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힐데 Nov 19. 2019

열여섯 번째 날, 모야 비에다

구월 십팔일, 이천열덟년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나는 며칠을 더 있어야 했다. 처음 기다려보는 그 시간은 생각했던 만큼 고통스럽고 지루하기만 했다. 비록, 오전과 오후의 온도차가 극단적인 환절기처럼 내 마음도 희망과 포기 사이를 수십 번씩 넘나들었지만 그 모든 기다림의 시간이 행복했다.


  살아온 시간 동안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몇 번의 위기가 왔었고 그러는 동안 성격도 몇 번이나 변했는지 모른다. 그때 그 시절에는 모르고 살았다가 지금 되돌아보면 그랬다. 집이든 밖이든 머리가 바닥에 닿으면 몇 분 안에 잘만 잤던 잠은 언젠가부터 불면증에 시달렸고 완전 채식주의자에 가까웠던 식성이 생선과 약간의 육식도 즐길 만큼 변했다. 어떤 것들은 완전히 바뀌었고 어떤 부분은 없던 성향이나 취향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 변화 중에 가장 내가 크게 느낀 나의 변화는 예민함이었다.


  성격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둔감한 편이었는데 이제는 내 몸에 조그만 변화도 금세 내가 느끼고 반응한다. 모든 사소한 변화를 느끼기 시작하니 성격적인 면도 예민한 구석이 생겼다. 남편 말로는 워낙 둔감했던 터라 섬세해질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남편이 아무리 예쁜 말로 포장해줘도 스스로 불편하고 맘에 썩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애써 바꾸려고 노력하지는 않기로 했다. 영원한 것은 없으니 언젠가 또 어떤 계기로 다시 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민감해진 신체적, 성격적 변화 때문인지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결과가 예상되었다. 비행기 표를 연장할 때 결과가 나오는 날 바로 다음날 독일로 출발하는 것으로 했었다. 결과를 기다리면서 혹시나 잘되면 비행기 표를 버려야 하나 걱정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병원에 가서 피를 뽑을 때까지만 해도 내 몸은 계속 희망 고문을 주고 있었다. 잔인한 희망 고문이 끝난 건, 피검사 결과를 알리는 전화를 받는 직후였다.


"죄송합니다. 착상 조차 되지 않았어요. 비임신입니다."


  괜찮아요. 간호사 언니가 왜 죄송해요.라고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괜찮지는 않았다. 나보다 더 실망하고 힘이 없던 간호사 목소리에 내가 같이 실망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예상을 했던 결과였다고 실망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역시 크게 실망했고 또 크게 슬펐다. 꾹꾹 누르던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올 때, 옆에 있던 친한 동생이 나를 안고 같이 울었다. 아마, 그녀는 그 누구보다 내 결과가 좋게 나오길 바랬던 모양이다. 나보다 더 실망하고 나만큼 함께 울었다. 덕분에 슬픔에 마음이 쏠리지도, 절망에 취하지도 않고 친정으로 돌아왔다.

친정으로 돌아와 독일로 돌아갈 짐을 주섬주섬 정리했다. 그 모습을 보던 엄마랑 또 한 번 얼싸안고 울었다. 엄마는 괜찮다고, 남편이 나 많이 사랑해주니까 아이 없이 둘이 재밌게 살라며 연신 위로했지만, 그런 말이 내게 들릴 리 없었다.


  나는 참 슬펐지만, 또 참 행복했다.

  한 여름에 한국에 들어와 다시 시험관 준비를 하고 네 번째 시험관이 끝나니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저녁에는 벌써 얇은 카디건이나 재킷을 걸쳐야 좀 괜찮았다. 독일의 기후 탓인지, 몇 번의 시험관 시술 때문인지 열이 많던 내 몸이 이제는 조금의 추위도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아스팔트가 녹아내릴 것 같은 한 여름에 들어와 바람이 살살 부는 날 다시 독일행 비행기를 탔다. 모든 시간들이 한 여름밤의 꿈만 같았다.

  내가 이식했던 것도. 한국에 있었던 두어 달의 시간도. 그리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았을 작은 세포를 내 안에 품었던 일까지 모두 한 여름밤의 꿈처럼 아득해졌다.

 



  모야 비에다.

  Moja bieda. 폴란드어로 나의 슬픔이란 뜻이다. 쇼팽의 이별의 왈츠 69번. 공항 화장실이었던가, 병원 화장실이었던가, 흘려들었던 그 선율이 문득 떠올랐다. 클래식은 잘 모르지만 즐겨 듣는 몇 개의 음악과 작곡가는 있다. 그리고 쇼팽은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이 아니었다. 다만, 이별의 왈츠에 얽힌 쇼팽의 사연이 인상 깊어 기억하고 있는 곡이었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참 쇼팽답다는 생각을 했었다. 제목도 그렇고 곡에 얽힌 사연도 슬픈데 음악은 왠지 쇼팽의 몸처럼 가벼운 느낌 었다. 그래서 좋아하지 않았던 곡인데 이번에는 가벼운 선율에서 그의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참 신기하다. 아마도 그 사이 내 마음이 달라진 모양이다. 지금 내게 찾아온 이 슬픔도 어쩌면 쇼팽이 평생 간직했던 슬픔처럼 나 역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다섯 번째날, 다시 기다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