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매혹에 무슨 이름을 붙여야 할 지 모르겠다
"밤이 선생이다" 책 제목을 처음 들은 순간 나는 분명 무엇인가에 매료되었던것이지, 참 탁월한 작명 감각이다라고 여러 날을 생각했다.
미리 글 한 줄 읽을 수 없이 밀봉되어 판매되는 책이었는데도, 나는 망설임없이 책을 계산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충동적(?) 행동은 내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고, 이리도 필연(?)이었건만, 책장을 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책을 사두고 쌓아만 두는일, 그것은 내가 죄책감을 갖는 명백한 행동 중 하나였지만, 대한민국 그 누구도 쉽지 않다는 마흔 고개를 나 역시 크고 작은 기복으로 힘겹게 넘어가고 있었던 참이어서, 책읽기를 미루는 일에 그럴듯한 여러 핑계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해야할까.
급기야 해가 바뀌고 죄책감마저 흐릿해진 어느날 오전, 난 책을 집어 들고 첫장이 아닌 우연히 펼친 바로 그 페이지부터 읽어가기 시작했다. 제목 한문장으로 단숨에 나를 매료 시켰던 그 책은 또다시 단 몇 문장으로 나를 사로잡기 시작하더니 하루 종일 그 책속에서 허우적대게 만들었다. 나는 책 속 여러 문장들을 오후내내 음미하며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 있었다.
편린의 사진과 문학 속 삶에 대한 그의 느긋한 감상과 감각적 서사에서 나는 분명 무엇인가를 만난 것 같은데, 그것을 무엇이라고 해야할까. 변화무쌍했던 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삶들을 마주했을때 느꼈던 인간의 감정, 무의식의 흐름들을 투사하여 느끼고 있었다.
서평을 묻는 후배에게 "아아~ 그것은 어른의 문장들이었어"라고 얼버무리며 순간을 넘겼는데, 그렇다, 그의 문장들은 어찌나 푸근한지 그 앞에서 나는 삶의 무게를 굳이 질 필요가 없는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스타의 구즈를 모으는 소녀팬처럼, 그의 문장들을 무작정 수집해 보고 싶어졌다.
사소한 사정
사소하다는 것은 세상의 큰 목소리들과 엄밀한 이론체계들이 미처 알지 못했거나 감안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소한 것들은 바로 그 때문에 독창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
우리의 실패와 변화도 이 사소한 것들과 세상의 거창한 이론들이 맺게 되는 관계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늘 실패한다. 우리가 배웠던 것, 세상의 큰 목소리들이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것들과 우리의 사소한 경험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고 엇나갈 때 우리는 실패한다. 우리들 개인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가 저 큰 목소리들 앞에서는 항상 '당신의 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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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는 그 실패의 순간마다 변화한다. 사람들마다 하나씩 안고 있는 이 사소한 당신의 사정들이 실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 사정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 바로 그 변화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있다.
자신감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사소한 경험을 이 세상에 알려야 할 중요한 지식으로 여긴다는 것이며, 자신의 사소한 변화를 세상에 대한 자신이 사랑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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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산골 마을의 가난한 주인은 자기가 살던 집을 떠나며, 그 가난한 사림살이야 한나절의 등짐으로도 다 나를 수 있었을 터이지만, 그 기억의 시간들은 가로지른 빗장에 대못을 박아 감금해 두는 수밖에 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었다. 사람이 살던 시간들은 기형도의 가엾은 사랑처럼 빈집에 갇혔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겨울의 개
기억이 내 존재의 일관성을 보증해준다고는 하지만 과거의 어느 시간 속으로 내가 찾아 내려간다면, 나는 거기서 다정하고 친숙한 물건들을 다시 만나기보다, "나는 여기서 산 적이 없다"라고 말하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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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 속에서 찾아냈다기보다 홍성원이나 박명희의 소설에서 가져왔을 이런 소도구들이 내가 원하는 아늑한 구도로 거기에 배열되어 있을 리 없다. 지나간 시간이 모두 꿈이라고 말하는 시도 있지만, 정말 그 주막집의 시간이 어느 날 내 꿈속으로 고스란히 다시 내려온다면, 나는 거기서 한 무더기 기괴한 물건들을 대면하며 왜 저것이 저기 있느냐고 소리치며 놀랄 것이다. 그것들은 너무도 낯설어서 어떤 불길한 목판화 속의 구리 병이나 박제된 독수리처럼 현실의 얼굴이 아닌 상징이나 은유의 얼굴을 들고 있을 것이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혼자 묻게 될 터인데, 나는 정말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 page 193
수분리, 장수면, 장수군, 전라북도, 1973년. 서른 해 저쪽에 있는 한 장의 어둑한 빛이다.
그가 지금 이 사진을 본다면 그 세부에 얽힌 사연들을 낱낱이 설명해줄 수 있을까.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쩌다 눈발에 가려 어둑해진 산을 배경으로, 와본 것도 같고 처음인 것도 같은 어느 한적한 길을 어머니와 함께 헤매다가 마침내 얼굴 훤칠한 낯선 사내와 만나는 꿈을 살아가는 날에 한 번은 꾸게 되지 않을까.
길은 비교적 넓지만 산자락에서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길이 곧을 수는 없다. 가벼운 곡선을 이루며 사라지는 길 저쪽은 운무에 덮인 듯, 때 이른 어둠이 깔린 듯, 눈발 속에 가려져 적막하다. 한 겨울 잎 떨어진 나무들은 앙상하다. 심어진 간격도 고르지 않고 굵기도 서로 다르고, 게다가 여기저기 시달린 흔적을 담고 있어서 그 검은 등허리에 실려 있는 고독감이 더욱 엄연하다. - page 195
아이는 어른이 걱정하는 것만큼 눈이 두렵지 않다. 이 겨울을 어른은 어른만큼 책임지며, 아이는 덜 책임지며 걸어오고 있다. - page 198
사진 속의 소년이 그 생애의 어느 날에 눈발에 가려 어둑해진 산을 배경으로, 와본 것도 같고 처음인 것도 같은 어느 고적한 길을 어머니와 조금 떨어져 헤매는 꿈을 어쩌다 꾸게 된다면, 그는 필경 그 꿈속의 길을 이 개의 마음으로 헤맬 것이다. 사람의 꿈은 사람 속에서 피어나 사람과 동행하지만 반드시 사람과 같은 방향에 시선을 두는 것이 아니다. - page 199
전원일기
나는 트럭이 지나갈 때 일어나는 흙먼지만 보아도 좋던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마을에 고립되어 잊힌 존재로 살던 한 처녀가 동네 어구에 걸인이라도 들어와 그 끔찍한 평화를 약간 뒤흔드는 순간 가슴이 울렁거렸다는 말에, 마음에 조금 상처를 입었던 내가 흙먼지 운운하는 말에 잠시 위로를 얻고 그 말을 적어두려 했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어디에서도 풍경은 서정적 깊이를 약속하지 않는다. 사랑스러운 봄이 그 향기를 잃은 것만 같다.
이 흔한 풍경에 'new 시선' 운운하는 제목은 얼마나 아이러니컬한가. 아마도 구본창은 내가 이 흔한 풍경의 사진에 충격을 받게 되리라고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풍경다운' 풍경을 얻는답시고, 마치 피난처에만 풍경이 있는 것처럼, 현실을 피해 얼마나 멀리 도망치려 했던가. 거기에 향기가 있다 한들 그것을 진정으로 평화롭게 마신 적이 있던가. - page 178
내가 묘사를 마쳤을 때 내 시선은 나무둥치와 머리 없는 남자를 벗어나, 무너져가는 집을 벗어나, 비스듬하게 세로로 그어진 밭고랑을 따라 올라가, 마침내 작고 어두운 나무 그늘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작은 경작지가 문득 넓어지고 원경이 더욱 아련해진다.
이 매혹에 무슨 이름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page 179
찌푸린 얼굴들
같은 말이라도 다른 말처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어디든 하나씩은 있다. "가끔은 무자극적인 사고를 하는 시간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어느 교수가 그렇게 말했다.
외부의 자극을 최소한으로만 받는 상태에서 자기 생각에 몰두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는 그 말을 그렇게 이해했다. - page 204
일하는 것도 아니고 노는 것도 아닌 시간과 공간에서 지지부진하게 힘을 소비하는 일은 많아도 자신을 풀어놓는 데는 늘 실패하는 사람이 자신을 반성하는 일에 서툴 수밖에 없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내가 자극 없는 사고를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혐오한다기보다는 차라리 겁내고 힘겨워한다고 말하는 편이 아마 옳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런 시간이 내게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늘 옛날의 기억 속에만 있다. - page 205
나는 춥고 배가 고팠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더 고양되어 있었다. 아마도 인간에게 전혀 호의를 내보이지 않는 자연, 날카롭게 날이 선 돌과 바람과 흙에 자기 육체를 직접 부딪치고 사는 그런 삶의 개념을 그 풍경 속에서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더욱 생생한 것은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간의 기억이다. 기차가 서울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릴까. 그 시간은 내 인생의 공백이나 같았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밝은 빛에도 불구하고 공연히 켜져 있는 천장의 전깃불들 때문에 오히려 어둑하게 보이는 기차간에서 찌푸리고 있는 얼굴들이 나를 또한 자유롭게 했다.
옆자리를 살펴보면 사람들은 여전히 찌푸린 얼굴이었다. 내 얼굴은 그들과 달랐을까. 그 찌푸린 얼굴들을 따라 나는 다시금 상념 속에 빠져들곤 했다.
내가 찾고 있던 종이 한 장이 어떤 책 속에 끼어 있다는 생각이 났고, 사람을 정직하게 살게 하는 무슨 체조 같은 것을 고안하기도 했다. 그 후로도 내 사람이 같은 자리를 맴돌았고 더 정직해 지지도 않았던 것을 보면 그날의 생각이나 결심이 오래간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사물을 바라볼 때의 심미적 기준에는 그 짧은 여행에서 보았던 춥고 검은 도시의 맑은 하늘과 그 찌푸린 얼굴들의 잔영 같은 것들이 늘 들어있다.
-page 206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한옆에 가난하게 쌓여 있는 구공탄으로 보아 계절은 늦가을과 초겨울 그 어름이다. 날씨는 맑고 물결은 잔잔하다. 그 좋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찌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화창한 하늘과 잔잔한 바다가 조용하게 찌푸릴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준다고 해야겠다.
뱃머리를 정중앙에서 조금 비껴두고 있는 사진의 구도는 자못 장엄하지만 그들이 가는 곳은 난바다 저쪽에 있는 미지의 나라가 아니다. 그들은 조금 전에 떠나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떠나왔다는 말도 사실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그들은 떠난 적이 없으며, 있던 곳에서 있던 곳으로 간다. 가슴이 설레어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들은 또한 남의 땅 근처에서 뱃놀이하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풍경이 낯설게 찬란하기를 바랄 이유가 없으며, 물 위에 떠 있는 섬들에도, 지난여름의 남은 온기를 식히며 뱃머리에서 부서지는 파도에도, 과장된 찬탄의 인사를 보내야 할 필요가 없다. 힘을 소비해야 할 특별한 감정 같은 것은 그들에게 없다.
구공탄을 배에 실어야 했던 그 시간과 배 밖으로 다시 옮겨야 하는 그 시간 사이에서 찌푸린 얼굴로 가장 작은 열량을 소비하며 하늘과 바다의 평온함을 그들은 조용하게 거둔다. 사람들의 찌푸린 얼굴은 맑은 하늘과 잔잔한 바다의 다른 얼굴일 것도 같다.
극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조금 전까지 사람의 드라마를 구성해왔으며, 잠시 후에 다시 구성하게 될 것들은 배가 저쪽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사람들의 심중 깊이 내려가 있고, 조용하게 찌푸린 얼굴들은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는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강운구는 이상하게 여기지만, 사람들은 알아도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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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대한 민국의 정통성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일들인데, 요즘은 잠자리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문득 그 사람들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한숨을 뱉게 된다. 몸이 허해지면 옛날에 아프던 자리에 다시 통증이 온다더니 그 말이 틀린 것 같지 않다. 눈앞의 참혹한 광경은 두 눈을 부릅뜨고 마주 볼 수 있다 해도, 옛날의 마음 아팠던 기억에는 손발이 묶여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럴 때는 내가 우선 나를 위로하려고 애써야 하는데,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지금은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고 혼자 말해보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