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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Nov 05. 2021

우리가 먹는 고기는 어디서 왔을까?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먹는 것에 대해서는 가장 유명한 말, You are what you eat 

내가 먹는 것이 나라면, 나는 아이스크림이었다가, 햄버거가 되었다가, 잠시 꽃등심도 되었다가, 피자 시기를 거쳐 지금은 치즈나 짜파게티 정도가 되려나.


난 고기를 정말 좋아했다.

아침에 첫 끼니로 삼겹살, 꽃등심을 구워먹고 학교에 갈 정도였으니까.

과거형으로 말한 건, 전만큼 좋아하지 않고, 즐겨먹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부러 고기를 식단에서 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전히 먹을 때는 맛있어서 참 힘들지만.


최근에는 우리나라도 채식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고,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채식을 선택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기 먹지 않기를 택하는 사람도 있고,

육식이 야기하는 여러가지 환경 문제들로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로 전세계가 팬데믹을 겪으며 채식에 대한 관심이 더 뜨거워졌다. 

맛있고, 다양한 대체육도 쉽게 구할 수 있기도 하다.


채식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비건=채식주의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비건은 고기, 우유, 유제품 등 섭취하는 음식도 엄격하게 제한할 뿐만 아니라 가죽제품, 동물 실험에 반대하는 등 보다 넓은 라이프 스타일로 이해하는 게 쉽다.

채식주의자에는 이렇게 비건도 있고, 어류와 가금류(닭, 오리 등)는 먹는 폴로-페스코, 고기는 먹지 않지만 계란 등 유제품은 먹는 락토-오보, 땅에 떨어진 음식(과일류)만을 먹는 프루테리언 등 엄청 다양하다. 


고기를 먹는 것이 뭐가 문제일까?

세렝게티 초원에서 가젤을 잡아먹는 사자나 치타에게는 아무도 잔혹하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자연의 자연스러운 섭리니까. 

인간은 잡식성, 고기를 먹는 것도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채식주의자였던 이 책의 저자, 이동호 씨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자연양돈 축사를 경험하고, 육식도 "생명을 정성 들여 키우고 그 생명을 죽여서 먹는 과정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고귀함을 지킨다는 면에서 채식의 연장"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뫼비우스의 띠처럼 생겨난 질문. 

"돼지가 사는 동안 행복했다고 하더라도 돼지를 잡아먹는 것은 괜찮은 걸까. 동물의 본성을 억압하지 않는 사육을 '동물복지'라고 하는데, 동물도 오래 살고 싶은 본성이 있지 않겠는가. 결국 잡아먹힐 거라면, 살아 있는 동안 행복했다는 것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뜻이 맞는 친구들과 '대안축산연구회'를 결성하고, 이동호 씨가 직접 자연양돈 방식으로 돼지를 키워보기로 한다. 그리고 잡아 먹는다.


호기심으로 책을 읽으며, 이동호 씨와 1년 남짓의 여정을 따라가봤다. 

글을 상당히 재미있게 쓰셔서 깔깔 웃을 때도 있었고, 외면하고 싶은 잔인한 현실엔 눈쌀을 찌푸렸고, 

마지막엔 울어버렸다. 


물을 새로 채우려던 날, 물통에 남은 물이 아까워 운동장에 부었다."쏴-" 쏟아지는 물소리에 돼지들이 달려왔다. 물줄기를 처음 본 돼지들. 물은 흘러갔고, 돼지들은 물꼬가 이어지는 길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꿀꿀, 꿀, 꿀."
'꿀-톡'을 나누며 돼지 삼남매의 물줄기 토론이 이어졌다.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 같았다. 이게 뭘까? 이내 물을 쫓아가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맛을 보기도 하고, 코로 물길을 막아보기도 한다. 물을 돼지들의 코를 훑고 흘러갔다.
"꿀?(헉?) 꿀!(시원하다!)"
물이 많지도 않았는데 돼지들이 몸을 파묻었다. 몸에 불이라도 붙은 듯, 조금이라도 더 몸을 적시려고 몸부림을 했다. 비비적비비적. 실개천에서 돼지 세마리가 등을 문지르고 배를 깔고 몸을 문댔다.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돼지 세 마리가 워터파크를 즐기는 모습. 돼지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전해주는데, 그게 참 웃긴다.

돼지가 어떤 동물인지 이해하게 된달까.


귀엽고, 웃긴 에피소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책 중간중간 현 축산업의 현실을 보여준다.


습하고 불결한 환경에서 빽빽하게 살면 누구라도 병이 난다. 돼지들이 자라는 동안 겪는 흔한 질병은 설사다. 산업계의 해결 방법은 항생제다. '건강한' 돼지가 아니라 '더 빨리, 더 많은' 돼지 사육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무항생제가 오히려 동물복지에 반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픈 이에게 약을 주지 않는다니, 이보다 무자비할 수는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병에 걸리는 원인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로 치료만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게다가 현장에서의 항생제 사용량은 감기약 수준이 아니다. 병의 전파를 막기 위해 같은 방의 돼지들에게 항생제를 일괄 투여한다.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항생제의 70퍼센트는 가축에게 쓰인다.


동물에 사용되는 약은 항생제 뿐 아니라 성장을 빠르게 만들고, 임신을 유도하는 촉진제, 호르몬제 등 다양하다. 동물의 몸에도 남겠지만, 가축의 몸에 투여한 항생제의 80퍼센트는 배설물과 함께 배출된다고 한다. 진통제, 해열제, 소염제, 호르몬제도. 그리고 그게 물로 흘러들어가고,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고 경고한다.


항생제를 포함한 의약물질이 지속해서 수생태계에 영향을 끼킨다. 우리나라 하천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항생제와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가 수돗물 원수로 다시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학계의 경고다. 


먹기위해 자라고 있는 동물들의 모습도 보여준다. 


지금의 동물은 경제 논리 안에 있다. 이 논리에 맞춰 인간은 동물을 살이 빨리 찌거나, 알을 많이 낳거나, 젖이 많이 나오는 품종으로 개량한다. 기준에 맞지 않는 동물은 불량품이다. 꼬리와 송곳니, 뿔과 부리를 자르고 거세를 한다. 햇볕을 쬐거나 흙을 밟거나 기지개 한번 제대로 켜지 못하는 틀 안에서 산다. 동물은 인간에게 값싼 고기만 제공하면 되는 공산품일까? 살아 있는 기쁨을 누릴 필요가 없는 기계일까? 이것을 그저 동물권의 문제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이쯤되면 책 마지막에 이르러 돼지와 유대감을 쌓은 작가가 고기 먹기를 포기하고, 돼지들과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라는 동화적 결말을 기대할 수 있지만, 죽이는 것 또한 돼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 도축장에 보내지 않고 처리한다. 


그럼에도 나를 돼지 앞으로 데려다놓은 것은 어떤 예의였다. 돼지를 취할 사람으로서 직접 잡아야한다는 일종의 책임감. 돼지를 마주할수록 그 마음이 커졌다. 잡아먹는 게 배신이 아니고 남의 손을 빌리는 게 배신 같았다. 남이 죽인다고 생명을 죽이는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니다. 책임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목숨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했다. 남의 살을 먹는 일, 생명을 얻는 일은 쉽지 않다. 그동안 나는 너무 쉽게 살았다. 



우리는 고기를 맛깔나고, 깔끔한 모습으로만 만나기에, 사육과 도살의 현장을 상상할 수 없다.

공장식 축산은 소비자가 불편한 감정을 경험할 기회를 차단한다고 한다. 

보이지 않기에,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았기에, 마음 편하게 육식을 즐길 수 있게 되고, 육식의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도리어 불편한 존재가 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이 고기를 먹을 거라면 직접 키워, 직접 잡아야 고기를 먹을 자격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고기 이전에 돼지가 있고, 돼지는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 어떤 고기를 먹을지 선택하는 것은 개인이 자유지만, 그 이면까지 알고 선택할 때에야 비로소 진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돼지에서 비선호 부위(뒷다리살)를 먹거나, 3등급 소고기를 먹는 것도 돼지의 전체 사육 마릿수를 줄일 수 있고, 3등급 소고기를 먹으며 옥수수 생산을 줄여 죽음의 해역을 줄여 아마존을 지킬 수 있다고 얘기한다.

급격한 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그저 외면하지 않고 사실을 알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씩 해나가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고기 먹는 사람이 싫지 않다. 엄청나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줄이는 것이 좋겠지만.

하지만 "스트레스 받을 때는 역시 '남의살'이지"라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은 싫고, 속상하고, 징그럽다. 정말 '남의살'을 먹는다는 자각은 있는걸까? 

엄격한 비건이 고기 먹는 사람들을 강하게 비난하고, 화를 내고,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것도 싫다. 


집단주의적 성격이 강해 '조금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특히, 고기를 빼고는 외식 메뉴를 정하기 쉽지 않은 이곳에서, 

채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고민하며 책 후기를 썼다.


그저 우리가 먹는 것이 어떻게 우리 식탁에 올라오게 되었는지 알았으면 좋겠는 마음. 

그리고 환경과 건강에 관심을 가지는 많은 사람들 덕분에 축산업 환경이 변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그래서 우리가 먹는 것을 감사하게 먹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간디는 한 국가가 얼마나 위대하며, 도덕적으로 진보했는지는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더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알고나면 불편하다고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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