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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 Mar 27. 2019

열세 번째 날, 어려운 결정

칠월오일, 이천열여덟년

  1월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걷기 운동을 하면서 불었던 체중도 감량했고 나를 따라 다이어트를 시작한 남편도 목표 체중의 반을 감량한 상태였다. 몸에 좋다는 영양제도 꾸준히 복용한 상태였는데, 이 노력들은 모두 '다음'을 위한 것이었다. 유전자 결과지를 받고 우리는 오랜 시간 고민했다.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30대 후반에 시작해서 세 번의 시험관과 유전자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이미 마흔을 지나있었고 그나마 나이보다 좋았던 내 난소 상태는 급격하게 노화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신체 나이보다 훨씬 좋았던 난소가 갑자기 나빠진 것에 대해서 병원에서는 그저 알 수 없다고만 했다. 시험관을 진행하면 기능이 떨어지긴 하지만 나처럼 이렇게 극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에 원인을 모르겠다는 말 뿐이었다.


  아이에 관한 우리 이야기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현실적인 게 없었다. 우리가 가입된 공보험 회사에서는 더 이상 지원받을 수도 없게 되었다. 보험회사에서도 가능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고민 끝에 우리는 한국행을 결정했다. 우리의 한국행은 마지막 희망보다는 단념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자 마지막 단계였다.  


 

이렇게 우울한 이야기를 누가 읽고 싶을까?


  처음 우리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누군가 내게 했던 말이다. 대답은 간단하다. 우울한 이야기가 아니라, 난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단지 잘 알려주고 싶다. 난임이란 게 어떤 것인지, 그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라도 이해를 돕고 싶다. 겪어보니 난임은 음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겉으로만 봐서는 사람들이 알 수 없고 당사자들은 자신의 상황을 쉽게 드러내지도 못한다. 막상 용기를 내어 말을 꺼내도 공감을 얻기 힘들다. 오히려 위로의 말에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더 많다.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점점 더 감추게 되고 움츠러들게 된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대한 정보를 거의 찾을 수 없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그래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어떤 것인지 알리고 싶었고, 다음엔 어떤 것들이 위로가 되는지 말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그 마음에 공감하고 선례가 돼도 괜찮겠다 싶었다. 난임의 궁극적 목표인 아이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길을 잃은 누군가에게 가야 할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난임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던 것은 처음에 남편에 관한 우리의 사는 이야기를 쓸 때와도 비슷하다. 우리는 남몰래 아이를 가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간부터 마지막 시험관까지 거의 3년이란 시간 동안 무척이나 힘들었다. 난임이 힘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변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상처가 의외로 큰 부분을 차지한다. 결혼한지도 벌써 5년을 꽉 채워 넘겼지만 독일에서는 그 누구도 우리에게 아이 이야기를 묻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가 시험관을 진행할 때조차 시부모님은 단 한 번도 먼저 물어보신 적이 없었다. 아마도 시누 부부는 우리가 시험관을 진행한지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너무 아프고 힘든 시간이기 때문에 먼저 이야기를 꺼낼 기회나 이유가 없었고 시누 부부도 따로 물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 (독일에서 커플에게 해서는 안 되는 질문, 이전 글 참고)


안 생기는데 어쩔 거야. 그냥 네 인생을 즐겨.

 

  위로하고 힘내라는 의미로 쉽게 하는 말인데 이런 말을 건네는 사람의 대부분은 이미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다. 아니면 아직 아이는 없지만 난임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렵게 아이를 얻은 사람들이나 아이를 얻기 위해 아직도 애쓰는 사람들은 간절한 그 마음에 동감한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쉽게 어떤 말을 건네지 못한다. 꼭 어떤 말로 위로하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 누구나 한 번쯤 간절히 원하는 데 얻지 못했던 경험 하나쯤은 있지 않나, 그때 그 마음을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간절한 그 대상에 대한 비교는 차치하고 열망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그 마음은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난임이 내 이야기가 아닐 때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내 문제가 되니 그때 내가 얼마나 어쭙잖은 위로를 했는지 알았다. 그게 그렇게 포기가 안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누군가는 지금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가령, 손이나 팔, 눈과 같은 신체의 한 부분을 잃은 사람을 내가 위로한다고 생각해보자. 감히 내가 어떤 '말'로 위로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모두 쉽게 한다. 왜? 그들이 가지지 못해 슬픈 그 마음은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너무도 당연한 아픔이기 때문에 그렇다. 난임이 주는 슬픔이나 고통의 무게는 그런 보편적이고 당연한 감정과는 상당히 다른 차원의 아픔이다. 난임으로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이해하기 전에 그 감정이 다르다는 걸 먼저 알아야 한다. 


  언젠가 신혼 초에 난임에 관한 연구와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난임으로 고통받는 부부들이 느끼는 슬픔과 아픔은 심장질환이나 암환자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고통의 수준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때만 해도 난임이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와 닿지 않았다. 

'얼마나 큰 고통이기에 심장질환이나 암환자의 고통과 견줄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으로 막연하지만 내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끝도 없는 자괴감의 늪에 빠져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내 자존감을 모두 녹여버린다. 긍정 에너지가 모두 빠져버린 껍데기마저 깊은 우울증에 좀먹는다. 

내 모습은 여잔데 남자와 다를 것이 없다. 그렇다고 남자도 아닌데 남자와 다를 게 무엇인가.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엄청나게 대단한 것도 대단한 욕심을 부리는 것도 아닌데 왜 나에게만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수많은 생각들이 난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나락을 끌어내린다. 

애초에 미루어 짐작하고 이론으로 상상하며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런 내 옆에 누군가 함께 있어준다면, 

짐짓 나오는 말로 위로하기보다 흔들리는 내 어깨에 손을 한 번 더 얹어 주거나 토닥여 준다면, 

나도 모르게 자꾸 떨구는 눈물을 모른 척 수건이라도 건네준다면, 

그것으로 커다란 위로가 된다.

답답하고 어두운 미로에 갇혀 길을 잃고 헤매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만큼 든든한 것도 없다. 



  우리는 한국행을 준비하고 더욱더 몸을 관리했다. 운동도 꾸준히 열심히 했고 영양제 복용도 열심히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물리적인 모든 것들을 준비했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마지막이었다. 모든 최선을 다한 뒤, 한국에서의 결과까지 여기에서의 시험관처럼 같은 결과로 끝났을 때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그때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바랐다. 우리에게 아이의 인연이 있다면 무사히 임신과 출산까지 이어지는 기적으로 왔으면 했다. 그런 기적이 아니라면 조금의 희망도 없이 지금처럼 허무하게 끝나길 바랐다.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세포가 분열하고 우리가 이식이라도 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한국행을 결정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설레거나 행복하진 않았다. 천천히 마음에 준비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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