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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 Mar 27. 2019

열네 번째 날, 내 마음을 위로한 그의 말.

팔월 십일, 이천열여덟년

어려운 결정을 하고 한국으로 가는 날까지 우리의 하루는 매일이 답답했다.


마음을 비워라.


난임이라는 것을 주변에서 알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조언이고 위로이며 가장 빈번히 듣는 말이다.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닌데 또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에 정작 나와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아이러니한 점이다. 시험관 한두 번으로 아이를 가져서 다 안다는 듯이 말하기도 한다.


마음을 비우라는 말에는 조바심을 내서 될 것도 안되고 있다거나 아직 때가 아니라서 편히 기다리면, 어쨌거나 아이가 생길 거라는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

시험관을 해도 문제가 있는 우리 같은 상황에서는 그 말이 주는 의미는 또 다르다. 비우라는 그 말이 포기를 재촉하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그 말이 가지는 힘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시험관을 하면서 수정시킨 수많은 배아들이 단 한 번도 수정되지 못했던 것이 단순히 유전자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우리와 비슷한 전례를 찾아다니다 어떤 부부를 알게 되었다. 그 부부는 본인들이 둘 다 보인자인지 몰랐던 경우였다. 게다가 부부는 첫 아이도 비교적 쉽게 얻었고 탈없이 잘 키우고 있었다. 그 부부가 문제를 알게 된 것은 둘째가 태어난 뒤였다. 태어난 둘째가 몇 개월 되지도 않아 아프기 시작하면서 무척 어린 나이에 대수술을 이미 여러 차례 받게 된 것이다. 아픈 아이를 보는 것도 힘들지만 더 절망스러웠던 것은 아이가 앓고 있는 질병이 무척이나 생소한 것이었다. 그 병명을 찾고 찾다가 인터넷에 올린 내 글을 보고 부부가 쪽지로 연락을 해왔다. 나는 이렇게 하나도 간절한데, 아니 이식도 못해서 힘들어하는데 그 부부는 내게 아픈 둘째를 보면서 셋째 생각까지 염두에 두고 이것저것 물어왔다.


내 품에 아이를 품어보지도 못한 내가 아픈 둘째 아이 때문에 힘든 부부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부부가 그렇게 힘든 와중에 셋째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대단한 기적이고 욕심인지 모르는 것도 안타까웠다. 같은 상황에 이식도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내 처지에 비해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우리와 같은 유전자 변형을 가진 그 부부가 건강한 아이를 처음에 얻게 된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고 기적이었는지 쪽지로 설명했다. 덧붙여 둘째가 태어나게 된 확률과 셋째가 태어난다면 첫째처럼 정상으로 태어날 수 있는 확률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내 말에 그 부부는 의사도 나와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며 크게 실망했다. 이 부부를 알게 되면서 우리의 문제가 오롯이 유전자 문제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낭포성 섬유증을 유발하는 보인자 부부라 하더라도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 우리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부부에게 우리보다 희망적인 길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한국에서 시험관을 진행하면서 억지로 포기하자며 내려놓겠다 애썼던 마음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시술하면서 놀랐던 것이 꽤 있었는데, A부터 Z까지 섬세한 것이 독일과 너무 달랐다. 일단, 언어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니 그간 궁금했던 것과 알고 싶었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자꾸만 작은 희망이 꿈틀거렸다. 누르고 눌러도 삐죽삐죽 고개를 내미는 잡초처럼 질기게 올라왔다. 그 희망은 금방 바람이 되었고 바람은 현실적인 상황과의 괴리에서 미친 사람이 널뛰듯 정신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남편이 입국하기 전에 나는 먼저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불안정한 마음이 쉽게 잡아지지 않았다. 진료를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 앞에서 눈물 바람이었고 처음엔 희망적이었던 선생님도 차츰 이런 나를 시술하는 게 부담스러워질 정도였다. 잠도 잘 못 자고 독일에 있는 남편을 붙잡고 하소연하기만 했다. 이렇게 불안정한 나와 달리 오랜만에 한국에 오는 남편은 화상 통화하면서 먹고 싶었던 음식들만 나열했다. 그렇게 불안한 시간을 보내다 남편이 입국하기 며칠 전 결국 내 감정이 터져버렸다.


  나는 이렇게 정신 붙잡기 힘들고 위로가 필요한데, 당신은 고작 먹고 싶은 것들 먹을 생각에 설레기만 하느냐고. 나를 위로할 생각보다 당신 먹고 싶은 거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먹을까 그런 고민만 하느냐며 남편에게 윽박지르고 울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아이, 그 자체를 너무너무 좋아했다. 일찍 결혼해서 일찍 아이를 가지고 싶었던 것이 인생에 큰 목표 중 하나였다. 어쩌다 보니 인연을 늦게 만났고 늦게 결혼해서 늦게 아이를 가지려고 했던 것뿐이었는데 어쩌면 내게 허황된 꿈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이가 없는 내 미래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여자로 태어나면 누구나 때가 되면 그냥 엄마가 된다고 생각했다. 애가 없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도 않았다. 그런 생각만 자꾸 들다 보니 어느새 내 미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냥 이렇게 내가 사라지는 것 같았고 또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남편 너는 맛있는 거 먹을 생각만 하느냐며 울었다. 내일 일어나면 눈이 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뱉어내고 말았다. 그때에 나는 그렇게 내 감정의 끝까지 떨어져 있었다. 그보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바닥이었다.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던 남편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져갔다. 굳어진 얼굴에 조금 이슬이 비치더니 이내 사라졌다. 목소리를 다듬고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여보, 진정하고 내 이야기 좀 들어봐.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에 그냥저냥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았어. 가족들이랑 사이도 좋았고 특별히 대단한 것도 없었지만, 특히 힘든 것도 없이 그냥 행복하게 지냈어. 이 정도면 항상 충분하다고만 생각했지.

그렇게 사는 내 시간에 만족해서 특별히 누군가를 만나거나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도 안 했고 결혼 생각도 없었지. 그냥 이렇게 가족들이랑 지내다 가면 되겠다, 싶었어.


그런 내가 우연히 당신을 만났어.

당신을 만나고 나는 정말 행복했다? 늘 고만고만했던 행복이 당신을 만나고 둘이 되니까 혼자였을 때보다 두 배가 아니라 몇 배가 더 행복한 거야.

너무 행복해서 당신하고 평생 같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우리는 함께 살았고.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하나였다 둘이 되어서 이렇게 행복했는데 우리 둘이었다가 셋이 되면 얼마나 더 행복할까?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행복할 거란 생각이 들었지.

우리는 그렇게 아이를 원했잖아.


그런데 당신을 봐. 당신은 이제 하나도 행복해 보이지 않아.

그런 당신을 보는 내가 얼마나 슬플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

난 그래도 당신에게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어. 왜냐면, 나도 그 아픔을 아니까.

그건 당신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픔이니까. 그래서 기다렸는데.. 당신은 점점 더 슬퍼지기만 해.


당신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가 셋이 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해.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셋이 되고 싶었는데 셋이 되기 위해 당신이 불행해진다면 나는 그냥 우리 둘이 계속 행복하고 싶어.


여보, 아이는 우리에게 전부가 아니야.

만약 기적이 와서 우리에게도 아이가 온다면 우리는 그 아이에게 가장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래도 그 아이가 전부가 될 수는 없고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해.

아이는 그냥 아이야.


나 역시 아이 없는 우리를 생각해 본 적 없어. 다만, 그 아이가 우리가 직접 낳은 아이일지, 다른 아이가 될지는 모르는 것일 뿐이지. 당신도 그렇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이런 것들도 아이와 함께 우리 모두가 '더' 행복해진다는 게 전제되어야 해.

그런 게 아니라면 우리 그냥 지금처럼 우리 둘이 행복하게 지내자. 난 그것도 좋아.

당신만 있다면. 당신만 행복하다면.





  그의 말이 다 끝난 뒤에도 나는 한 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소리 내어 울기만 했다.

너무 미안했다.

그도 힘들 거란 걸 알면서 표현하지 않았다 하여 태평하다 단정 지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너무도 어른스러운 그의 말은 무척 평화로웠고 건강했다.

너무 창피했다.

나만 힘들다고, 아니 내가 더 힘들다고, 내가 더 원한다고 짧고 단편적인 생각을 했다.

너무 고마웠다.

지난 3년 동안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서로의 아픈 것을 너무 잘 알아서 건드리고 싶지 않아 피하기만 했다. 누구도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덜 아플 거라고 여겼다. 그렇게 겨우 버티던 우리를 나약한 내 마음이 마구 난도질을 했던 것이었다. 그런 난폭한 난도질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남편의 생각은 흔들리지 않았다. 조용히 타일렀고 나지막이 위로했으며 따뜻하게 화를 냈다.


  언젠가부터 그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나조차도 모르면서 그 한마디만 들으면 불안하고 답답한 내 마음에도 평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정작 내가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나도 몰랐던 그 마음이 그 날 내게로 왔다. 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 뒤로 내 마음은 정말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마음에 커다란 돌덩이를 남편이 꺼내 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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