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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Apr 09. 2024

봄과 함께 엄마가 왔다

쉰 살의 유학일기 - 봄편 #1

지난주 엄마와 이모가 다녀가셨다.

대한민국의 K-장녀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어김없이 모두 가지고 있는 나는 일본에 건너와서도 엄마를 초대(?)하는데 꽤 오래 망설였었다.

일단은 엄마 혼자 일본에 오게 하는 일이 불안했다.

내가 일본에 오기 전 엄마는 노인성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그 결과 깜박깜박하는 일도 잦아 혼자 오시게 하는 건 엄두도 못 냈다.

내 집에 방이라도 하나 더 있으면 남동생이나 올케와 함께 오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형편도 아니고, 아부지와 함께 오시라 하기엔… 하, 할말하않이다… ㅜㅜ

아무튼 여건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말로만 오시라 오시라 하면서도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서지 않은 채 차일피일 시간만 흘렀다.

그러다 지난 1월 말, 이모부가 돌아가셨다. 오랜 암투병을 하셔서 마음의 준비는 했었겠지만 워낙에 금슬 좋던 이모는 힘들어했고, 나는 이모에게 바람도 쐴 겸 엄마랑 같이 삿포로로 오시라 했다.

78세의 엄마와 73세의 이모…

내가 일본에 살면서 치러야 할 가장 크고 어려운 숙제가 닥쳤다.


두 분은 딱 일주일간 머물다 가셨다.

맛집도 가고, 온천도 가고, 쇼핑도 하고,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가셨다.

4월의 홋카이도는 관광비수기다.

눈이 녹아 길도 질퍽하고 아직 꽃도 안 피었고 바람은 세고 날씨는 춥다.

좋은 날 놔두고 왜 하필 볼 거 없는 계절에 두 분을 오시라 한건 학교가 방학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많이 늙으셨다.

걸음도 느리고 체력도 딸려 엄마에 맞춰 모든 걸 천천히 진행해야 했다.

오래 걷는 것도 힘들지만 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하셔서 미리 예약해 놓은 렌트카를 취소하기도 했다.

여기저기 근교에 모시고 가려고 계획울 짱짱하게 세웠지만 반은 실행하지 못했다.

그나마 젊은 할머니인 이모는 여행 내내 이모부를 추억하며 혼자 즐기고 있는 것을 미안해했다. 먼저 간 남편에게도 미안하고 두고 온 형부에게도 미안하고…

그래도 드시고 싶다는 거 다 드셨고 보고 싶다는 거 다 보셨고 사고 싶다는 거 다 찾아 사드렸다.


두 분 다 아주 만족하셨고 나도 후회 없을 정도였다.

두 분이 서울에 무사히 도착하셨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내 머리를 스스로 쓰다듬어주며 셀프 칭찬을 했다.


お疲れ様でした。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방전되어 깊은 잠을 잤다.

살면서 가장 큰 효도를 한 기분이다.


아유… 서울 가면 벚꽃 다 졌겠다. 서울서는 아직 안 펴서 못 보고 왔는데 돌아가면 다 져서 못 보겠네. 올해는 벚꽃 못 볼 거 같은데… 여기는 언제 벚꽃 피니?


이 말을 일주일 내내 들었지만 한 번도 화 안 낸 나 자신이 아주 기특하다!!

엄마, 이모. 여기는 4월 말에 벚꽃 핀대. 그래도 꽃 본다고 또 올 생각 절대 하지 마시고 꽃구경은 내년에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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