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박사님을 찾아서(2)
긴 아저씨는 무척 바빴지만, 박사님을 찾으러 간다는 말에 다른 일을 제쳐두고 달려와 주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네. 그런데 정말 박사님을 찾으러 갈 생각이야?”
“네. 대짝이가 중간까진 길을 알아요. 그리고도 아주 멀리 가신 것 같진 않은데, 안 오시는 걸 보면 다른 문제가 생기거 같아요. 아마도.”
“괜히 길만 어긋나는 것 아니냐? 저녁부턴 바람도 좋지 않아. 여름 같지 않은 바람이야. 태풍이라도 오는 건 아닐지.”
“그럴 수도 있지만, 여기 있는 것보다는 그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요. 여름이 끝나도록 찾지 못하면 돌아올게요. 정말 태풍이라도 오면 더 박사님이 계셔야죠.”
“태풍... 안 온다....”
기억이 온전하지 못한 대짝이도 태풍은 싫은 모양이다.
“그래야지. 이렇게 연료통을 만들어도 완전한 건 아니니 조심해야 한다.”
“네.”
열심히 작업을 해주는 긴 아저씨를 보니 일전에 말한 댐이 생각났다.
“아저씨, 댐 상태는 어떤가요?”
“생각보다 좋지 않아. 그냥 수문을 열긴 힘들 것 같아. 나사 몇 개가 심하게 녹슬어 있더라고. 완전히 열면 부러질지도... 열수나 있을지, 비가 많이 오면 그냥 열어놓기라도 해야 할 텐데.”
“곧 장마철이 아닌가요?”
댐은 마을의 식수와 농수를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비가 많이 와서 댐의 수위보다 물이 많이 찬다면 물이 마을 쪽으로 넘칠 거다. 그렇기 때문에 비가 많이 내릴 때는 수위 조절기를 사용해서 물을 강 쪽으로 내보낸다. 수위 조절기는 댐의 문을 열어주는 기계이다. 자동으로 물의 양을 조절하지만 장마철이 아니면 거의 문을 열일이 없다.
이전에 사용하던 저수지를 대체하도록 만든 댐과 수위 조절기는 박사님과 마을 사람들의 가장 멋지고 훌륭한 발명품이다. 늘 물이 부족한 산속에서 댐 덕분에 농사나 생활이 훨씬 수월해졌다.
“장마가 오기 전에 과일을 수확하는 게 큰일이니까. 조절기를 고칠 틈이 없어. 고칠 수도 없겠지만. 미리미리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올해는 비가 적게 오길 기도해야지.”
이렇게 바쁜 긴 아저씨에게 내 연료 주입기를 만드는 일을 부탁하다니,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기분이다.
다행히 내 연료통은 큰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어서 하룻밤도 걸리지 않고 만들 수 있었다. 내 머리와 연료통을 새지 않게 잘 연결하면 된다. 연료를 빨아들이는 모터는 급수기에서 떼어왔다. 곧 장마가 올 테니 당분간은 필요 없겠지. 박사님이 돌아오면 베베 아줌마에게 새 급수기를 하나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이렇게 내가 애를 쓰고 있는데 그 정도는 해주겠지.
내 몸통만 한 연료통을 등에 메고 호수를 머리에 연결한 조금 우스꽝스러운 로봇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차피 깡통. 깡통이 두개인 로봇이 된 것뿐이다.
이제 2,3일에 한 번씩 모터에 연결된 손잡이를 돌려주면 연료가 내 머리로 빨려 들어갈 거다. 손잡이를 돌릴 타이밍은 가슴의 표시등이 빨간 불로 알려주겠지, 닭장에서처럼.
대짝이와 나는 연료통이 완성되자마자 떠나기로 했다. 우리에게 다른 준비는 필요하지 않다. 대짝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더 온전할 때 떠나야 한다.
“정말 이렇게 갈 거야?”
아침부터 길을 나서는 우리를 붙잡고 긴 아저씨가 물었다.
“네. 연료를 2L나 넣었으니 앞으로 한 달은 끄떡없어요.”
“그래도 걱정인걸.”
“저... 도.... 있으니... 까...요...”
괜찮지 않은 속도로 대짝이가 거들었다. 긴 아저씨의 안색이 더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금세 다녀올게요. 박사님도 저희와 함께 오는 게 빠를지 몰라요. 대짝이가 기억력이 부족하지만 덩치가 크고, 저는 덩치가 작지만 기운이 넘치니까요.”
아직 해도 뜨지 않아서 밖은 캄캄했지만, 우리는 출발했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