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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여우 Jan 11. 2019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의 각인

나의 소중한 특등으로 귀여운 남덕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책을 다시 꺼내 들었던 때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덕수궁 현대미술관 "이중섭, 백 년의 신화" 전을 다녀온 뒤였다. 원래 이중섭의 그림을 좋아했지만, 이 전시에서 그의 전 생애를 마주한 이후에는 "황소"로 대표되는 민족 화가 이중섭이 아닌 인간 이중섭으로 그를 연민하게 되었다.  


사랑. 1955 은종이에 유채

그의 미술인생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었는데, 단락마다 그의 그림풍은 확연히 바뀐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여러 미술 사조를 넘나드는 느낌이 든다. 때론 야수파 마티즈 같았다가, 입체파 피카소 그림인 듯하다가, 인상파 고흐의 빛의 그림인 듯하다가, 가끔은 일본 코믹 만화풍 같기도 하다가 전형적 한국 현대미술화 같기도 하다.


일제 치하에 지지리도 궁핍한 무명 화가가 종이 살 돈이 없어서 담배 은박지 위에 그림을 그리고, 생활고로 인해 한 지붕 아래 함께 살지도 못하는 부부간의 편지들인데도, 그의 사랑과 영혼이 담겼기에 시대의 어둠과 가난의 그늘을 느끼지 못하고 미술생애 전반부 그림들을 행복하게 감상했다.


사랑하는 아내 남덕과 두 아들은 그의 뮤즈였다. 열정을 불살랐던 그리는 일과 소중한 가족들은 단 한 번도 분리되지 않고, 늘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956, 종이에 유채 <돌아오지 않는 강> 

하지만, 그의 인생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그리겠다는 열정으로만 가득찬 가난한 예술가인 그에게 시대적 현실은 참혹했다. 2차대전, 6.25 그리고 가족들의 일본행으로 인한 오랜 이별. 생애 마지막 무렵 좌절과 병마의 대구 시절 어두운 그림들과 가족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본 뒤부터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꿈에서도 그립고 그리웠을 아내 남덕과 두 아들 태현, 태성을 만나지 못하고 그는 객지에서 외롭게 죽어간다.

북녘에 남겨두고 홀로 피난 온 뒤 만나지 못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그린 그림 "돌아오지 않는 강"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통곡을 하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9월의 파란 하늘, 찬란하게 반짝이는 가을 햇살 아래서도  도무지  진정되지 않던 마음, 그 저릿저릿함이 이제 내 몸에 각인되어 나는 이제 그의 이름만 들어도 흔들린다.


편지들 속에는 흔하고 식상하고 상투적인 모든 단어와 수식어들이 열거되어 있지만, 그것이 그의 모든 애정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기에 천상의 사랑이고, 그 자체로 예술가의 작품이 된다.




나의 귀중하고 귀여운 남덕 군.

나는 언제나 생각하오. 나의 귀여운 남덕 군은 화공 대향에게는 안성맞춤의, 참으로 훌륭하고 멋진 아내라고, 이토록 대향에게 들어맞는 귀엽고 참된 여인을 하늘이 잘도 베풀어주었다고.
화공 대향은 실로 귀여운 남덕을 어떤 방법으로 사랑해야만 남덕의 아름다운 마음에 대향의 애정이 가득히 넘칠는지 지금도 열심히 생각하고 있다오. 나의 품 안에 포옥 안기는 자그마하고 귀여운 단 한 사람인 나의 아내여, 안심하고 나를 믿고 기다려주오. 
- Page 24

그리운 사진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몇 달 만에 뵙는 사랑하는 아고라의 얼굴, 기뻐서 정신없이 입 맞추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멋있는 입술, 그러나 눈에 힘이 없어 보이고 두 뺨도 여위어 보이네요. 오직 가슴이 메일뿐입니다. 
남덕과 귀여운 아이들을 위해서 제발 세심한 주의를 다해서 버티어 주세요.
-Page 167



나의 소중한 남덕 군
이제 일주일쯤 뒤에는 성 베드로 병원에서 퇴원하게 되오. 너무나 그대들이 보고 싶어 무리를 한 탓이라고 생각하오. 당신 혼자 태현, 태성이를 데리고 고생하게 해서 면목이 없구려. 4,5일 후엔 하숙을 정해서, 당신과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려 보낼 생각이오. 기대하고 기다려 주시오.
-Page 142

세상에서 제일로 상냥하고 소중한 사람 나의 멋진 기쁨이며 한없이 귀여운 나의 남덕 군
태현이의 공부에 대해서는 너무 신경을 쓰지 말아요. 아빠가 가면 꼭 공부에 재미 붙이도록 해줄 테니까. 남의 집 아이는 아빠가 지도해주는 데 싶어 너무 성급하게 무리를 하면 소중한 당신의 몸만 해치게 되오.-중략- 
당신과 나의 소중하고 믿음직한 두 아이는 반드시 훌륭한 정신을 갖고 인생을 살아갈 가장 훌륭한 자식들이라고 믿고 있소. 
-Page 90


태현에게 

나의 태현아 건강하겠지. 너의 친구들도 모두 건강하니? 아빠도 건강하다. 아빠는 전람회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아빠가 엄마, 태성이, 태현이를 소달구지에 태우고 아빠가 앞에서 황소를 끌고 따듯한 남쪽 나라로 함께 가는 그림을 그렸다. 
그만 몸 성해라.

아빠




내 사랑하는, 날마다 보고 싶은 태성이 

잘 있었니? 아빠가 있는 서울은 서늘해서 그림 그리기에 아주 알맞고 좋단다. 모두 사이좋게, 그리고 튼튼하게, 용감하게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해주기 바란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아빠가 너희들이 있는 미슈쿠로 갈 테니... 태현이 형하고 사이좋게 기다려다오.

아빠는 태현이와 태성이가 게와 물고기와 놀고 있는 그림을 또 그렸단다.

아빠 ㅈ ㅜ ㅇ ㅅ ㅓ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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