몇 해 동안 싹을 제대로 틔우지 못한 나를 자책하며 또 슬퍼하며 미친 사람처럼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씨앗을 관리하던 노인이 싹을 틔우지 못하는 씨를 다시 잘 씻고 말리고 관리하면 혹시 싹을 틔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일러주셨다. 그 말에 혹시나 하며 모든 씨앗을 깨끗이 닦아내고 말리고 티끌 같은 먼지도 털어내고 작은 오염도 잘라내며 온 정성을 다했다. 동시에 내 밭의 땅도 바닥까지 모두 흙을 고르고 새 흙으로 다시 채웠다. 비료와 수분을 충분히 주면서 다시 한번 최선을 다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내 밭과 씨앗을 관리하고 날이 좋은 어느 날 다시 씨앗을 심었다. 내게 남은 모든 기운을 끌어 모은 마지막 도전이었다.
그런데 꿈에서 결국 그 씨앗이 열매를 맺었는지..., 아니 싹은 틔우기나 했는지 보지 못한 채 꿈에서 깨고 말았다.
꿈에서 깨어 한 동안 멍하니 있었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오면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보지 않는다면, 어쩌면 난 평생 미련이 남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