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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Feb 06. 2023

첫 아파트 구입기

2021년 10월

2015년에 처음 경기도에 근무하면서 마음 한켠에 언젠가 고향으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그 후 발령이 날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발령이 안 나면 전세를 주면 되겠지 하는 태평한 마음으로 고향에 아파트를 알아봤다. 나는 어떤 큰 결정을 내릴 때 내 감을 믿는 편인데 고향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감이 왔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알아보고 부동산에 전화를 돌렸다. 부모님 계신 곳에서 차로 20분 정도의 거리에 신도시가 생겨서 신축 아파트들이 많은 동네였다. 수원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괜찮은 매물을 알아봤고 그중 세입자가 있어서 조금 싸게 나왔던 매물을 부모님이 대신 봐주셨다. 집이 높은 곳에 있어 참 괜찮다는 연락이 오자마자 계약금을 쐈다. 대책이 없는 판단이었지만 곧 잔금까지 치렀다. 그 과정에서 판매자가 마음을 바꿔 계약금의 배를 줄 테니 계약을 취소하던지, 천만 원을 올린 금액으로 재계약을 하던지 선택하라고 했는데 후자를 선택했고 협상 끝에 500만 원 올려 잔금을 치렀다. 전에 살던 집은 전세만기가 다 되어 고향에 내려가기 전까지 용인에 있는 친구의 집에서 2달 정도 월세를 지불하고 신세를 졌다.


2022년 2월

그렇게 바라던 고향으로 발령이 났다.(정말 러키가이였다) 구매했던 아파트에는 월세 세입자가 살고 있었는데 은퇴하신 노부부였다.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때는 여느 가정집과 같이 살림살이들이 많아 집이 좁아 보였지만 짐이 빠지고 난 다음을 상상하며 행복한 미래를 꿈꿨다.


2022년 4월

3달 정도 부모님이 계신 곳에 얹혀살았다. 어렸을 때 내가 쓰던 좁은 방에서 거의 잠만 자다시피 했다. 코로나가 걸려 자가격리를 하던 와중에는 집이 좁아 정말 답답했다. 그래도 곧 있을 이사에 대한 기대감으로 버텼다. 드디어 세입자가 나가는 날이 되어 이사를 했다.

이삿날 짜장면은 국룰

짐이 별로 없어서 내 차와 아버지 트럭으로 이사를 다했다. 이제 이 넓은 방 3개짜리 아파트를 채워야 한다. 내 취향으로 이 넓은 공간을 채우려니 빈 공간이 많이 생겼다.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니 빈 공간이 여백 인테리어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한동안 캠핑의자를 거실에 펴고 생활했다. 소파를 인터넷에서 구매했는데 지방이다 보니 배송이 많이 느렸다. 


소파가 들어오면 집이 집 같아진다.


집을 구매하고 여러 가지 가전 가구로 채워 넣는 과정이 피곤하지만 행복한 나날이었다. 앞으로 이 집에서 펼쳐질 내 안정된 생활이 기대됐다.


내 취향으로 물든 나의 집


원룸, 빌라, 오피스텔만 전전하던 내게 아파트 조경은 선물이었다.

조경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있던 아파트였는데 초여름 밤에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자면 행복감이 몰려왔다.

커뮤니티 시설도 잘되어 있는데 특히 헬스장이 내가 사는 동 바로 밑에 있어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자주 운동을 한다. 운동 후 사우나를 하면 열심히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좋은 꿈을 꾸게 해주는 침대

투자 측면에서 보자면 이 아파트 구매는 악수 중의 악수였다. 빌어먹을 내 투자인생은 신기하게도 마이너스의 연속이다. 내가 사면 떨어지고 팔면 올라간다. 수원에 샀던 대형 아파트와 빌라가 그랬다. 그래도 실거주 1채는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투자 면에서라기 보다는 인문학적으로 맞는 말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집'이라는 것은 돈으로만 따질 수 없는 가치이다. 내 집이 생기고 그 집에서 사랑스러운 사람과 함께 미래를 꿈꾸는 것만큼 큰 행복은 없다. 이 집에서 나의 일은 모두 척척 잘 진행됐다. 결혼을 약속했으며 승진을 했고 건강한 몸을 얻었다.

내 나름의 크리스마스, 내 나름의 저녁식탁, 내 나름의 취미 공간

나이가 들어 점점 남의 눈치를 강요받는다. 이 집에서만큼은 내 나름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이 집이 좋다.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겠지만 집 다운 집이 생겨 안정감을 느낀다. 그 안정감 속에서 새로운 도전거리를 계속 찾다 보면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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