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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Jun 14. 2024

요사코이에서 본 일본의 힘

쉰 살의 유학일기 - 봄편 #9

나는 일본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쩌다 보니 일본어를 공부했고 그러다 지금 여기 삿포로에서 유학을 빙자해 일년살이를 하고 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남편이 홀로 유학 보내준다 했을 때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영어공부할걸 하고 속으로 아쉬워했었다. 런던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필리핀에서 살고 있을 수도 있었겠군.)

삿포로에 살면서도 - 여기가 시골이라 그런가… - 쾌적한 날씨와 이국적인 자연 말고는 그다지 큰 재미는 없었다.

편하고 좋은 것보다 불편한 것이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라 내 인상에 깊이 팍 꽂히는 것은 일본의 단점들이었다.


특히 유명하다는 마츠리를 볼 때는 꽤 실망이 컸었다.

작년 여름, 여기 오자마자 열린 ビアーガーデン(비어가든, 맥주축제)이나 雪祭り(유키마츠리, 눈축제)는 진짜 에? 이게 다야? 싶었다.

오히려 소소하게 동네에서 열리는 고구마축제, 니혼슈축제는 정겨운 맛이라도 있지, 좀 규모가 있다 싶은 마츠리는 세계적이라고 명성은 자자한 데 가보면 주구장창 먹고 마시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장사하는 사람만 현지일본인이지 방문객은 대부분 외지 관광객이라 비싸고 맛없고 정신없을 뿐 이게 도대체 왜 유명하지? 하는 생각만 들었었다.

그러다가 지난주 요사코이 소란 축제를 봤다.


이 축제에 대한 개요나 유래는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더 자세히 나올 테고, 뉴스를 보니 올해는 250개 넘는 팀의 25000명 참가했다고 한다.

축제기간인 2박 3일 동안 내내 전통의상을 입고 격하게 춤을 춰야 하기 때문인지 참가자 대부분은 젊은 사람들이었지만 대여섯 살 먹은 어린이부터 80대 노인들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심지어 외국인도 있고 장애인 참가자도 있었다.

요사코이 공연 의상은 반드시 일본 전통 복식 컨셉이어야 하고, 鳴子(나루코)라는 새를 쫓을 때 쓰는 딱따기 같은 전통 악기를 사용해야 하며, ソーランぶし(소란부시)라는 전통 민요의 가사를 넣은 음악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사실 이런 규정 때문인지 보다 보면 모든 팀이 다 비슷비슷해 보이기는 한다.

이 팀들은 길쭉한 오도리 공원을 돌면서 똑같은 춤을 추며 계속 행진한다.

오도리 공원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곳곳 거리에서 차량을 통제하고 공연을 펼친다.


처음엔 북적거리는 분위기가 신나서 즐겼다.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일본다운 축제를 본다는 생각에 흥겨웠다.

그러다 점점 무서워졌다.

이 대회는 공식적으로 우승을 해도 상금이 없다.

우승한 팀에게는 기업스폰서가 붙는다던가 눈에 띄는 출연자를 다음 해 준비를 위해 스카우트한다던가 한다고는 하지만 우승을 한다고 해도 그걸로 끝이라는 말이다.

오히려 참가하기 위해 참가비를 내고, 의상과 소품을 맞추고, 음악과 안무를 짜고, 시간을 맞춰 모여서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 전국에서 모이니 축제기간 동안 숙박도 해결해야 할 테고 2박 3일 동안 땡볕이든 빗속이든 내내 춤을 추며 거리를 행진해야 한다.

(실제로 마지막날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결선을 치렀다. 저녁기온 15도에 비까지 와서 겁나 추웠다)


저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이 축제에 참여하는 걸까?

이렇게 열심히 참여하면서 무엇을 얻어가는 걸까?

이렇게 일본인을 뭉치게 하는 근원은 멀까?

조용하고 소극적이고 답답하기만 하던 사람들을 이토록 일변시키는 일본의 전통이라는 건 멀까?

과거에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의 힘은 이런 데서 나온 것일까?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일본판을 보면 주인공은 마을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폐교된 소학교에서 작은 마을 축제를 열며 전통춤을 춘다. 그러면서 이게 내가 돌아온 이유라고 말한다.

방송대 수업 때 이 영화의 한국판과 일본판을 비교하면서 이 결말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의 레포트를 낸 적이 있다.

이 영화의 결말과 요사코이 소란 축제가 맞물려 돌아갔다.

이거구나. 이게 일본의 힘이구나!


개인적인 생각이라 과장도 비약도 심하고 일반화시키는 면도 있겠지만 보면 볼수록 마음 한 구석에 묘한 공포 같은 게 일어났다.

별거 아닌 것을 끈질기게 끌고 가는 힘, 해야 한다 하면 어찌 됐든 해나가는 힘, 그런 게 보였다.

어쩌면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힘만큼 꾸역꾸역 지키는 것도 꽤 큰 힘일지도 모르겠다.

일 년을 살면서 일본, 별 거 아니네 했던 마음이 오싹해졌다.

누가 나에게 일본에 살면서 무얼 느꼈는가 물으면 요사코이 소란이 떠오를 것 같다.


일요일 밤에 결승에 진출한 11팀이 오도리 공원 무대에서 공연을 했고 생방송으로 TV에서 방송해 줬다.

우승은 平岸天神(히라기시텐진) 팀.

https://youtu.be/oFNp2VoPUTo?si=riku1Une6Qpfd1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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