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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Jun 16. 2024

여름을 알리는 축제

쉰 살의 유학일기 - 봄편 #10

삿포로는 6월 내내 축제다.

リラ冷え(리라비에, 라일락 피기 전에 기온이 뚝 떨어져 추운 기간)가 지나고 열리는 라일락 축제를 시작으로 요사코이 소란 마츠리가 있었고 이번 주말엔 홋카이도 신궁 예제가 열렸다.

홋카이도 신궁 예제는 매년 6월 14일 ~ 16일에 개최되며 백 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삿포로 사람들은 ‘삿포로 마츠리’라 부르며 이 축제로부터 여름이 시작된다고 여긴다고 한다.

주요 행사장은 신궁이 있는 마루야마 공원과 우리 집 앞의 나카지마 공원.

올해는 축제 날짜가 주말과 겹쳐 훨씬 흥겹고 북적거릴 거라고들 했다.

요사코이 축제가 끝나자마자 우리 동네 이곳저곳에 꽃장식이 붙었다.


그리고 나카지마 공원에는 온갖 종류의 屋台(야타이, 포장마차)가 들어섰다.

금요일에 축제가 시작되자마자 아침부터 공원은 난리도 아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쏟아져 나왔을까?

여기에 사는 동안 내게 놀러 온 사람들은 다들 이 동네에 왜 이렇게 사람이 없느냐, 이 건물엔 너 혼자 사냐 하고 물을 정도로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였는데 지금은 공원을 뚫고 집에 가다가 길을 잃을 정도로 사람이 들어찼다.

학교 선생님이 작년에도 나카지마공원 역에 사람이 많아 두 정거장을 걸어 오도리공원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올해는 주말이 겹쳐 더 복잡할 거 같다며 걱정할 정도였다.


축제가 시작된 금요일에 순돌엄마랑 구경 나갔다가 사람에 데어 돌아온 후 토요일에는 오전에 御神輿(오미코시, 일본의 마쓰리에 쓰이는 신체(神體)나 신위(神位)를 실은 가마) 행렬을 봤다.

가마행렬이 동네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돌아다니는데 중간중간 멈춰 서서 게이샤 같은 복장을 한 여인들이 춤을 춘다.

보아하니 돈봉투를 헌납한 사람 앞에서 공연을 하는 거였다.


오후에는 내가 사는 동네인 교케이도리에서도 축제가 열렸다.

상가거리 교통을 통제하고 상인회에서 나와 조촐하게 먹거리를 팔고 공연을 했다.

딱 시골 동네 마을잔치다.

순돌엄마와 かき氷(카키고오리, 빙수) 하나 사들고 구경했다.

올해는 장사 안 하고 구경만 하고 다닌다는 단골 이자카야 사장님과 인사도 하고, 판매 중인 고추 모종이 매운 고추인지 안 매운 고추인지 파는 사람도 몰라 마주 보며 깔깔대기도 하고, 에어로빅 공연 때 공연하는 사람보다 장바구니 들고 가다 대뜸 뒤에서 따라 하는 아줌마가 더 즐거워 보여 같이 신나기도 했다.

참 소박하고 정겨웠다.


축제의 마지막날인 일요일은 하이라이트인 미코시 행렬을 보러 스스키노로 갔다.

마루야마공원에서 나와 오도리와 스스키노를 한 바퀴 도는 긴 행렬이다.

전통 복장을 한 1000여 명의 시민이 홋카이도 신궁의 신을 얹은 4개의 가마를 중심으로 8개의 신차와 함께 거리를 걷는다.

형식은 토요일에 봤던 동네 오미코시와 같았지만 규모가 꽤 컸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천황의 가족인지 신궁의 신을 모신 무당(?)인지 모르겠지만 보기에 꽤 지체 높으신 분들을 표현한 행렬이 다 외제차를 타고 있었다는 거다.

단 한 대도 일본차가 없었다. 미니쿠퍼 오픈카, BMW, 벤츠까지 죄다 독일차를 타고 행진했다.

동네 작은 오미코시 행렬에서는 작대기를 들고 전깃줄을 들어 올리며 다니더니 메인 행렬에서는 전통복장을 입고 외제차 뚜껑을 열고 다니다니…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들이다.


6월 내내 이어지던 축제가 끝났다.

여름을 알리는 축제라니 이제 여기도 슬슬 더워지려는 모양이다.

낮기온이 25~6도를 넘나 든다.

햇빛은 따갑지만 습도가 낮고 바람이 불어 전혀 덥지는 않다.

밤에는 서늘해 아직 도톰한 이불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올해 나는 내 인생 가장 길고 예쁜 봄을 경험했다.

4월 초까지도 눈이 남아 있었지만 거진 3개월을 꽉 채워 봄을 즐겼다.

이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귀국날짜가 30일 남짓 남았다.

6월 말까지 학교를 다니고 7월 첫 주에는 JLPT 시험도 봐야 한다.

작년 6월 27일 여기 와서 채웠던 나의 흔적들을 이제 되짚어 지워나가야 한다.

처음에 왔을 때처럼 다시 여름이다.


삿포로에 여행 올 사람들은 6월에 오면 딱 좋을 것 같다.

날씨도 끝내주고 축제도 많고 항공권, 숙박비도 비교적 저렴하다.

삿포로를 대표한다는 맥주축제, 라벤더, 눈축제만 포기하면 좀 더 다양한 삿포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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