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10월 27일 아침 06시 41분
누가 그랬던가? ‘날씨 바뀌는 게 제일 무섭다’라고. 요 며칠 계속 비가 오더니 아침기온이 많이 떨어져 이제 쌀쌀하다. 그리 덥던 여름도 비 몇 번에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어제는 가족들과 축구경기를 보러 갔다. 푸른 잔디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선수들을 보며 응원했다. 절호의 찬스인데 몇 번씩 실패하는 걸 보며 선수보다 내가 더 아쉬워하며, 코치나 감독이라도 된 것처럼, ‘그럴 땐 이렇게 했어야지.’ 속으로 선수를 지도하기도 했다. 축구 게임을 많이 해본 사람으로서 온라인에서는 제법 승률이 좋았던 감독 겸 플레이어였다.
경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랜만에 외식을 하러 동네 중국집으로 갔다. 마침 유튜버가 소개하는 걸 봤는데 10점 만점에 10점이라는 코멘트를 듣고, 오늘 거기를 가자며 다짐을 했었다. 20여 분간 산책 아닌 잔잔한 걸음으로 오랜만에 동네도 둘러볼 겸 해서 식당을 찾아갔는데, 인터넷에서는 ‘영업 중’이라는 표시와 달리 가게문이 닫혀 있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이런 거짓 정보는 좀 지양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 장사하는지 안 하는지 제대로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오는 길에 플랜 B를 가동하며 다른 식당으로 향했는데 그곳도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계속되는 핀잔을 받으며 메뉴를 다시 정해 보고 찾아가 보려고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여기저기 문 닫은 가게들이 많았다.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특수성을 무시한 나의 외식 계획으로 인해 1시간 동안 동네 한 바퀴를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라면을 끓이기로 했고, 대신 각자 좋아하는 라면을 먹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미안함에 배달 음식이라도 시켜 먹자고 아내에게 이야기하며, 결국 치킨 한 마리 시키는 걸로 큰 아이와 합의를 봤다. 일요일에 외식은 당분간 지양해야겠다.
저번 주 동아리 선배 J를 소개했었다. 나의 고향인 부산을 타지처럼 느껴지던 시절. 외로움과 쓸쓸함에 고향(군산) 친구들이 보고 싶고 부모님이 그립던 시간을 난 동아리에서 위로받고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게 다 날 동아리에 소개한 C와 그리고 친동생처럼 대해 준 J 그리고 8기 선배님들의 따뜻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고마움을 알기에 나는 타 대학에 입학하고서도 동아리 행사가 있을 때나 없을 때 매번 동아리를 찾아가 시간을 보냈다. 신입생 때 운동 후 맞이하는 술자리가 초반에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그 시간을 고대하며 동아리를 찾았다.
80년 후반과 90년 후반을 왔다 갔다 했다. 갑자기 최근의 기억에 남아 있는 분들을 소환해서 소개하니 나도 덩달아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고, 하루는 B를 하루는 J를 생각하며 보낼 수 있어 좋았다.
오늘은 중학교 시절 친구들을 소개해 보려 한다. 그런데 지금도 막상 누굴 소개해야 할지 막막하다. 중학교 시절 친구들은 초등학교에 비해 거주지가 너무나 다양하고 멀었기에 학교를 마치고 밖에서 보는 일을 거의 없었고, 학교생활 에피소드 외에는 별다른 친구들과 이야기가 없는 듯하다.
이때부터였던 거 같다. 나는 게임에 빠져 매일 집에서 오락하는 낙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중2시절 나와 같이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고 별명만 기억이 난다. 다른 분들은 이니셜로 표현했지만, 이 친구 별명은 이니셜이 아닌 진짜 닉네임으로 소개를 하겠다. 그의 닉네임은 BB였다. 약간 통통한 얼굴에 키가 나보다는 조금 작았다. 그리고 피부가 검은 편이라 친구들이 별명을 BB라 불렀었다. 원숭이 계열 중 거기에 ‘비비’란 종이 있는데 그 동물과 비슷하다고 이 친구에게 붙여 준 별명 같았다. BB와 게임 이야기를 하며 급속히 친해졌고, 서로 가지고 있는 게임을 빌려가면서 게임을 했다. 이 시절부터 게임잡지도 나오고 있었는데, 신규 게임잡지가 나오면 먼저 구매한 사람 걸 돌려 보며, 하고 싶은 게임, 그리고 게임 교환처 정보 등을 공유하며, 매일 붙어 다녔다. 위에 학교밖에서는 친구들과 별로 만나지 않았다 했는데, BB만은 예외였다. 우린 이리(익산), 전주에 게임을 교환 또는 구매하러 같이 다녔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지도 검색해서 어떻게 가는지 교통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땐 그런 게 없이 순전히 주변 분들에게 물어봐야 하는 일이라, 중학생들이 목적지를 찾아가기에 쉽지 않은 경로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게임이라는 하나의 ‘끈끈한 고리’를 가지고 타 도시 방문을 주말에 여러 번 했었다. 이리에서는 터미널과 이리역 사이는 걸어서 다녔고, 전주는 물어물어 버스를 타고 약도를 보며 게임을 구매하기 위해 상가를 찾아다녔다. 우리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은 한 전주 상가에 방문했을 때, 주인아저씨께서 중고가격을 후하게 쳐줄 테니 몇 만 원만 더 가져오면 ‘슈퍼컴보이’(닌텐도사의 ‘슈퍼패미콤’ 제품을 현대전자에서 수입해 ‘슈퍼 컴보이’로 판매했다.)로 바꿔 준다는 말에 BB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어떻게 하면 돈을 마련할지 궁리한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는 가게 사장님이 호구라고 생각을 했을 텐데, 지금 돌이켜 보면 누가 호구였을까?
그렇게 전주에서 기존 ‘슈퍼겜보이’(세가사의 제품을 삼성이 수입해 판매한 제품)에서 슈퍼컴보이로 나의 게임기는 업그레이드되었고, 매번 오락실에서 돈을 주고 했던 스트리트파이터 2를 이제는 집에서 할 수 있게 되는 영광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최애 오락으로 남아 있는 ‘슈퍼마리오월드’를 만나게 된다. 게임기를 사면 기본으로 주는 게임이었지만, 해 보신 분들은 아실 거다. 이게 얼마나 재미있는 게임인지.
각 스테이지마다 히든 스테이지 등이 숨겨 있어 게임을 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정말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게임을 하게 끔 만드는 마력을 지닌 게임이었다. 나는 마리오도 좋아하지만, 이 게임에서 처음 만난 ‘요시’를 개인적으로 더 좋아한다. 나의 출퇴근 가방엔 요시가 달려있다. 매일 요시와 하루 일과를 시작했고, 마감했다.
BB와 게임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참 열심히 돌아다녔다. 군산에도 게임 교환 가게가 오픈했을 때 당연히 둘은 함께 갖고, 그곳에서 잡지에서만 보던 게임들을 구경하고 거래 가격을 확인해서 내 기존 어떤 게임과 교환을 해야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고민을 같이 하기도 했었다. 이런 머리를 공부에 더 신경 썼더라면 지금의 나는 달라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내가 이랬는데 애들 보고는 공부하라고 하기가 좀 민망하네. 나도 이렇게 잘 놀았다는 걸. 우리 아이들은 모르니 그 남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BB와 게임기를 업그레이드하고 나서 겨울 방학을 맞았다. 아마 방학하는 날 전주에 가서 새 게임기를 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게임기를 사고, 난 바로 다음 날 사촌 형에게 자랑하기 위해 뜯지도 않고 부산으로 출발했었다. 스트리트파이터 2 게임팩과 함께 우리는 즐거운 겨울방학을 보냈었다.
BB와는 게임으로 계속 연결되었고, 우리는 중 3이 되어서도 초반에 열심히 게임과 함께 생활을 하며 보냈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고입입시의 압박감이 몰려왔고, 게임과는 조금 소원해지면서 우리의 대외적인 활동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이제 군산에도 게임 구매/교환할 수 있는 가게가 생겨 더 이상 멀리 나갈 필요가 없었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한 게임을 하는 시간도 많이 줄였었다. 매번 게임과 함께 생활을 했는데 나도 입시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기존보다는 조금 덜 하며 생활했었고, 고1~2 되어서는 게임기가 아닌 PC게임의 세계에 빠져 들면서 나의 두 번째 최애작 ‘심시티 2000’을 만나게 된다.
BB 소개를 하면서 당연히 같이 있던 게임 친구들이 있어 소개하는데 우왕좌왕하고 있는다. 곧 게임 친구들을 소개하는 꼭지를 가져야겠다. 그러고 보니 게임도 나와 오래 한 친구였음을. 가장 말없이 나의 투정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시간을 보낸 친구가 아닌가 싶다. BB랑 게임 하나로 전주 익산을 돌아다니고 서로 게임을 빌려가며 나의 중2~3 시절을 함께 했음을 고마워하며 오늘은 여기서 줄이려 합니다.
BB야 너 요즘도 게임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