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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 May 06. 2020

열아홉 번째 날, 너의 탈출기

사월 하루, 이천이십 년.

  엷은 햇살이 더 어울리는 평화로운 아침. 어느 날부터 새들의 지저귐은 소음이 되었다. 흡사 까마귀의 울음과도 같은 그것은 보다 부드럽지만 보통의 다른 새들과는 사뭇 다른 가락을 띠었다. 가락이니 노래니 따위의 미사여구가 무색하게 대단히 듣기 좋지는 않았다.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문제의 새소리가 들리면 발코니로 퍽퍽 나가 주변을 둘러보아도 좀처럼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원인 찾아대기를 며칠 째, 새들이 가진 보호색 때문인지 흔한 참새 한 마리도 눈에 잘 뵈지 않았다. 찢어지게 울어대는 그놈의 소리로 매일 아침이 피곤했다. 놈의 면상이라도 보겠다며 커튼과 차양을 모두 열어두고 잠을 잤다. 불철주야 놈을 기다리던 어느 아침, 녀석은 침실 바로 앞 발코니 난간에 앉아서 울어댔다. 눈곱도 떼지 않고 부랴부랴 생김새를 보니 새는 새였다. 머리부터 발끝, 아니 꼬리 끝까지 온통 연두색 옷을 입은 모습이 꽤 아름다웠다. 앙 다문 검붉은 부리는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이 놈, 저 놈 하며 벼르던 그 아이에게 그만 넋을 내어주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아이의 악악거리는 지저귐에 깜짝 놀라 멍청함에서 겨우 깨어 날 수 있었다. 흔한 생김이 아닌 그 아이의 태생이 문득 궁금해졌다. 

  그 새는 원래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 독일 태생이 아니었다. 앵무새의 한 종류로 독일 남서부 어디 동물원에서 살던 아이였다. 무슨 연유로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몰라도 어느 날 동물원을 탈출했고 나와 보니 이곳이 맘에 들어 터를 잡았다.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몇 년 사이에 독일 남서부 전역에서 그 아이의 목격담이 들렸다. 우리 집 앞에서 울던 아이는 탈출한 새의 자식인지, 손주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이야기를 알고 보니 소음 같던 울음이 열심히 살기 위한 구애의 노래로 들렸다. 그놈이 그 아이가 되기까지 그 새는 개의치 않고 제 원할 때에 노래를 불렀다. 그 아이를 보는 내 시선이 달라진 것이지 그 아이의 삶은 다를 것이 없었다. 


  새장 속에 살았을 때 그 아이의 세상은 한 뼘이 전부였을 게다, 새장 속에서 동물원으로 터전을 옮기고부터 그 아이의 세상은 얼마나 커졌을까? 그 행복도 얼마 가지 못했으니 그곳을 빠져나와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저 아이는 언제 제일 행복할까?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의 끝은 곧 나로 향했다. 나는 언제 제일 행복하지? 아니, 질문이 틀렸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행복했을까? 금방 생각해내지 못하고 당장 어제부터 찬찬히 기억을 거슬러야 했다. 


  배불리 먹어도 허전하고 잠을 자도 고단하기만 한 지금의 마음은 왜 일까? 결혼이 조금 늦었어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아이 낳고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평범하게 살고 싶던 계획은 이룰 수 없는 현실이 되었고 내 시간은 목표를 상실한 그때에 갇혀버렸다. 


  한 마리의 새가 탈출하여 우리 집 발코니 난간에 앉아 울던 그 날, 생각이 문득 마음에게 묻는다. 

“넌 도대체 뭐가 문제니?”

생각은 대답한다. 

“내가 제일 문제야.”


  시간을 살다 문제라는 터널에 들어서면 나는 늘 터널을 빠져나가야만 끝이라고 생각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끝이고 새로운 시작이었는데 죽어도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아이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고 아이를 낳지 않아도 부모가 되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아이의 유무가 평범함의 기준도 분명 아니다. 아이를 원했던 바람은 누구를 위한 기대였고 무엇을 위한 소망이었을까? 단순한 바람이 맹목적인 집착이 된 순간 의미는 희미해졌다. 사람들의 바람으로 새를 가두었는데, 때가 되면 밥도 나오니 좁아터진 새장보다는 낫지 않나 생각했다. 

생각 없이 사는 것보다 나아 보이지만 발전이 없는 생각만큼 나쁜 것도 없다. 새도 더 나은 삶을 살겠다고 날개 짓을 하는데, 무엇이 두려워 마음을 놓고 살았을까 싶다. 


 생각은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주고, 감정은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 또, 행동은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주는 데, 과연 무엇이 먼저란 말인가? 사건이다. 어떤 사실에 내 생각이 개입하면서 감정을 만들어내는데, 그 감정이 다시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면서 순환한다. 단순한 생각의 반복은 악순환이다. 바람과 현실의 괴리가 클수록 악순환의 고리는 더 촘촘했다. 수개월을 끊어내지 못했던 그 고리를 그 새가 헐겁게 했다. 작고 연약한 너의 탈출기가 너보다 크고 덜 연약한 내게 용기를 줬다.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 별거 아니지만 어렵게 다시 설 수 있는 용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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