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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직스푼 May 26. 2023

어린이집 보내시려구요? 산호세에선 대기만 ‘1년’

엄마는 여유롭게 아아 한 잔을 마시고 싶다

오늘은 실리콘밸리 데이케어(어린이집)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실리콘밸리는 아주 광범위하니까, 산호세를 둘러싼 쿠퍼티노, 써니베일 등 산호세 주변 지역의 이야기라고 보면 됩니다.


이곳에선 많은 한국엄마들이 고민을 합니다. 처음부터 미국 데이케어를 보낼 것인가, 한국형 데이케어를 보낼 것인가. 아니면 힘들어도 내가 아이를 이곳저곳 데리고 다닐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엄마들 몇몇이 힘을 모아 엄마학교를 운영할 것인가.


다 장단점이 있지만, 데이케어는 무엇보다 엄마의 수고를 좀 덜어준다는 데 있습니다. 물론 비용은 적지 않게 듭니다. 대략 한 달에 1500~3000달러 정도 든다고 보면 될 것 같네요.




한국에서도 아이가 돌을 지날 무렵 어린이집을 보내려면 낳자마자 줄을 서야 한다고 하죠? 이곳 산호세에서도 인기 있는 곳에 보내려면 비슷합니다. 몇 군데를 정해 투어를 하는데 인기 있는 곳은 1년 정도 잡아야 해요. 투어도 아무 때나 받지 않지요. 한국처럼 집에서 가깝지도 않고 차로 20~30분씩 걸려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에 보내려는 엄마 마음은 다 똑같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단 보낸 데이케어가 너무 마음에 들면, 아예 근처로 이사를 오는 엄마들도 있어요.


저는 이곳에 온 직후부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미국에선 한국과 달리 어린아이를 직접 데리고 있는 게 낫지 않나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홀로 육아하는 것이 힘들었기에 이곳저곳 정말 많이 알아봤습니다.


데이케어 보내기 전, 아이를 데리고 시간도 때우고 놀게 할 겸 이곳 저곳 공원을 정말 많이 돌아다녔더랬죠. 나뭇가지 줍는 건 왜그리 좋아하는지..


우선 제가 고려했던 곳은 역시 미국식 데이케어였어요. 그래도 기왕에 영어를 쓰는 곳에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죠. 그런데 많은 곳에서 기저귀를 떼지 않은 아이는 받아주지 않았어요. 혼자 화장실에 갈 수 있는지 여부가 선택지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어야 하는데, 힘들 경우 얼마간의 돈을 내고 급식처럼 주문할 수 있지만 영양학적으로 균형 잡힌 음식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많은 미국 아이들처럼 피넛버터 샌드위치에 스낵 정도 먹을 수 있게 나온다고 보면 되거든요.


그렇다고 한국식 데이케어보다 결코 저렴하지도 않습니다. 괜찮은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 데이케어 체인들은 오히려 더 비싸지요. 예를 들어 인기 있다고 하는 A데이케어의 경우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미국인들의 일상에 맞추어 아이들도 6시 반부터 보낼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스케줄은 8시 30분부터 시작하는데, 거의 30~45분 단위로 활동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엄마는 너무 어린아이에겐 스케줄이 벅찬 것 같다며 결국 데이케어를 옮겼어요. 그리고 아이들의 낮잠도 평소 신발을 신고 뛰어노는 카펫 위에다 그냥 이불을 펴고 재우는데, 한국 엄마들에게는 다소 거부감이 들 수 있지요.


미국식 데이케어의 장점은 분명합니다. 영어는 물론 미국 문화와 일찍 접할 수 있으니까 현지화가 빨리 될 수 있고, 한국계가 아닌 다른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도와주기보다는 아이가 직접 스스로 무언가를 하는 것에 익숙해질 수 있고요. 밥을 혼자 스스로 먹고, 치우는 것은 물론이고 화장실에 가는 경우엔 아이가 직접 뒤처리를 하는 것도 빨리 배울 수 있지요. 한국보다 좀 더 어른들이 도와주는 경향이 적거든요. 데이케어 체인의 경우 지능계발을 위한 자체 프로그램을 개발해 적용한다고 홍보하는 곳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식 데이케어는 어떨까요? 한국과 아주 똑같이 운영하는 곳에서부터 미국식과 절충형으로 운영하는 곳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한국 어린이집에서 사용하는 앱을 똑같이 사용하고, 시스템도 거의 동일하게 운영하는 곳도 있어요. 선생님들도 한국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한 경우가 많고요.


첫 아이라 그런지 학교에서 배워 온 것들을 집에서 이야기하거나 보여줄 때면 신기하기만 합니다.ㅎㅎ

한국식 데이케어를 선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언어 면에서 모국어를 먼저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많은 한국계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는 영어 사용을 선호한다고 해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이 영어를 사용하니까요. 그래서 집에서도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본인 세대에서 미국에 정착한 한국 엄마아빠들이 종종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갈등이 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게 밥입니다. 한국식 데이케어는 대부분 별도 비용을 내지 않고 아침과 점심, 간식을 제공하는데 비교적 제대로 갖춘 식단이 나옵니다. 아침식사는 오트밀과 과일 등으로 간단히 나오더라도, 점심은 한식을 주로 하고 반찬과 국을 제공해요. 아이 영양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한국 엄마들로서는 마음이 놓이는 거죠.


프로그램은 몬테소리식 교육을 하는 곳에서부터 자체 프로그램을 갖춘 곳까지 다양한데, 그 역시도 엄마의 선택입니다. 우리 아이는 어릴 적부터 검증된 프로그램으로 많은 걸 배우게 하고 싶다고 하면 해당 교육법과 프로그램을 갖춘 곳으로 처음부터 보내는거죠. 프로그램이 대동소이한 것 같다고 하면 아이 케어와 식단 등을 보고 판단합니다. 아, 그리고 프리스쿨이나 유치원을 함께 운영해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다닐 수 있는지도 결정 요소 중 하나겠네요.


한국식 어린이집 시스템을 채용하지 않은 곳의 경우 매일매일의 식단과 아이 활동사진 등을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예 담임 선생님과 엄마가 만날 기회를 주지 않고, 미국처럼 활동사진이나 식단사진 등을 제공하지 않고 간단히 한두마디 적어주는 곳도 많습니다.




'굳이 미국에 가서 왜 한국 데이케어를 보내고,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할까?'라는 의문을 갖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상하게 볼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같은 문화권에서 같은 언어를 쓰며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편안함을 줄 수 있으니까요. 비단 우리뿐 아니라 중국계 미국인들도, 인도계 미국인들도 각기 모국 시스템을 따르는 데이케어나 학원 등을 운영합니다. 미국에 어릴 때부터 녹아들 것인가, 우선은 모국 문화와 언어에 익숙해지게 할 것인가는 결국 엄마의 선택이죠. 미국에 오래도록 살 것이라면 현지 문화와 언어에 익숙해지는 것은 금방이라고들 말하니 제가 보기엔 어려서부터 두 국가의 문화와 언어를 자연스레 익히게 두는 것이 오히려 경쟁력을 키워줄 것도 같습니다:)


아이를 데이케어를 보내고 안정기에 접어든 지금, 뒤돌아보면 어떤 스타일의 학교 시스템을 선택할 것인가는 결국 아이의 성향도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가장 인기가 있고 좋은 시설이어도 아이 성향과 맞지 않다면 매일매일이 괴롭고 힘들겠지요. 매일 아침 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도 엄마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고요. 어느 나라에 있든 어릴 때는 거의 모든 것이 엄마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이의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자라는 내내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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