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커다란 로봇(2)
정원에는 잘 익어서 무겁게 매달려 있는 토마토, 포도, 자두, 복숭아가 가득 있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먹지 못할 양이지만, 욕심 많은 베베 아줌마가 그런 것 따위 생각하지 않고 가득 심어 버린 것이다.
“좀 많지?”
“아주 많은데요. 열 가족은 먹어도 되겠어요.”
“어머, 그 정도는 아니야. 자 빨리 좀 따서 정리해줘.”
“따놓아도 다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저장해야지. 말릴 수 있는 건 말리고, 잼도 만들고. 어서 서두르자.”
베베 아줌마는 오늘 다 해치울 생각인지 부엌에서 불을 때기 시작했다.
“빠알리 하자.”
같이 끌려온 대짝이가 하늘을 보면서 말했다.
“저어녁부터 바... 람이... 많이... 불 꺼다. 과이일... 떨어... 질만큼... 세게 부울꺼다...”
“뭐? 알았어. 빨리하자.”
대짝이의 알 수 없는 말에 대꾸해줄 기운이 없었다. 눈앞의 일거리가 모든 걸 질리게 만들었다. 로봇도 정신적으로 지칠 수 있다.
우리는 쉬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과일을 땄다. 점심 식사도 챙겨주지 않아도 되는 공짜 일꾼이 된 셈이다. 원체 키가 큰 대짝이는 고개만 들면 과일에 손이 닿았다. 하지만 나는 가장 작은 포도나무보다도 작았다. 다행히 접었다 펼 수 있는 다리를 사용해서 겨우겨우 일을 할 수 있었다. 다리가 늘어난다기보다는 발바닥에 사다리가 나오는 모양새여서 썩 보기가 좋지는 않았다. 역시 박사님은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다.
내 우스꽝스러운 모습보다 더 짜증 나는 일은 따로 있었다.
“어머, 새로운 로봇이네요.”
“대짝이라고, 척 박사님을 만나러 왔다네요. 오늘만 좀 도와달라고 했더니 선뜻 도와주겠다고,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그러게요. 척 봐도 듬직하네요.”
“일을 어찌나 잘하는지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아무리 보아도 나보다 대짝이가 일을 더 많이 한 것 같진 않았다. 그런데 보는 사람마다 대짝이 칭찬으로 입이 아픈 베베 아줌마를 보면서 배알이 꼴렸다.
나는 항상 더 큰 몸을 갖고 싶었다. 사람처럼 자랄 수도 없는데, 평생 깡통으로 살아야 한다는 건 조금 억울했다.
언젠가 척 박사님의 로봇 설계도를 본 적 있다. 대짝이보다는 작지만, 보통 사람보다는 조금 큰 로봇이었다. 크기도 크기지만 쓰여있는 능력도 엄청났다. 나도 처음부터 그런 멋진 로봇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박사님, 저도 이런 로봇이 되고 싶어요.”
“지금은 조금 어렵구나.”
“왜요? 아직 이런 로봇은 못 만드나요?”
“그보다 로봇도 자신에게 맞는 그릇이 있단다. 너도 이런저런 책을 많이 읽어보았으니 알겠지만, 몸도 마음도 어울리는 짝이 있는 거란다.”
“그럼 저는 이렇게 멋진 모습에 어울리지 않나요?”
“너도 곧 자라게 될 거다.”
웃으며 답하는 박사님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박사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분이다. 하지만 농담은 즐겨하신다. 나는 로봇이라 거짓과 농담을 잘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생각해보니 내가 자랄 거라는 말은 농담이었나 보다. 깡통이 자랄 리 없으니 말이다.
오늘 대짝이를 보니 조금 더 침울해졌다. 대짝이는 저런 몸에 어울리는 로봇인가?
하지만 그런게 다 무슨 소용일까. 거대한 덩치로 늠름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은 처음 본 대짝이를 나보다 신뢰하는 것 같다. 다들 대짝이와 대화를 안 해봐서 그런 거다.
일을 다 하니 해가 져버렸다.
온 마을에 베베 아줌마의 잼 만드는 냄새가 가득했다. 집안을 지나가던 사람은 꼭 들러서 잼 한 숟가락, 혹은 한 통씩 얻어갔다. 이래선 아줌마가 먹을 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깡통아.”
“오늘 고생했는데 줄게 이거밖에 없네.”
종일 우리보다 더 바빴을 아줌마가 언제 만들어왔는지 포도씨유 한 병을 내밀었다.
“조금 전에 만들어 왔어. 포도가 많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안 나왔네. 그래도 하루 종일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