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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 Apr 16. 2019

내 문화 핑계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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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늦어 걱정을 많이 끼쳤다던 나는 아는 문제도 대답하지 못해 손바닥을 맞는 소심한 학생이었다. 인사를 하는 친구를 밀치고 도망가거나 좋아하는 애와 같은 반을 하기 위해 수학 학원에 보내달라고 엄마한테 발악을 하던 날에도 나는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소리를 지르고 몸을 이용해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했다.

  내 안에 찰랑찰랑 고이는 이야기들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고 대신 글을 읽고 쓰기 시작했다. 내가 꺼내고 싶은 이야기를 알맞게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주는 책이 좋았다. 경비 아저씨보다 먼저 학교에 도착해서 정문 앞 화단에 앉아 책을 읽었다. 경비 아저씨가 문을 열면 사서 선생님이 올 때까지 도서관 문 앞에 앉아 책을 읽었다. 이야기의 완결성, 그리고 영원성에 끌렸다. 문학을 한다는 것은 완결성과 영원성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야기가 특히 그러한지, 꽤 긴 시간 동안 이어졌던 나의 작업은 흠 없이 영원한 문학 작품의 조건을 찾는 일이었다. 그러다보면 나의 이야기 또한 그 조건에 맞춰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사랑받는 여자가 되는 것, 자기만의 방을 가진 똑똑한 여자이기도 한 것, 문제가 무엇인지를 말 할 줄 아는 사람, 조력자가 나타남, 인생의 시련을 극복함, 사람들을 끌어 모음, 좋은 운의 비호를 받는 사람.

  설화에서 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를 망라하여 내 인생의 이야기를 짜깁고 다시 해체하고 또 짜깁는 과정이 매일 이루어졌다.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어떤 규칙과 전통을 이어나갈 것인지 아는 것이 영원히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기는 일처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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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에 나는 채식을 시작했다. 마룻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컬러링 북에 색칠을 하다가 말고 생각했다. 채식을 해야겠다고. 귀엽게 웃고 있는 돼지 얼굴이 XX삼겹살 간판에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서, 귀여운 돼지와 삼겹살 사이 많은 이야기들이 삭제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동시에 다른 어떤 것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는 잘려나가고 남아있지 않게 된다. 입장을 만드는 것은 울타리를 만드는 것과도 같다. 완결성은 틈을 상상하지 않음으로서 그 공간이 만드는 생태계를 함께 무시하는 일이다.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나침반을 혼자서 가지고 있다는 듯이 헤매지 않고 허둥거리지 않고 곧게 걷는 사람이고 싶었던 나는 이제는 전통을 가진 사람인 내가 싫다. 매일매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가능한 한 온 힘을 다 해서 끌어당겨 삼키고 있다. 침묵의 항아리 안에 갇혀 있다.

  욕을 하고 때리고 싶어 하는 학생에게, 몰카를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리고 싶어 하는 학생에게, 집이 싫으니 학교에는 왔지만 공부는 하고 싶지 않은 학생에게 나는 어떤 규칙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고민하며 그의 눈을 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교실을 도망쳐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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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전통이 다른 사람과 사는 일이 즐겁고 행복한 경험일 수도 있겠다. 완전무결하다고 믿었던 단어에서 발견한 틈을 아름답게 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많은 순간들이 나에게 조금 다른 경험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건강한 방식으로 웃으면서 전통을 부수는 작업을 할 수 있었더라면.

  여전히 나는 나의 전통이 삭제하고 있을 이야기들에 괴롭고, 내가 내 두 다리를 쭉 뻗고 행복한 순간에 나 때문에 불편하게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본인이 삭제하고 있는 이야기에 대한 자각 없이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싫고 어디에서든 두 다리를 뻗고 앉는 사람들이 불편하다. 그와 함께 일해야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실감할 때마다 필요 이상 좌절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나의 관점, 나의 세계가 전체가 될 수 없음을 온 몸으로 드러내어 보여주는 무한대의 존재를 만난다는 것은, 그래서 나를 되돌아보게 하고 나의 바탕을 넓고 깊고 새롭게 할 것을 부추기는 교육적인 존재를 만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 아니라 성장의 기회가 되는 일이라고 계속계속 생각하려고 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폭력적인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건강한 방식으로서 그런 교육적인 존재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아직은 기도처럼 하는 말이지만, 낙관에서 오는 성취 카드를 만났으니 이 다짐이 어떤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거라고 믿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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