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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May 09. 2024

골든위크? 골든먼쓰! - 1

쉰 살의 유학일기 - 봄편 #3

일본의 골든위크가 끝났다.

골든위크라 하면 4월 말부터 5월 초에 걸친 일본의 황금연휴이지만 나는 통 크게 위크가 아닌 먼쓰로 장기휴일을 보냈다.

봄방학 기간이던 4월 1일, 엄마와 이모가 일주일간 다녀가신 것을 시작으로 학교가 개학했음에도 째버리고 (3일간 학교에 가긴 갔다) 오키나와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나흘 후, 오키나와 여행의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에 남편이 왔다.

학교를 하도 빼먹게 생겨서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정공법을 택했다.


한국에서 가족이 옵니다. 2주간 가족과 함께 있을 겁니다. 나는 7월에 귀국할 예정이라 여기에 있는 동안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니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학교에 오겠지만 여행할 때는 결석하겠습니다.

(이런 뻔뻔한 학생이라니!!)


담임선생님은 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嘘も方便‘(거짓말도 하나의 방편)이라며, 자기는 사정을 알고 있으나 학교 교칙상 여행을 허가할 수 없으니 학교에 못 오는 날엔 아프다고 전화해 달라고 했다.

일본인들은 융통성이라고는 개미콧구멍만큼도 없는 줄 알았더니 이게 무슨 일이람?

학교에서 허락을 하건 안하건 난 놀러 다닐 동안 학교를 갈 생각이 없었고 계속 머라 하면 그냥 때려치울 생각도 했는데 완전 개이득이다!!


남편은 네 번째 삿포로 방문이다.

계절별로 한 번씩 온 셈이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 방문이 아닐까 싶다.

남편은 항상 3박 4일 짧게만 다녀갔어서 왔다 가면 늘 아쉬움이 너무 컸다.

유유자적한 휴식도 좋지만 이번엔 기억에 남을만한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차를 렌트해서 샤코탄에 다녀왔다.

푸른 바다색이 아름다워 샤코탄블루라는 이름이 붙은 곳으로 샤코탄 반도의 끝에는 홋카이도의 유산인 카무이미사키가 있다.

바람이 거센 곳이라 종종 출입통제가 되곤 하는데 다행히 날이 좋아 반도의 끝까지 다녀올 수 있었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거센 바람을 맞으며 절벽 위를 손잡고 걸으니 모든 게 좋았다.

흠, 24년 차 부부가 이 정도 금슬이면 꽤 훌륭하지?

유명하다는 우니동도 먹고, 바다가 보이는 노천탕에서 온천도 하고… 완벽한 하루였다.


마사미언니의 도움으로 산지에서 직접 毛蟹(케가니, 털게)를 배송받았다.

홋카이도의 명물, 게요리는 한 번쯤 먹어보고 싶었으나 게요리집은 가격도 너무 비싸고 평판도 들쑥날쑥이라 엄두가 안 났었다.

마트에서 게를 팔긴 하지만 손바닥만 한 냄비랑 프라이팬 하나만 갖고 사는 자취생 살림으로 게를 직접 찌는 건 더 엄두도 안 났다.

남편이 ‘홋카이도 홍반장’이라고 별명 붙여줄 정도로 마당발인 언니 덕분에 살이 꽉 찬 털게를 집에서 편하게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사미언니의 친구가 하는 위스키바에서 상큼한 칵테일까지!!!

아마 남편의 삿포로 방문 중 가장 알차게 보낸 일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시는 안 올 곳이야. 삿포로의 마누라 집.

찬찬히 둘러보고 가. 이것도 추억이 될걸.


귀국하는 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내 스노보드 장비를 들고 귀국했다.

지난번 엄마 오셨을 때 겨울옷을 보내고 이번에 스노보드까지 보내 겨울의 흔적을 모두 지웠다.

하나하나 비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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