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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호 Nov 27. 2023

왜 그 사람은 나를 깔볼까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더라도, 아주 대충 다녔더라도 학교생활을 했다면 우리는 안다. 남을 깔보는 행동은 올은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남을 깔보기도 한다. 나보다 못 하다, 내가 그래도 저 사람 보다는 내가 낫지. 라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 생활을 제대로 했다면 남을 깔보다가도 자신이 남을 낮잡아 보거나 얕보면 알아차린다. 아 내가 남을 깔보고 있구나, 내가 타인을 얕잡아 보고 있구나. 내가 뭐라고 이런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는거지 하며 알아 차린다. 알아차림이 오고나면 우리는 타인을 얕보거나 낮잡아 보고 있음을 멈추려 한다. 이런 일이 반복 되다보면 결국 근거없이 나를 높여 남을 낮잡아 보거나 나를 낮게 보지만 남을 더 얕잡아 보려하지 않는다. 


남을 낮잡아 볼 수도 있고 얕잡아 볼 수도 있다. 사람이 가진 감정 중에 하나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이를 비도덕, 비윤리 또는 다른 상식을 가지고 이를 멈추려 한다. 


하지만, 가끔 이를 이해하지 못 하고 남을 낮잡아 보려 하는 사람이 있다. 나를 그렇게 보려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럴 때면 그 사람들의 의도가 대체 무엇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의 저변에는 가장 큰 이유가 존재한다. 


남 깔보기를 일상으로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자신이 살고 싶다는 생존본능이 깔려 있다. 

상식을 빗겨나가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저변에는 생존이 깔려 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그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생존에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타인과의 비교가 필요치 않다. 하지만 내가 생존에 위험을 느끼고 인정을 받지 못 한다고 느낀다면, 내가 타인, 내 옆의 누군가보다 낫다고 증명을 해내야 한다. 


예를들어 회사라면, 나는 내 능력을 꾸준히 증명해 내야 내가 회사에 남을 명분이 생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럴 수는 없다. 언제나 나보다 능력이 좋은 사람은 나타나게 되어있다. 신입 사원이던 어딘 가에서 이직을 해 왔던 사람이던, 아니면 명퇴가 가까워지는 나이를 함께 겪는 동기던 나보다 더 잘난 사람이 생긴다. 


그 와 중에 나를 증명하지 못 하면 나는 회사를 나가야 한다. 원하지 않았음에도 내 능력이 밑천을 보이고 그 밑천이 들어나게 되면 방법이 없다. 아니,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나보다 능력은 나보다 좋으나, 착하거나 나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을 깔보는 것이다.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생존전략은 나보다 못 한 사람을 비난하거나, 나보다 잘난 사람도 나랑 다를 바 없다고 폄하하는 수 밖에 없다. 취할 수 있는 생존전략이 몇 개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능력을 폄하하고 깔보고 낮잡아 보며 그 사람의 평판을 깎아내면 내가 가진 능력이 더 높게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자신만이 살고자 그런 행동을 한다. 내가 살고자 함에 있어 도덕이나 윤리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내가 살고자, 내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내 능력을 증명하기 보다 타인의 약점만을 잡아 그 사람을 낮잡아 폄하하여 그 사람의 평판을 만들어 내려 한다. 살고 싶기 때문에. 


생존 앞에는 도덕도 윤리도 없다. 내가 죽지 않으려면 어쩔 때는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할 때가 있다. 칼로 찔러 죽이지 못 하니, 나보다 능력이 좋아도, 나보다 성격이 좋아도, 그 사람이 가진 약점을 극대화해 떠들고 그 사람 뒤에서 그 사람의 흉을 보고 폄하하려 든다. 


그런 사람이 존재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자신의 생존에 유리하게 행동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내 능력과 내 성격이 그렇게 폄하받고 낮잡아 보일 것이 아님을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하는게 중요하다. 


그 누가 아주 자그마한 근거나 사실로 나를 깍아 내리고 얕잡아 보려 하고 그러한 평판을 만들어 낼려 한다 할지라도, 내가 내 스스로에게 자신할 수 있고, 내가 나로서 존재 할 수 있는 자존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생존을 위함에 있어 동물은 사리분별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것에 쓸려 다닌다면, 근거없이 남을 얕보고 약점을 잡아 평판을 깍아 내려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깍아 내리고 평판을 죽이려 하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도덕적인 인간이라 보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인간들이 더 성공하거나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가 나 스스로에게 떳떳하다면 이런 인간들에게 휘둘릴 이유가 전혀 없다. 


나를 깍아 내리거나 깔보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 사람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람에게 내가 휘둘리고 있는지, 내 마음이, 내 자존심이, 내 자존감이 그 사람의 말한마디에 갈대 휘둘리 듯 움직이지는지 알아 차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일은 회사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친구, 연인, 모든 인간관계에서 벌어 질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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