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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아 Mar 14. 2016

로봇 407의 여름 (4화)

2. 손님(2)


대짝이는 산길에서 척 박사님을 만났다. 정확치는 않지만 대짝이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바이러스에 걸려버린 것 같다. 그래서 왜 그곳에 남게 되었는지는 기억하지 못 했다. 척 박사님은 그런 대짝이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응급처치를 해준 것 같다. 아마도 문제가 있는 선을 다른 쪽으로 돌려놓았겠지. 하지만 완전히 고쳐진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다시 고장 날 수 있는 상태라고 했다. 


박사님은 어딘가 급히 가고 있었기 때문에 덩치가 커다랗고 기계적 문제까지 보이는 대짝이를 데리고 다닐 수 없었다. 당분간은 큰 문제는 없을 거라 판단한 박사님은 대짝이의 메모리에 집으로 가는 지도를 심고 이쪽을 보낸 거다. 가서 며칠만 기다리라고 했단다.


내 이야긴 없는 걸로 보아서 집안 구석 어딘가에서 멈춰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집에 남겨둔 로봇 정도는 배려해줘야 한다. 애완견만 사랑이 필요한 건 아니다. 최소한 쪽지라도 한 장 남기고 갔다면 내가 좀 덜 피곤했을 텐데 말이다.


대짝이의 기억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박사님을 만난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중간에 잠시 기억이 끊겨서 며칠 동안 같은 자리를 헤맨 것 같다. 무언가와 부딪히는 충격으로 다시 기억을 찾은 대짝이는 박사님을 찾아 이 마을까지 온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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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짝이의 짧은 이야기를 듣는데, 하룻밤이 다 들었다. 


둘 다 잠을 자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랄까. 아니라면 평생 가도 대짝이의 이야기를 전부 듣지 못 했을 거다. 잠들어 버렸을 테니까.


대짝이의 말을 들어보니 박사님은 그리 멀리 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벌써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


“박사님을 만났다는 도로는 어디 있는 거야?”

“어... 그러니까... 자알 모르겠다...”

“거기서 왔잖아. 왜 몰라?”

“다시... 갈... 수는 있다... 지도가 여기에 있으니까...”


대짝이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설명을 할 수 없는 지도라니 답답해서 먹었던 연료가 튀어나오겠구나.


박사님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체력도 약하고 끈기도 없다. 새로운 장소에 대한 기대감이나 모험심도 없다. 새로운 기계를 만드는 일 말고는 모든 것에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전혀 마을밖에 나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행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간혹 연구에 필요한 것들을 구하기 위해 도시나 더 먼 마을에 다녀오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몇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사건이다. 게다가 나는 한 번도 여행을 같이 한 적이 없다. 나는 만들어진 후 한 번도 마을밖에 나가본 적 없는 로봇이다.


때문에 나는 박사님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발명품이나 연구에 관련된 일이라는 확신은 할 수 있다.


“박아... 사아님, 언제 오... 시일까?”

“글쎄, 지금을 알 수 없어. 널 보니 더 알 수 없다.”


정말 기운이 쏙 빠졌다. 내가 조금 더 똑똑한 로봇이었다면 대짝이의 메모리를 분석해 볼 수 있을 텐데. 하긴 분석한다고 해도 그걸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박사...님과 연...락이 아안돼?”


무전기라는 기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아주 먼 거리의 사람들끼리 소식을 주고받는 기계이다. 박사님의 연구실 입구에 설치되어있다. 사람 키만 한 크기에 가끔 지저분한 소리와 함께 종이를 뱉어낸다. 박사님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만든 기계인데, 긴 대화는 오갈 수 없지만 몇 가지 신호를 사용해서 의견을 주고받는다. 보통은 아주 특별한 소식이나 새로운 발명품 이야기, 혹은 필요한 재료나 발명에 대한 조언이나 질문을 할 때 사용한다.


나는 단순한 숫자나 인사 정도의 신호만 알고 있다. 박사님이 없다면 어떤 소식도 완벽하게 알 수 없다는 거다. 마을에선 박사님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다. 박사님의 말로는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무전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세상엔 박사님 같은 괴짜가 적지 않은 것 같다. 


혹시라도 박사님의 소식이 올지 몰라 며칠 동안 무전기 앞을 지켰지만 어떤 소식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긴 연료 떨어진 애완로봇이 무전기 앞에 서 있을 거라 생각지 못하겠지. 나는 이번 일로 많이 삐뚤어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주인의 태도 덕분에 찾아오는 로봇 사춘기인가 보다.


“연락 안 돼. 너도 큰일이겠지만 여기도 박사님이 없어서 큰일이라고.”


나는 대짝이에게 투덜거리며 무전기가 있는 방을 노려보았다.


내겐 쓸모없지만,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박사님이 이런 산골 마을에서 세상의 이야기를 건네받는 중요한 물건이다. 척 박사님이 갑자기 마을을 떠날 일이 생겼다면 그 소식은 이 무전기가 전해줬을 거다.


“깡통아.”


오늘도 아침이라는 소식을 알려주는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 구우?”

“마을 사람들.”


오늘도 박사님은 오지 않고, 박사님을 찾아온 손님만 넘쳐나는구나.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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