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을 아는 사이펀 장치
8살 때, 어느 주말이었다. 우성이는 내게 물을 부으면 물이 없어지는 물 대야가 있다면서 입을 열었다.
“아빠, 대야에 물을 부으면 물이 사라지는 장치를 알아요?”
“우성아 물을 부으면 사라지는 장치 그것이 무엇이에요?”
도대체 오늘은 내게 무엇을 이야기할지 너무나 궁금했다. 아이는 종이를 가지고 와서는 거기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빠, 보세요. 이렇게 생겼는데 물을 부으면 공기의 압력에 의해서 물이 차지 않고 사라지게 돼요.”
“아~ 정말요?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이죠?”
“여기 보면 파이프가 이렇게 휘어져서 있는데요. 물을 부으면 파이프 높이만큼 물이 차올라요. 더 높이 물을 부으면 물이 파이프를 통해서 밖으로 흘러내려 가요.”
이제야 나도 이해가 되었다. 바로 화장실 양변기에서 사용하는 그 원리였다. 그런데 이 원리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을 뿐이다.
“아빠, 이 파이프를 사이펀이라고 해요. 그래서 사이펀의 원리라고 하죠.”
“우성아 맞아요. 이 사이펀은 대기 압력을 이용해서 물이 흘러내려 가게 해주어요.”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물어보니, 아이는 유레카 학습과학대백과라는 책에서 읽었다고 한다. 이 책은 우성이가 7살 때부터 자주 읽던 과학의 원리가 설명된 만화로 된 책이다. 아주 오래된 책으로 누군가가 버리려던 책을 가져온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렇게 유용하게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요즘에도 종종 꺼내서 읽고 있는 책 중의 하나이다.
로마 시대에 사용한 자동 성수 장치에 관해서 그림을 그려가면서 내게 설명을 해주었다.
“아빠, 자동 성수 장치는 헌금을 넣으면 성수를 받을 수 있는 장치인데, 지금의 자동판매기와 같다고 보면 돼요.”
그림을 잘 그리지는 않았지만, 아빠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관해서 설명하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와 함께 아이와 열띠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양변기에 설치된 사이펀의 원리를 함께 찾아보면서 배움의 시간을 가졌다. 그 후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자 사이펀의 원리를 다시 찾아보았고 아이와 다시 이야기했다. 최근에는 어항의 물을 갈기 위해 구입한 사이펀을 사용할 때면 어김없이 사이펀의 원리를 실험하면서 이야기하곤 한다.
내가 아주 어릴 때는 시골에 살 때가 생각난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통에 담긴 물속에 호스를 넣고 입으로 물을 빨아내서 물을 빼는 장난을 쳤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는 그것이 사이펀의 원리인지 모르고 경험으로 이 원리를 익혔다니…, 입으로 물을 빨아내면서 코로 물이 나오던 때가 생각난다.
첫째 우성이는 과학, 역사, 동물, 자연,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흥미가 있어 관련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을 즐긴다. 또한, 아빠와 엄마에게 자신이 책에서 배운 내용을 이야기해주면서 알고 있는 것을 스스로 정리하곤 한다.
사이펀의 원리
사이펀(Siphon)이란 기압차와 중력을 이용해서 한 곳의 액체를 위로 끌어올려 더 낮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관이 있는 장치를 말한다. 즉, 공기나 물체에 닿는 것을 피해야 하는 액체 등을 옮기는 데 필요하다. 높은 곳의 액체 표면을 대기압이 눌러서 액체가 관속으로 밀어 올라가게 되고, 그 액체는 다시 중력에 의해서 아래쪽으로 내려가게 된다.
물컵에 빨대를 꽂아서 음료를 빨아들이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다. 그런데 만약 1m의 빨대를 컵에 꽂고 입으로 빨면 물이 쉽게 빨려올까? 답은 아니다. 왜냐하면 빨대의 높이는 물이 담긴 높이보다 훨씬 더 높기 때문에 물 표면에 가해지는 대기압의 힘과 입으로 빠는 힘으로는 물을 빨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1m 높이의 빨대 속의 공기를 진공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사람의 힘으로는 너무 힘이 든다. 그런데 이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한다면 컵의 물을 빨아들이는 것은 쉽게 된다.
사이판의 원리는 실생활에서 자주 쓰인다. 대표적인 예는 화장실 양변기에 고여 있는 물을 내리면 자동으로 물이 내려가게 된다. 이때 사이펀을 넘지 못하고 남은 물은 하수구로부터 올라오는 각종 이물질과 악취를 막아준다. 세면대와 싱크대의 배수 파이프를 보면 U자나 P자형으로 되어있는데 이 역시 사이펀의 원리가 들어있다. 그리고 수족관에서 물을 갈 때 사용하는 사이펀 펌프, 수동식 주유 펌프 등이 있다.
사이펀으로 욕심을 비워내는 잔, 계영배
고대 중국에서 사용한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있다. 이것은 보통 잔과 유사하게 보이는데 중심에 사이펀이 설치되어있어 계영배의 잔에 70% 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내려 간다. 계영배의 단면을 보면 알겠지만 사이펀의 원리가 숨어있다.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서 70%만 차게 만들었고 공자도 이를 본받아 항상 곁에 두고 스스로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고 한다.
<부모 지식 탐구 at home> 매거진은 집과 일상에서 직접 경험한 아이의 호기심과 궁금증에 아빠가 대답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대화와 그에 대한 부모가 알아야 할 지식 등을 담고자 한다. 부모가 모든 것을 알아야만 지적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아이와 함께 찾고 배우면서 알아가면서 지적 호기심을 채워가는 방법을 알리고자 글을 쓴다.
- 사이펀의 원리, 변기 물은 어떻게 흘러내려 가요? @부모 지식 탐구 at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