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5살은 정말 이상한 나이다.
새해를 알리는 종에도 관심이 없다. 종이 울리건 말건 내일은 오니까 나는 잔다. 자고 일어나면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카톡과 메시지가 쌓여있고 그렇게 새해를 실감하겠지. 매년 그랬으니까.
늘 12월 마지막 날이면 축제였다. 술집에서 모르는 이들과 카운트를 소리 지르며 세거나 해돋이를 보러 산에 오른다거나 집에 있을 때면 배우와 예능인들의 시상식을 보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낄낄거렸었다.
그런데, 17년 1월 1일은 내게 너무나 무미건조하게 다가왔다.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 이불속에서 미적대며 한껏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데, 나는 뜬금없이 난생처음으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마음을 서로 의지하고 싶다. 네가 힘들면 내게 기대고, 내가 힘들면 네게 기대고.
나 안 그랬었는데,
"결혼?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는데" 24살의 나는 정말 그랬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도, 친구가 결혼할 때도 단 한 번도 '내가 결혼한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뜬금없이 든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신기하고 이상했다.
24살의 가을, 그러니까 작년에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여느 때처럼 나는 퇴근 후 편한 사람과의 술이 당겼다. 청담에서 야근하고 있는 25살 언니를 불러냈고, 언니는 술을 마시겠다는 집념으로 초월적인 스피드를 발휘해 남은 업무를 마쳤다. 우리의 입맛은 아재이므로. 별 고민 없이 임창정의 소주 한잔에서 김치찌개와 소주를 시켰다. 살짝 어두운 조명과 임창정의 노래와 사람들의 북적이는 소리가 섞여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분위기 속에서 낮 동안 긴장되어 있던 어깨의 근육이 스르르 풀린다. 얼굴에도 긴장감이 사라진다.
안주가 나오기 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소주를 따서 한 잔 마셨다. 캬, 소주의 쓴 맛은 어디 가고 달콤하다. 한 잔을 쭉 들이켜고 나서 언니는 내게 말했다.
“보보야, 난 요즘 결혼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넌 안 그래?”
“응, 나는 한 번도 생각 안 해봤어. 결혼은 나랑은 너무 먼 얘기 같아.”
“난 올해가 되니까 결혼하고 싶어 졌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다고 해야 되나. 연애 말고 ”
어디 계세요. 안정 씨?
김치찌개와 소주를 먹었던 그 언니도, 책을 쓰고 있는 아는 언니도. 그러니까 주변의 25살을 살았던, 지나왔던 여자들은 그렇게 안정을 찾고 싶어 했다. 내가 지금 드는 결혼 생각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쫓는데서 오는 것일까? 좁은 취업문 그리고 취직 후에도 지속되는 온갖 미래에 대한 불안감들이 25살의 우리들을 그렇게 만든다. 닥쳐오는 불안감과 초조함에 우리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우리는 이미 충분한 연애를 해왔고, 현재도 꾸준히 해오면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영원한 마음의 안정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시적인 안정이라도 스스로가 꾸준히 즐거움을 찾고 무언가를 배우고 느끼는 데 있다는 것을 안다.
꽃다운 나이인 우리는
우리는 시들지 않기 위해 바람 속에 산다. 수없이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정을 찾아 헤맨다. 25살의 우리는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안정을 바라고 또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성숙해지고 성장한다. 마치 바람 속에 살지 않았던 사람처럼 우리는 또 새로운 바람들을 맞이한다. 그 수많은 바람 속에서 우리는 예쁘게 피어나고 있다. 괴로운 순간순간에도 우리는 새롭게 꽃망울을 터뜨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들은 안정을 찾으려 헤매며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취업준비를 위해 영어 시험공부를 하며, 누군가는 새로운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하며, 누군가는 의미 있는 일을 해내리라 글을 쓰며.
그러니 우리 너무 섣부른 확신과 결정에 흔들리지 말자. 우리는 지금도 바람을 견뎌내고 있으니.
행복과 안정은 늘 곁에 있다.
행복과 안정은 내가 세운 기준으로 느낀다. 늘 곁에 있으니 없다고 생각 말 것. 당신은 그저 바람에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어서 보지 못하는 것일 뿐. 느끼지 못하는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