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선택들의 결과물이다
20대 초반 애나를 처음 만나면서 인생에 선택이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난생처음 프로그래밍을 접하고 배운 지 몇 개월이 안되고 나서 애나와 함께 프로젝트를 같이 했다. 놀랍게도 개발자는 나 혼자였다.
이제 막 동작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좋아했었을 단계였던 내가 프로젝트를 이끌 역량이 안 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애나와 제시는 이를 알고도 선택을 했었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와 달리 이미 오랜 시간 동안 회사에서 일을 했었으니 당연히 알겠지. 그럼에도 리스크를 감당하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타이밍이 달랐던 터라 팀원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책임감만 엄청 강한 상태였다. 팀원들이 나를 믿고 선택해줬으니 그에 대한 부응을 해야 한다는 게 강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프로젝트를 진행할수록 항상 역량 넘어서는 기능들이 왔고 개발을 혼자 이끌어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그 책임감에 압도됐다. 컨트롤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 두려웠다.
과연 이 프로젝트를 이끌 역량이 되는가?
프로젝트를 위해서 놔줘야 하는 게 아닌가?
프로젝트를 위해서 나보다 더 역량 있는 개발자를 구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이렇게 행동은 하지 않고 생각만 하다가 스스로를 지옥 속에 가두고 두려움에 압도되는 상황들을 만들어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의 나에 대한 강한 믿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러다 결국 팀원들에게 개발을 포기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 당시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했다.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혼자 개발하는 리딩 하는 환경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프로젝트를 위해서 내가 포기하는 게 맞다고.
당시 팀원들은 포기하겠다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제시는 원망했고 애나는 왜 포기를 한 거지? 에 대한 의문도 던졌다.
당시 애나가 했던 이야기
알아요. 모든 상황이 힘들었기 때문에. 왜 포기했을까? 첫 번째 생각.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한다. 팀워크라는 것이 쉽게 생기지가 않는다. 안 맞는 건 안 맞거든. 그 팀워크를 지난 1년 동안 맞춰왔고 잘 넘어왔다. 좀 더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면, 루시 같은 사람을 또 찾는데 힘들고 긴 시간이 들겠구나. 두 번째는 왜 포기했던 거지? 잘 맞춰가면 할 수 있었던 것 같았는데. 기술적인 상황이 아니라, 어쨌든 넘어갈 수 있었는데.
이런 선택에 대해 매우 아쉬워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질문하는 애나에게 의문이 들었다.
내가 이걸 선택한 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그러면서 생각을 해봤다.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포기를 선택했구나. 진짜로 프로젝트를 이끌고 욕심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넘어섰을 텐데 이유를 붙이고 싶었구나. 그 상황들이 버거워서 도망치고 싶었구나.
점점 지쳐가고 어려운 상황들에서 나를 믿고 나아가는 것도 부족한 판에 멈춰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을 했었구나.
그러면서 내 인생에 선택이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이제는 더 이상 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개발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이제는 문제가 생기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내가 했던 선택들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지금의 나에겐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없다.
지금 상황들은 선택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걸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