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던 고등학생 시절의 사악한 거짓말
춤을 추던 시절, 힙합 바지에 치렁 치렁한 액세서리를 하고 시내를 걷고 있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덥석 잡으며 말을 걸었다. 야, 너 마이즈 아니냐? 너 뭐야? 하며 인상을 쓰고 돌아봤다. 거대한 덩치. 기억에 없는 얼굴이었다. 그 옆에는 연예인 뺨치게 아름다운 여성이 그놈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뭐야, 이 자식. 여자랑 같이 있으면서 시비를 걸어?
“역시 몰라보는군. 나 관이야.”
독특한 이름의 고등학교 친구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어렴풋이 그 시절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시간 좀 있냐며 커피나 한잔하자는 말에 흔쾌히 승낙했다. 옛 친구야. 괜찮지? 그가 옆에 있는 여성에게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 카페로 이동해서 지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옆에 있는 분은 자기 여친이란다. 그분은 우리가 지난 추억을 대화하는 동안 심심했는지 근처 오락실에 다녀오겠다며 나갔다. 예쁜데 게임까지 하는 여자라니. 이 자식 성공했구나.
녀석은 직업 군인이 되었다고 한다. 어려운 집안 환경상 대학은 갈 수 없었고 취업도 애매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몸이 커진 거구나. 지나가는 춤 꾼에게 시비도 걸 줄 알고. 너는 새끼야 반가우면 손부터 나가냐? 한참 이야기 하던 중 옛 생각이 떠올라서 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냈다. 7만 원이 있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거 받아라. 내가 미안한 게 있어서 그래. 더 줘야 하는 건데, 내가 지금 이것밖에 없다. 오래도록 마음에 묵혀둔 일 때문이었다. 마치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나를 콕콕 찌르던.
고등학교에 진학한 첫날, 첫 번째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일단 매점으로 달려갔다. 중학교 내내 학교 매점에서 일하며 식사를 해결했기에 여기에서도 같은 방식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코파이 하나였지. 이 고등학교 매점에서는 직접 끓인 라면도 팔았다. 나도 나름 경력이 쌓였으니 초코 파이 대신 라면으로 제시해도 괜찮지 않을까? 나의 10분 알바 제안은 이곳 매점 아주머니도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그렇게 매점에서 일을 하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중, 말을 거는 다른 반 학생이 있었다. 관이었다. 너 어떻게 라면을 매번 얻어먹는 거야? 마치 무용담을 말하듯 방법을 알려주자 자기랑 교대로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나도 가끔은 쉬고 싶었기 때문에 매점 아주머니에게 부탁했고, 그렇게 우리는 교대로 매점 일을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관이는 나만큼이나 집이 어려운 친구였다. 우리는 종종 함께 할 일을 찾았다. 겨울에는 군 고구마 장사를 했고 전단지를 돌리러 뛰어다니기도 했다. 아파트 계단을 뛰어다니며 문마다 치킨집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다. 당시는 전문 세차장이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주말에 아파트 단지에 있는 자동차 세차 전단지를 붙이기도 했다. 신기하게 문의가 와서 세차 일을 하기도 했다. 시체 닦는 아르바이트에 대한 소문을 듣고 같이 지원하기도 했지만, 미성년자라고 거절당했다. 우리는 온갖 잡다한 일을 함께 했다. 매번 돈이 되는 일을 찾았지만, 녀석은 나와 달리 결코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았다. 정직하게 돈을 버는 친구였다. 착한 놈 같으니. 어쩌면 그래서 더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시절에는 학폭을 당했기 때문에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함께 어울릴 무리를 찾았다. 그 과정에서 그림 그리는 오타쿠 무리에 낄 수 있었다. 그중에서 훈이라는 녀석이 있었다. 어느 날인가 둘만 교실에 남아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녀석이 무언가 고백할 일이 있다며 입을 열었다. 뭣, 고백? 난 여자가 좋은데, 어떻게 거절하지?...라는 걱정을 했지만, 사실 그런 고백은 아니었다. 훈이의 현재 가족은 가짜라고 했다. 사실 친아빠가 있고, 부모님 몰래 그분을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게 뭐야? 대단한 사연은 아니네. 항상 그렇지만, 진지한 상대에게 별거 아니라고 대하면 오히려 친해지는 것 같다. 이런 비밀을 알고도 나를 똑같이 대해주다니! 뭐 이런 건가? 진짜 별 일 아닌걸. 훈이는 독립을 위해 돈을 모으는 중이라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혼자 살고 싶다며. 이후 관이와 함께 하던 전단지 알바 등을 할 때 훈이도 불렀다. 인형 탈을 교대로 쓰기도 했다. 그렇게 종종 셋이 함께 일을 했다. 훈이는 불법에 연연하지 않고 뭐든 하려고 했으므로 나와 조금 더 잘 맞았다.
어느 날 훈이가 고액 알바를 찾았다고 했다. 친아빠의 가게인데, 야간 근무라서 다른 일과 겹치지 않을 거라고. 그를 따라간 곳은 나이트클럽이었다. 관이는 꺼림칙해했지만, 제대로 된 업장이기도 하고 거부할 수 없는 금액이기에 같이 일하기로 했다. 훈이에 비해 관이와 나는 체구가 작은 편이라서 그런지 주방으로 보내졌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미성년자라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주로 설거지를 했고 과일이나 땅콩 같은 기본 안주를 접시에 배치하는 등 허드레 일을 했다. 단순한 일인데 알바비는 하루에 몇 만 원씩 받았다. 아들의 친구들이라고 챙겨주신 걸까? 하지만 그리 오래 일하지는 못했다. 클럽에서 일한 지 2주 인가 3주 정도 되었을 때 사건이 벌어졌다. 어쩐지 밖이 소란스러웠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고 폭력을 쓰다가 도망치는 취객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 남자가 돈을 내지 않아 훈이가 따라갔다고 했다. 걱정되는 마음에 밖으로 나갔는데, 한 무리의 남자들이 자동차 한 대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동차 위에는 훈이가 마치 앞 유리를 깨려는 듯 무언가를 휘두르고 있었다.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저 자식, 싸움도 잘하네? 무척 든든해졌다. 종종 중학교 때 학폭 가해자였던 놈들과 마주치면 어쩌나 싶은 불안이 있었는데, 녀석과 함께라면 이제 무서울 게 없을 것 같았으니까. 그 사건 이후 나는 훈이와 더욱 친해졌지만, 순둥이 관이는 그렇지 않았다. 훈이와 함께 하는 일을 피하기 시작했고, 나는 때로는 관이와 둘이서, 때로는 훈이와 둘이서만 일을 해야만 했다.
어느 날 사고가 터졌다. 관이가 새벽 신문 배달과 우유 배달을 하다가 뺑소니 차에 치인 것이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관이의 건강이나 생명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죽여도 죽지 않을 녀석이었으니까. 그보다 그놈이 하던 알바는 어쩌나, 혹시 배달하지 못한 하루치 우유와 신문 값이라도 물어줘야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훈이와 함께 문병을 갔다. 빈 손으로 갈 수는 없어서 돈을 모아 과일 바구니를 하나 샀다. 오늘 만큼은 저렴한 것을 사지 말고 좋은 것을 사자! 당연하지! 병실에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 관이가 혼자 있었다. 부모님은? 일하셔야지. 그렇구나. 그렇겠네. 결국 우리끼리 과일을 깎아 먹었다. 오랜만에 배부른 날이었다. 관이가 몸은 괜찮은데, 단기 기억 상실이 있다고 했다. 그 탓에 지난 몇 주간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나를 보더니 어렴풋이 돈 생각이 난다고 했다. 이 자식. 아무리 같이 일하던 사이라도 사람을 보고 돈 생각이 난다는 건 뭐냐? 5만 원이라는 구체적인 액수가 떠오른다면서 잃어버린 기억이 있다면 알려달라고 했다.
실은 관이에게 돈을 빌렸었다. 그 금액이 5만 원이었다.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안 줘도 되지 않을까? 기억 상실이라는데... 하지만 5만 원이라는 구체적인 금액까지 떠올린다면 조만간 알아차리는 것은 아닐까? 결국 하지 말아야 될 말을 했다.
“아 이거 참… 사고가 나서 말 안 하고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말이야… 네가 나한테 5만 원 빌려갔어. 안 줘도 괜찮으니 나중에 천천히 돌려줘.”
얼마 지나지 않아 퇴원한 관이는 나에게 5만 원을 주었다. 받지 말았어야 했지만, 욕심이 양심을 이겼다. 그래도 작은 죄책감이 남아 있었던 걸까? 속여서 번 돈을 가족들의 생활비에 쓰고 싶지는 않았다. 어쩐지 저주받을 것 같은 느낌이었고 내 죄를 떠넘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쁜 짓은 내 선에서 스스로 벌 받는 것으로 끝내자는 생각에 게임을 샀다. 뭔가 사고의 전개 과정이 이상하지만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역시 중2병 탓이었을까? 내가 돈을 받는 것을 지켜보던 훈이가 말했다.
“와 알고 보니 이 새끼가 제일 사악한 놈이네. 너 내가 자는데 칼 꽂을 놈이다? 관이가 보는 눈이 없네. 그 자식은 나보다 너를 피해야겠다. 임마!”
“관이가 너 피하는 거 알고 있었어?”
“그럼 모르겠냐”
이후 내가 게임 매장에서 정식 일자리를 구하게 되고 집 근처 헌 책방에 자주 다니게 되며 두 친구와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훈이는 친아빠의 영향으로 안 좋은 쪽으로 빠지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그림에 재능이 있었는지 제품 디자이너의 보조로 일을 시작했다. 우리 그림 그리는 오타쿠 무리의 성공 사례(?) 중 하나였다. 녀석의 취업 축하 파티는 우리가 함께 일했던 나이트클럽의 한 룸에서 진행했다. 훈이는 나에게 재능의 한계와 질투를 느끼게 한 사람 중 하나였다.
“7만 원? 장난하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 기억났어. 임마!”
“역시 그랬구나.”
“주려면 10만 원을 줘야지. 빌린 게 5만 원, 받아간 게 5만 원.”
“아, 그렇지. 그런데 지금 현금이 없어서.”
“됐어, 새끼야! 농담이야! 근데 너 춤추냐? 옷 꼬락서니 하고는. 야, 그러지 말고 너도 그냥 군대 들어와라. 우리 같이 없는 놈 들한테는 이게 최고일 수도 있어.”
“아니, 난 게임 만들어야지.”
“아직도 게임이구나. 역시 그때 그 일 때문에?”
“뭐 그렇지.”
이야기를 한참 하던 중, 오락실에 다녀온다던 관이의 여자 친구가 돌아왔다. 그녀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녀석도 슬슬 가겠다고 했다. 헤어지기 전에 휴대폰 번호를 교환했다. 종종 연락하자. 여자 친구의 어깨에 손을 두른 채 녀석은 떠나갔다. 카페에서 창 밖으로 바라본 관이는 훈이보다 더 커진 몸집이었다. 순둥이 착한 놈이 강한 놈보다 더 강해졌다. 게다가 예쁜 여자친구까지. 역시 최종 승리는 착한 놈인가? 한동안 카페에 앉아 우리 세 사람의 과거를 떠올렸다. 관이가 받지 않은 만 원짜리 일곱 장이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졌다. 내가 나쁜 놈이라는 증거 같았다. 우연한 그날의 만남 이후, 나는 한 번도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