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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아 Mar 13. 2016

로봇 407의 여름 (3화)

2. 손님(1)


좋지 않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도와주지 않는다고 했지만, 도와줄 수 없다는 사실이 날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기분 전환에는 청소만큼 좋은 게 없다. 겸사겸사 창고를 치워보기로 했다. 


창고 구석구석을 뒤져서 설계도를 몇 장 찾아냈다. 그러는 사이 몸 여기저기에 먼지가 붙었다. 가뜩이나 볼품없는 모양새에 더럽기까지 하니 버려진 깡통 같았다.


이것들 중에 도움이 될만한 것이 있을까?


한나절을 창고 안에서 보냈다. 벌써 해가 졌는지 어두워서 설계도를 확인할 수 없었다. 로봇 주제에 어두운 곳도 밝히지 못하다니! 마을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이유를 알겠다. 


창고에서 나오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쾅쾅쾅!


박사님일까? 그건 아닐 거다. 박사님은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항상 문 밖에서 날 크게 불렀다. 잠을 잘 필요가 없는 내가 듣지 못할 리 없기 때문이다. 이건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동네 아이들이나 먼 곳에서 박사님을 찾아온 손님만이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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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쾅쾅!


“누구십니까?”

“척 박사님..., 박사님, 저...예요. 대짝이에요.”


마을 사람은 아니었다. 묘하게 나와 비슷한 목소리였다. 


문을 연 나는 커다란 그림자에 놀라버렸다. 문보다 조금 더 큰 로봇이 번쩍이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저기... 척... 박사님, 있니?”


커다란 로봇은 나를 보더니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듯이 몸을 베베 꼬았다. 전혀 귀엽지 않은 모양새였다. 문 밖에 세워놓을 수 없어서 집안으로 들였다. 주인 없는 집에 모르는 사람, 아니 로봇을 들여도 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로봇 손님을 맞아본 적이 없었다. 사람이라면 차를 내오면 되겠지만, 아몬드 오일을 내와야 하는 걸까?


“박사님...은...?”


대짝이라는 로봇의 뒤를 끄는 말투가 아주 거슬렸다. 


“박사님의 가출 소식을 들어봤니?”

“아..., 가...추우울?”

“응, 가출.”

“가추우울은 잘... 모르겠지만, 보오르름? 일주이일? 아니... 며어칠 전...쯤에  박사님...의 도우움을 받았어. 꼬...옥 이...곳으로 찾...아...오라고...”

“보름?”


대짝이라는 로봇은 커다란 덩치를 하고는 말도 행동도 조금 느렸다. 아니, 많이 느렸다. 평소에도 성격이 조급하다고 박사님께 많은 지적을 받는 내게 이 정도의 느림은 고문에 가깝다. 게다가 상대는 로봇 아닌가! 왜 이렇게 느린 거지? 프로그램이 잘못되기라도 한 건가? 메인보드를 뜯어서 고쳐버리고 싶었다. 아니, 그냥 기계를 꺼버리면 간단하다.


“박사님은 어디서 만난 거야?”

“저...기... 그러...니까...”


내 삶에 가장 큰 인내심을 사용해서 대짝이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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