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12월 24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비가 오는데도 미세먼지가 많다고 한다. 한동안 겨울 같은 추위가 계속 되었다가 그제부터 조금 따뜻해졌다. 겨울이 되면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찾아온다. 어쩔 수 없이 한 해를 돌아보게 되고 새해는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해 본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퍼져 있던 날들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조금 더 힘을 내서 무언가를 했어야 했다. 아니, 그마저도 쉬지 않았다면 분명 더 안 좋았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그것을 쪼개서 어디에 조금 더 썼는가의 차이인 것이다. 당연히 회사일을 가장 많이했다. 먹고 살아야 하는 것도 있지만 다른 이와의 계약은 '안 해도 그만'으로 피할 수 없다. 사실 어느 정도의 성취감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 있다. 그런 게 없었다면 진작에 괴로워하다 그만두었을 것이다.
작년에 세운 목표들을 찾아봤다. 출시, 대선, 생산, 수영, 연애 그리고 이사. 수영은 15점이다. 가장 근접하지 못한 것은 수영이다. 100점을 줄 수 있는 것은 출시와 연애이다. 대선은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되진 않았지만 차선이 되었다. 70점을 주겠다. 이사는 꼭 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한다면 서울로 가려고 했는데 서울에 가진 못했고 이사는 했다. 이사는 따로 점수를 매기진 않겠다.
생산. '문화'적인 것을 생산하고자 하는 갈망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새해 목표로 '생산'이라는 단어를 적었을 때 생각한 것은 음악적인 무엇이었다. 수업에서 노래를 하나 만들었으니, 이것도 아주 못한 것은 아니다. 기타 레슨도 상반기까지는 꾸역꾸역 했고, 연습실도 구해서 연습도 해보았다. 생산에 대해선 점수를 어떻게 매겨야 할까.
생산은 이루어 낸 목표라 할 수 있다. 연말 회사 송년회 장기자랑에서 1등을 했기 때문이다. 케이팝 댄스 리믹스라고 했지만, 중간중간에 짧은 극을 넣었고, 케이팝 댄스이긴 하지만 하나를 제외하면 사실 마임에 가까워서 내가 할 만한, 할 수 있는 동작들이었다. 할 수 있는 노래들을 선곡했다. 인공지능과의 사랑 얘기는 이미 다 나와 있는 것이었다. 내가 잘한 것은 그것들을 하나의 서사로 엮은 것이다. 과거에 쌓아온 것들을 총동원했다. 케이팝 선곡은 트위터에서 본 것들과 서점에서 본 작사가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했다. 어설픈 몸동작이지만, 가수들이 춤추는 영상을 보고 그것을 따라할 수 있었다. 일정을 세우고 무리를 움직이는 것도 오래전에 이미 다 해본 것들이다. 예전에 해보고, 보아온 것들이 바탕이 되고 토대가 되었다. 판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큰 종이를 들고 와서 여기다가 용을 이렇게 저렇게 그려보자, 라고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와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춤을 추어서 우승했지만, 나의 탤런트라면 역시 판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판만 만들어선 1등을 할 수 없다. 디테일을 채울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생산에 100점을 줄 순 없다. 평생 모든 것을 혼자 하진 않겠지만, 혼자서도 좀더 완성에 가깝게 판 위를 채워 나가는 것,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나머지를 채워줘야 하는지 말할 수 있는 것, 그런 것들이 부족하다. 춤신춤왕이 같은 팀에 있어서, 그분의 탤런트를 잘 빌려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음 해의 생산. 아직은 생산할 수 있는 날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지만, 남은 날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 역시 느끼고 있다. 왜 하고 싶은 걸 빨리 찾지 못했을까, 빨리 찾았으면 달랐을까 생각해본다. 10대 때 잘한다고 생각했던 건 실체가 불분명한 '컴퓨터'였다. 컴퓨터를 잘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애매한데, 당시의 잘한다고 했던 것은 지금 시대에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잘 다룰 줄 안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지금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것만큼 컴퓨터가 대중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특별해 보일 수는 잇었다. 그렇게 재수까지 해서 '컴퓨터'가 들어가는 학부에 입학했고, 내가 '컴퓨터'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순식간에 깨달았다.
군대에 가기 직전에 친한 선배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했던 말은, '네가 뭘 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야'였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찾기 시작한 건 군대에 다녀온 이후였다. '나'와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고민하면서 인생의 방향이 분명해졌다. 33살의 나는 25살 겨울부터 시작되었다. 나의 짧은 삶은 그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그렇게 8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아직도 생산은 하지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나에 대해서, 이번에 장기자랑을 준비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상금을 탈지 안 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1시간에 1만원씩 하는 연습실을 30시간 가까지 턱턱 빌리면서, 생산에 필요한 수단을 얻는 방법도 알고 돈도 낼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많이 웃었다. 답은 30시간이었다. 열흘 가까이 밤마다 3시간 정도씩 연습을 했다. 이것은 평소에는 전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기타를 5분도 채 안 치는 사람이 하루에 3시간씩 매일 회사일이 아닌 무언가를 했다. 연습을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이 정도는 해야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일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하루 종일 앞으로 해야 할 연습과 부족한 점, 음악 편집, 어제 선생님께 지적받은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최종 결과물의 퀄리티가 아주 높진 않지만, 어쨌거나 매일 같이 그렇게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올해 내가 가장 길게 한 활동은 기타 연습인데, 이렇게 매일 생각하고, 밤마다 연습하는 게 싫지 않을 정도로 나는 기타를 좋아할까. 여전히 배움이 많이 부족하다. 내가 기타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끄집어내봤자 초라한 무언가 밖에 없다.
이렇게 2018년의 다짐을 하게 되는 건가. 지금하지 않으면 나중도 없다. '어른의 장기자랑'을 조금 더 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