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아 Mar 11. 2016

로봇 407의 여름 (1화)

1. 박사님의 가출(1)

아침부터 집 밖이 소란스러웠다. 이 소리에 내가 아침잠을 설쳤다면 마을 최고의 농담이 되겠지.


“깡통아! 박사님은?”


그렇다, 나는 깡통이다. 내 옆구리에 쓰여 있는 모델명을 보면 내 이름은 ‘로봇 407’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를 만든 척 박사님도 기억하지 못 한다는 쪽에 내 이틀 치 연료 아몬드 오일 100ml를 걸 수도 있다. 깡통 주제에 왜 이렇게 많이 먹냐고 따지지 마라. 내가 좋아서 이렇게 만들어진 게 아니다.


“오늘도 소식이 없으셨단 말이냐?”

“이거 큰일입니다.”


이렇게 아침마다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드는 이유는 척 박사님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세계여행이라고도 하고, 다른 마을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짧은 여행을 갔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모두 추측일 뿐, 내가 알기론 말없이 집을 나가버린 경우를 가출이라고 한다. 이런 경우엔 성인 가출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박사님은 아직 가출 중이십니다.”


나는 큰 소리로 오늘의 보고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다. 박사님의 가출은 벌써 열흘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열흘 전 박사님은 평소처럼 연구실과 창고를 오가며 바쁘게 뚝딱거렸고, 나는 그런 박사님의 뒤치다꺼리로 바빴다. 때문에 박사님이 집 밖으로 나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또, 들었다고 해도 특별히 목적지를 묻거나 잡지 않았을 거다. 마을 사람들도 그렇다. 평소에도 엉뚱하기로는 마을 최고이니 한밤중에 나무 위에 올라가 있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을 거다.


하지만 박사님이 마을 밖으로 나가는 걸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건 이상하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다니 박사님 답지 않은 행동이다. 작은 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박사님의 주위는 언제나 소란스럽기 때문이다.


Copyright © By Young-a. All right reserved.


박사님의 가출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없어진 건 아니다. 


집 청소도 해야 하고, 쓸모없이 달걀을 낳아대는 두 마리 닭에게 모이도 주어야 한다. 이런 깊은 산속 마을에서 살아가다 보면 매일 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같이 쌓인다. 물론 내가 아닌 박사님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박사님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지만, 다른 지시를 받지 못한 나는 충실한 로봇으로써 평소처럼 생활하고 있다. 단지 오늘처럼 아침마다 찾아오는 손님들 덕분에 나의 유일한 취미인 아침 독서를 방해받고 있다. 로봇 주제에 사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전부 박사님이 시킨 일이다.


나로 말하며 독서대까지 갖고 있는 로봇이다. 박사님께 여러 분야의 책을 추천받아서 보고 있는데, 지리나 역사, 소설까지 분야가 다양하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박사님이 기억할 수 없는 책까지 내게 기억시키려는 꼼수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왠지 우아한 로봇의 취미 같아서 계속하고 있다.


문제는 사람들은 나의 이런 취미를 존중해주지 않는다는 거다. 책을 읽고 있는 로봇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독서를 하는 로봇은 한가해 보이는 걸까? 박사님의 가출 이후로 아침마다 찾아와서 나를 방해하고 있다.


사람들의 조바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여러 면에서 박사님의 도움을 받고 있다. 특히 농사에선 박사님이 만든 발명품들이 커다란 힘이 되고 있었다. 과일이나 야채를 보관, 수확하는 기계나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 씨앗 심는 기계까지 모두 척 박사님이 만든 발명품이다. 하지만 완벽한 기계란 없다. 또, 일 년에 한 철만 사용하는 기계들도 많다 보니 사용할 때가 되면 여기저기 손을 봐야 한다. 이제 곧 여름이다. 싱싱한 과일과 야채를 키우고, 가을 곡식을 수확하기 위한 준비로 농사가 바빠질 때다. 


이런 시기엔 자연스럽게 박사님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깡통아, 있니?”


촌장님의 큰 아들 긴 아저씨가 왔다.


“어서 오세요.”


수리가 필요한 기계는 농기구뿐이 아니다. 로봇인 나도 정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다른 것보다 섬세하고 훌륭한 기계로써 조금 더 자주 말이다. 


박사님이 사라지고 내게 가장 큰 문제는 연료였다. 나는 이틀에 100ml의 식물성 기름이 필요하다. 마을 주위에 널린 게 올리브 나무와 아몬드 나무라서 기름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박사님의 연구를 위해서 집안 창고 깊숙한 곳에 종류별로 많은 기름이 저장되어 있었다. 혼자 쓴다면 2,3년은 거뜬히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문제는 연료를 먹는 방법이다. 나도 사람들처럼 입이 있어서 빨대로 쭉 빨아먹는 다면 박사님도 편하고 나도 편하고 좋았을 테지만, 섬세하지 못한 박사님은 내 연료통을 자기 편한 대로 만들어버렸다. 내 머리 한가운데 동그란 구멍을 만든 것이다. 깔때기나 호스를 사용해서 연료를 넣는데, 키가 큰 박사님은 허리를 조금만 숙이면 내 머리의 뚜껑을 열 수 있다. 하지만 바닥에 있는 물건을 들거나 옮기는데 특화되어있는 팔의 구조상 내 손은 구멍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내가 이런 문제를 알아차린 건, 박사님이 사라지고 삼일만이었다. 


닭장 안에 달걀도 수거하고 청소도 하러 들어간 참이었다. 가슴의 연료 표시등이 붉은색으로 바뀌더니 순식간에 몸이 굳어 버렸다. 아마도 그 전부터 깜빡이며 위험을 알렸겠지. 그 사이엔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신경 쓰지 못했다. 한동안 말을 하거나 눈을 깜빡일 순 있었지만, 내 말을 들을 수 있는 건 두 마리의 닭뿐이었다.





< 다음 편에 계속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