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비가 살살 내리면, 왠지 이발소의 분무기가 생각나는 건 저뿐인가요?
지금보다 더 어릴 적, 그러니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용실을 다녔다. 요즘에는 단골 이발소가 생겨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있다. 어릴 때는 보통 동네의 엄마가 주로 다니던 단골 미용실에 따라가 커트를 했다. 그다지 머리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2년째 다니는 이발소가 있고, 이발소 마니아가 되었는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풀어보겠다.
때는 2~3년 전이다. 아니 4년은 더 되었으려나. 고향 대구에 내려가 엄마의 동네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 깎을 차례를 기다리는데 유난히 손님이 붐볐다. 구석에서는 파마약 냄새를 풍기는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구운 계란과 고구마를 나눠먹으며 수다를 떨었고, 나는 드디어 차례가 되어 자리에 앉았다. 원장님이 "많이 기다렸지? 비 오면 손님이 유독 더 많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날은 비가 내렸다. 신발 속 발가락 부분의 양말이 흠뻑 젖을 정도는 아니고, 하늘에서 분무기로 살살 뿌리는 정도. 봄이었고, 공기는 차분하고 촉촉했다. 길가에 고여있는 물 웅덩이에 살짝 스치듯 파문이 일어날 정도의 강수량이었다. 유난히 이런 날씨에 손님이 많더라는 말을 듣고 난 이발을 받는 동안 혼자 조용히 공감했다. 나만 해도 은근히 밖에서 비가 희미하게 흩뿌리는 날에 '흠, 오늘은 약속 잡기도 귀찮은데 머리나 깎으러 갈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에는 미용실에서 풍기는 냄새가 더 진하다. 머리카락이 습기를 잘 머금고 있어 사각사각 머리카락 자르는 소리와 맛이 더 깊어진 것 같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 곁눈질로 창 밖을 보며 촉촉이 젖은 도로와 가로수를 구경한다. 그리고 자동차들의 비 맞은 도로 위를 달리는 소릴 듣는다. 그렇게 싫어하는 염색약과 파마 볶는 냄새도 조금 덜 역하게 느껴지고 오히려 구수하게 느껴진다.
전업주부도 이런 날씨면 더 미용실에 가고 싶지 않을까? 배우자가 출근하고, 아이가 등교하고 나면 집은 조용하다. 흐린 날이라 몸은 무겁고, 빨래하기에도 애매하다. 청소를 조금 하고 집안일을 마무리하여 여유가 생길 때, 혼자 집 안에 가만히 있기보다는 동네 근처 미용실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차례를 기다리고 머리를 새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기다리면서 주변 사람들과 이런저런 수다도 떨면 더 좋고.
그러다 보면 울적한 날씨에도 밝은 미용실 분위기에 기운을 차릴 수 있고, 나들이는 못 가지만 새롭게 단장한 기분을 낼 수 있다. 미용실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설레는 발걸음일 것이다. 머리를 하고 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유쾌하고 가볍다. 머리도 한결 깔끔하고 가볍고, 미용사가 머리도 시원하게 감겨주었다. 한결 정리된 내 머리카락 양만큼 몸무게도 가벼워진 것 같다. 적당히 내리는 이슬비 아래 우산을 쓰고 집에 돌아가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처지는 흐린 날에도 그래도 무언가 하나는 했다는 느낌이 들어 뿌듯하다.
머리카락이 자라 머리가 적당히 덥수룩해질 때, 마침 날씨도 흐려지면 난 이발소에나 갈까 하는 마음이 든다. 이슬비 내리는 날에는 머리를 깎고 싶다. 나만 이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