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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May 11. 2024

골든위크? 골든먼쓰 - 2

쉰 살의 유학일기 - 봄편 #4

남편이 떠나고 난 다음 날, 친구들이 왔다.

쓸쓸해할 여유는커녕 숨 돌릴 틈도 없이. ㅎㅎ

중학교 2학년, 열다섯 살에 만나 지금까지 쭉 내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중학교 졸업 후 겹치는 학교 하나 없이 뿔뿔이 흩어져 고등학교를 갔어도 만났고 (이건 동네 친구였어서 가능했다) 대학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었을 때도 만났다.

각자 짝을 만나 결혼을 하고 둘씩 셋씩 아이를 낳고도 만났다. 각자의 식구들을 다 끌고 만나(다 모이면 거진 40명…) 하루종일 ‘체험 밥집아줌마’를 찍으면서도 신난다고 모여서 밤새 수다를 떨었었다.

이젠 애들도 다 크고 훌훌 단신으로 내게 올만큼 세월이 흘렀다.

30년 넘게 똑같은 얘기를 해도 늘 새롭고, 새로운 얘기를 해도 늘 익숙한 친구들.

3박 4일 짧은 일정에 나에게 선물 하나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숨바꼭질처럼 용돈을 숨겨놓고 간 마음은 여전히 열다섯인 친구들.

칭구야, 나 그 용돈으로 이쁜 스카프 샀어~~


친구들이 떠난 다음 날, 이번엔 캠핑이다!

홋카이도에는 두 명의 홍반장이 산다.

맛집부터 여행지, 특산물까지 홋카이도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마사미 언니가 한 명의 홍반장이고, 또 한 명의 홍반장은 친구 L상의 남편이다. (이 분은 진짜 홍 씨다!!)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처럼 든든한 만능 해결사들이다.


언니, 골든위크에 캠핑 갈건대 같이 가실래요?

애들이 시험공부한다고 같이 안 가겠대요.

우리 부부하고 같은 텐트에서 자는 거 괜찮으면 같이 가요.


오오~~~ 홋카이도에서의 캠핑이라니!

텐트가 아니라 비박을 한대도 가야지!

캠핑장소는 増毛(마시케).

마시케는 삿포로에서 차로 세 시간 정도 떨어진 홋카이도 북서쪽 루모이 진흥국 관내에 있는 작은 마을로 홋카이도 북서 해안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가는 길 중간중간 朝市(아사이치, 아침에 열리는 시장)에 들러 신선한 해산물을 샀다.


쿠니마레 양조장에서 사케도 샀다.

国稀酒造(쿠니마레주조)는 일본의 최북단의 양조장으로 쇼칸베츠 산의 맑은 물을 이용해 항구마을답게 생선과 잘 어울리는 술을 빚어내는 양조장으로 카라구치 사케를 주로 만들고 있는 홋카이도의 명문 양조장이라고 한다.


아직 그늘에 눈이 남아있고, 커다란 자작나무가 너무나 근사한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우고, 이야기하고 먹고 마셨다.

만난 지 6개월 밖에 안된 L상도, 오늘 처음 만나다시피 한 L상의 남편 홍반장님도 아주 오래 만난 사이처럼 익숙하고 편안했다.


아침 해장라면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고 집에 오는 길, 홍반장님은 집나선 김에 해치우자며 봄나물을 뜯으러 가자고 했다.

아직 시기적으로 이른 감이 있지만 일단 가보자고 하는 것을 보면 분명 나를 위해 가는 것이겠지.

며칠 전 남편과 갔던 샤코탄으로 갔다.

삿포로에 살지만 관광객이나 다름없는 나와 달리 현지 주민은 역시 다르다.

곳곳에 눈이 남아있는 산속에서 두릅과 엄나무순과 참나물을 뜯었다. 미나리와 고사리는 아직 없었다.

일본인들이 된장에 박아먹는다는 머위순은 지천이었지만 독특한 향이 입맛에 안 맞아 안 뜯는다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내 눈엔 그냥 풀이고 나무지만 예리한 홍반장님의 레이더엔 속속 다 잡히는 모양이었다.


고추모종을 사기 위해 들른 꽃시장에서 한국에 돌아가면 작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삿포로 여기저기에서 피어나는 크로커스와 무스카리, 수선화, 튤립을 심고 싶다.

라일락과 자작나무를 심고 싶다.

수국도 잔뜩 심고 싶다.


집에 돌아와서 열두 시간을 잤다.

그리고 남은 연휴 이틀을 딩굴딩굴 쉬었다.

골든위크가 끝났다. 귀국할 때까지 연휴는 없다.

이제 나는 슬슬 여기를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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