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스타트업 인사담당자가 코딩 교육 단체인 멋쟁이 사자처럼 직장인 버전에 들어가서, 힘들게 코딩을 배워 해커톤에서 우승하는 작은 성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스타트업에서 인사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인사담당자가 왜 개발을 배우게 됐는지부터 얘기하자면..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말하고 싶다.
첫 번째 이유. 개발자 채용 업무를 위해 개발 언어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단순히 프론트엔드/백엔드가 뭔지, 어떤 프로그래밍 언어가 쓰이는지 암기만 하는 걸 넘어서, 내가 직접 그 언어를 배워서 아는 척하고 싶었다. (언어의 '이름'만 아는 것과 그 언어로 직접 '코딩'해본 경험은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직접 코딩도 해보면서 프론트엔드, 백엔드, 머신러닝, 서버, 프레임워크, AWS 등등.. 개발자들의 용어들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두 번째 이유. 나도 만들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었다. 단순한 발명이 아니라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사이드 프로젝트' 하나 해줘야 밀레니얼 직장인 아니겠는가. 현업 개발자만큼 전문적으로 하진 못하겠지만, 도전은 해보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내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멋쟁이 사자처럼 직장인 2기 모집 광고를 보게 됐다.
멋쟁이 사자처럼은 아는 사람들에겐 정말 유명한 코딩 교육 단체다. 서울대학교에서 시작, 전국 대학교로 퍼져나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 이걸 직장인도 할 수 있다고?
아.. 가격의 압박이..
바로 클릭해서 들어가 보니, 역시 무료는 아니었다. 직장인 대상의 수업이다 보니 가격이 쎘다. 맥북 한 대 살 수 있는 가격. 교육 주제는 '웹 개발'이고 일주일에 2번씩 2시간 수업, 12주 커리큘럼이었다.
고민이 됐다. 가격은 둘째 치더라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개발 공부까지 병행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칼퇴근을 하고 사람 붐비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선릉역으로 가는 걸 상상하니 벌써 어지러웠다.
며칠을 고민했다. 이대로 회사 생활만 할 것인가? 아니면 비싼 돈 내고 고생해서 개발을 배워볼 것인가? 막연한 꿈을 가진 나와 게으른 내가 경쟁했다.
어차피 개발자 할 것도 아닌데, 뭐하러 비싼 돈 내고 고생해서 개발을 배워? 그 돈으로 생산성 있는 다른 교육을 듣자.
이번에도 포기하면 개발은 영영 못 배워. 그깟 돈이 문제야? 멋쟁이 사자처럼 멤버가 되볼 수 있는데. 고생 좀 해보자.
등록 마지막 날까지 고민하다가, 충동적으로 신청 버튼을 클릭했다. 엇 근데 .. 그냥 돈만 낸다고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려 '지원동기'와 '만들고 싶은 웹서비스'를 써서 제출해서 붙어야 돈도 낼 수 있었다.
돈만 낸다고 다 받아줄 리가 없었다.
내가 착각했다. 비싼 커리큘럼이긴 했지만, 애초에 돈만 낸다고 받아주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정신 차리고 그 자리에서 지원동기를 써 내려갔다. 시간이 부족해서 글을 세련되게 다듬지는 못했지만, 평소 개발을 배우고 싶던 이유와 만들고 싶은 아이디어를 솔직하게 적어나갔다.
그리고 하루 뒤 지원 결과가 문자로 발표되었다.
와! 서류 검토가 빨라서 좋았다.
이제 결제하고 첫 수업을 기다리면 되는 건가? ㅎㅎ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오리엔테이션 안내 문자를 받았다.
1) 1분 자기소개 파일 제출
: 직장인들도 자기소개를 피해 갈 순 없구나. 귀엽네. ㅎㅎ
2) 멋사 계정 발급(@likelion.org) 및 Slack, AWS 가입
: 도메인 멋있다. 슬랙은 회사에서도 쓰는 툴이니까 익숙하고. 오오오 드디어 AWS를 가입해보는구나..!
3) HTML/CSS 사전 과제
: ???
시작 전에 인강을 들어야 하는구나..!
아, 사전 과제가 있었다. 첫 수업 전까지 코드카데미라는 해외 코딩 교육 사이트에서 HTML과 CSS 과정을 이수하고 오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오히려 좋았다. 본격 수업 전에 예습을 시키면 강사 입장에서도 훨씬 가르치기 수월할 거니까. 애초에 개발과 관련 없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니까. 이게 더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나는 퇴근 후 씻고 다시 집 앞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열고 조금씩 개발의 초초초 기초를 배우기 시작했다. <h1> 태그와 <p> 태그부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