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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아 Mar 11. 2016

로봇 407의 여름 (2화)

1. 박사님의 가출(2)

나는 반나절 만에 닭장에서 구출되었는데, 다행히 평소에도 자주 박사님을 찾아오던 긴 아저씨가 내가 없는 걸 이상하게 여기고 살펴보다가 발견해주었다. 혹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면 닭똥과 함께 몸이 썩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뒤로 이틀에 한 번꼴로 긴 아저씨가 와서 연료를 넣어주고 있다.  


“어제 넣어주신 연료가 아직 남아있는데요.”

“알아. 그런데 내일은 내가 못 올 것 같아서.”


연신 웃으면 말하는 인상 좋은 긴 아저씨는 척 박사님의 친구라고 할 수 있다. 박사님의 연구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고, 자주 찾아왔다. 일상생활엔 재주가 없는 박사님에게 때마다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아무래도 댐 수위조절기가 걸려서, 작년에도 조금 문제 있었잖아. 가서 상태를 좀 봐야 할 것 같아.”


긴 아저씨는 내 머리에 연료를 넣으며 말을 이었다.


“크게 고장 난 곳이 없어야 할 텐데, 사실문제를 찾아도 고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작년처럼 장마가 길어지면 큰일인데...”

“집안 어딘가에 설계도가 있을 거예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아, 그거 좋겠다. 찾아봐줘.”

“네.”


나는 긴 아저씨를 보고 크게 웃었다. 그래 봐야 내 표정은 몇 가지 되지 않아서 눈을 조금 크게 뜬것뿐이다. 늘 받기만 하는 아저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기뻤다. 


로봇이지만 난 특기가 많지 않다. 기억력이 조금 좋고, 힘이 세서 물건이나 짐을 나르고 찾을 땐 도움이 된다. 이런 기능은 로봇으론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독서로는 로봇의 기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로봇인데 하늘은 날지 못해도 간단한 변신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쓸모가 있지. 


나는 걸레질도 사람처럼 마포 자루를 들고 한다. 손이 쑥 하고 길어져서 마포같이 변신하면 간단하고 편할 텐데. 내 팔은 아주 튼튼하지만 길어지진 않는다. 다행인 건 다리는 조금 길어진다는 거다. 단지 높은 곳에 물건을 쌓아두는 박사님의 습관 덕분이겠지. 


깡통만 한 나에게 큰 기대를 하는 사람도 없다. 마을 사람들은 날 박사님이 데리고 다니는 애완로봇 정도로 생각한다. 집안일을 하고, 독서를 하는 애완동물이 어디 있겠는가? 그나마 긴 아저씨만 날 친구로 대해준다.


“아마도 창고에 있을 거예요.”

“그럼 가볼까?”


펑!


순간 밖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렸다. 


우리는 급하게 집 밖으로 달려 나갔다. 집에서 멀지 않은 마을의 공동창고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이 난 것 같진 않지만 폭음이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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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아저씨와 창고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마을 사람 대부분이 나와 있었다.


“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촌장님이 창고에 있었다.


“터졌다. 과일선별기가.”


폭발의 흔적이 창고 밖에서도 보였다. 과일선별기의 입구가 두 동강 나 있었다.


“오랫동안 안 썼으니 기름칠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곧 과일을 수확해야 할 것 아니냐.”

“그런데 왜?”

“매년 하던 일이라 누가 이럴 줄 알았겠니? 평소처럼 한 것 같은데, 뭘 잘못 건드린 건지...”


기계는 박사님이 당장 오신다고 해도 손보는데 몇 달은 걸릴 것 같았다. 이 기계는 여름마다 마을에 아주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입구에 과일을 쏟아부으면 크기별로 여섯 단위로 구분 짓고, 포장까지 하는 기계였다. 아주 복잡한 기계여서 척사님도 만드는데 꼬박 일 년이 걸렸다. 수리는 그보다 적게 걸리겠지만, 이런 산골에선 수리할 부품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거다.


“큰일이구나.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데 말이다.”


촌장님은 긴 아저씨를 따라온 나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휴, 모든 기계가 너 같으면 좋겠다만.”

“깡통이는 기능이 별로 없잖아. 단순한 기계는 고장도 잘 안 나요.”

“그래, 모든 기계가 같을 수 있나. 올해는 힘들 테지만 그래도 박사님이 빨리 돌아오시길 기다리는 수밖에.”

“내년엔 사용할 수 있겠죠?”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한 마디씩 했다. 그리고는 결국 박사님의 가출로 화제가 돌아왔다. 그러는 와중에 날 깔고 뭉개었지만, 기계인 내 기분까지 배려하긴 힘든 모양이다. 긴 아저씨만 사람들의 말에 내 눈치를 봤다. 나도 좀 다양한 표정이 있다면 있는 힘을 다해 째려봐줬겠지만 이번에도 눈을 조금 크게 뜨는 걸로 내 기분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기계 따위! 고치든, 삶아 먹든 마음대로 하라지. 뭐든 할 수 있어도 도와주지 않을 테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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