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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Jun 09. 2024

시레토코의 봄

쉰 살의 유학일기 - 봄편 #8

홋카이도의 동쪽 시레토코를 다녀왔다.

마사미 언니랑 L상이랑 죠시타비(女子旅, 여자들끼리의 여행)였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작은 비행기를 타고 40분을 날아 나카시베츠 공항에 도착했다.

날씨가 맑아서 비행기가 낮게 날아가는 동안 초록초록한 홋카이도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시레토코에서 이틀, 키리탓푸에서 하루, 3박 4일 동안 렌터카로 넓디넓은 홋카이도 동쪽을 달렸다.

홋카이도가 대한민국 영토의 80% 정도의 넓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인구밀도가 낮고 너른 평야가 펼쳐져 있어서 그런지 훨씬 훨씬 더 넓어 보였다.

어디서든 지평선과 수평선이 보이고, 저 너머에 러시아 땅이 보이는 곳.

만년설과 구름에 가려진 높은 산이 있고, 사슴뿔이 널려있는 습지에서 학이 날아다니는 곳.

곳곳에 온천과 폭포와 절벽이 있고, 곰, 사슴, 여우가  아무렇지 않게 다니는 곳.

해달이 배 위에 새끼를 안고 바다 위에 둥둥 떠 있고, 돌고래가 유람선 주위에서 놀고 있는 곳.

가도 가도 똑같은 풍경이 펼쳐질 정도로 넓고 넓고 넓은 곳, 홋카이도였다.

(여기에 쓴 모든 동물을 다 봤다!)


우토로에서 시레토코 반도를 가로질러 키리탓푸 미사키 등대를 찾아갔다.

여기에 간 이유는 드라마 때문이다.

키리탓푸 미사키 등대는 ‘eye love you‘ 드라마 마지막 회에서 주인공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던 곳이다.

비록 여기에 횹사마 채종협 씨는커녕 각자의 짝꿍도 없이 여자들끼리 죠시타비를 하는 중이지만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 우리끼리 드라마 한 편 찍었다!


고항, 스키데스까? 보쿠모 스키데스까?

스키데스, 다이스키데스!

나도 사랑해~~~


드라마를 본 사람들만 알 수 있는 대사를 외치며 깔깔거리는 50대 아줌마 세명이라니…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ㅎ

이 드라마의 중요한 포인트의 하나였던 랏코(ラッコ, 해달)도 봤다.

구글에서 퍼옴. 내 카메라는 아무리 줌을 당겨도 점으로만 보인다


누군가는 평생 단 한 번도 오지 않을 곳, 어쩌면 나도 다시는 안 올지도 모르는 곳, 홋카이도의 도동지역 여행은 아름다웠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보고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게 알게 될 것이다.

홋카이도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과 두고두고 이 여행을 추억하며 긴 인연을 이어가길 마음깊이 기도했다.


여행 첫날, 노츠케 반도에서 해변을 어슬렁거리는 여우를 처음 봤다. 일 년 동안 그렇게 눈을 씻고 볼래도 안 보이더니 이날 이후 여우는 불쑥불쑥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가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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