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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아 Mar 19. 2016

로봇 407의 여름 (9화)

5. 한 걸음(1)


나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특별한 로봇은 아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마도 척 박사님 정도일 거다. 이대로 박사님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버려진 고철이 되겠지. 옆에서 걷고 있는 대짝이도 마찬가지다. 하나는 기억을 잃고, 하나는 연료가 떨어져서 결국은 멈춰 서게 될 거다. 우리 같은 로봇은 결국 누군가 돌봐주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러니까 나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야.”

“으응?”


이런 소릴 대짝이에게 이야기해봐야 못 알아듣겠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코앞에 닥친 슬픔도 알아차리지 못하니까. 아니, 지난 슬픔도 기억하지 못하니 괜찮은 건가. 여행을 떠나려니 나도 감상적이 되나 보다.


“비가 오려나? 날이 잔뜩 흐렸네.”


나는 짧은 목을 꺾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젯밤만큼은 아니지만 바람도 많이 불었다. 


“아니, 비... 는 열흘 후에 올 거다... 아주 많...이 올 거다.”

“응?”

“여기... 가... 잠길 만큼... 올 거다...”


우리는 마을을 빠져나와 몇 시간을 걸었다. 사람보다는 빠른 걸음이어서, 마을 건너 고갯길에 도착해있었다. 그런데 이곳이 잠길 정도면 우리 마을도 완전히 잠길 것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기간 동안에 그렇게 많은 비가 내린 적은 없다.


“그걸 어떻게 알아?”

“모르겠다아. 하늘...이나 공기... 냄새를 맡으면 다음... 날씨가 떠... 오른다. 생각했는데... 나는 날씨를 예측하는 로... 봇... 이일... 까?”

“그동안 날씨가 많이 맞았어?”

“내... 가아 기억하는 동안에는 다... 아... 맞았다.”


대짝이의 새로운 능력에 대해 들으면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어제 낮에 말한 강풍도 맞았었지.


“잠깐, 그럼 진짜 비가 그렇게 많이 올 수 있다는 거야?”

“진짜... 그렇게... 많이 올 거다. 빠알리... 움직여... 야 한다...”


긴 아저씨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기억 속에서 들렸다.


‘비가 적게 오길 기도해야지.’


빨리 박사님을 찾아야겠다. 마을이 물에 잠긴 후엔 늦는다.




우리는 이틀을 꼬박 쉬지 않고 걸었다. 그 사이에 작은 마을이 두 개나 있었지만 박사님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쉬지 못 해서 관절 사이가 뻐근한 것 같았다. 이럴 때 기름칠이라도 해줘야 하는데,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걸어서 삼 일째 아침에 대짝이의 머릿속의 남아있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걸음이 느린 박사님이라면 일주일은 걸릴 거리였다. 


“여... 기다. 여기... 서 박사님을 만... 났다...”


높지 않은 산 중턱에 있는 길이었다. 


나는 떠나기 전에 보고 온 지도를 기억해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도시다. 그리 크진 않지만 작은 마을들 사이에서 꽤 든든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란 간단한 설명도 함께 떠올렸다.


“이 길로 가면 도시야.”

“마앚다... 이쪽으로... 갔다... 박사님은...”


우리는 조금 더 힘을 내 걸었다. 덕분에 반나절만에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Copyright © By Young-a. All right reserved.



크지 않은 도시라고 했는데, 엄청 커다란 건물과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 마을의 백 배, 아니 천 배쯤 사람이 많아 보였다. 


도시에선 우리 같은 로봇도 흔한지,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앞서 지나친 작은 마을에선 할아버지부터 꼬맹이까지 나와서 우리를 구경했는데, 특히 대짝이처럼 커다란 로봇은 처음이라며 신기해했다. 


도시에선 간혹 보이는 관심도 대짝이가 아니라 나였다. 깡통을 짊어진 모습이 웃긴 데다가 보기 드문 구형이라서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마땅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박사님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역시나 아무도 박사님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망한 것 같아.”


우리는 도심의 광장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 너... 무 많다..., 너... 무... 넓다...”

“박사님이 이곳에 있을까?”

“여기... 말... 고 더... 멀리 간... 건... 아닐... 까?”

“그런데 이 도시는 말이야, 여덟 개의 마을로 가는 길이 있어. 그 마을을 통과하면 아마도 서른두 개쯤 되는 마을에 갈 수 있어. 몇몇 큰길은 이것보다 더 큰 도시까지 연결돼 있다고.”

“... 모르겠... 다...”


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광장 바닥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도시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새겨져 있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로군.”

“으응?”

“여기 쓰여있잖아. 키가 너무 커서 바닥이 먼 건 아니겠지?”


잠깐 기분이 상해서 대짝이에게 시비를 걸어보았다. 나는 덩치보다 속이 더 작은 모양이다. 대짝이에게 짜증을 내면 무엇하겠는가. 


“여... 기... 그림 같았은... 거?”

“응? 바닥에 쓰여있잖아.”

“나아는... 못... 읽... 겠는데...”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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