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치의 용기를 그러모아
충분한 네가 모자란 나에게 왔다. 이것이 '감사'겠지. 모자란 어른이 충분한 아이를 키운다는 뜻이다. 이걸 매일 깨달으며 '미안'해. 그런데도 너는 타고난 힘으로 쑥쑥 자라며 나의 덜 자란 데까지 보듬는다. '감동'이야.
아프고 슬픈 단어를 평생 한 번도 안 듣고 안 뱉는 사람이 있을까. 가능하다면 그게 너이길 바랐다. 이것은 철없는 내가 너를 두고 부리는 '욕심'이겠지. 평생의 욕심을 하루치로 잘게 쪼개어, 너의 하루 끝에 늘 건강한 단어가 놓여 있길 빈다. 이것은 '간절함'이야.
밤마다 사진첩을 열어 해마다 다른 너의 사진을 감상한다. 앞으로도 그러는 사람으로 살 테고. 이건 분명 '행운'이다. 사랑한다, 로엘아. 너의 이름 앞에 '사랑'이라고 쓸 때, 나는 비로소 그 뜻을 정확히 알았음을 확신한다.
박솔미, <글, 우리도 잘 쓸 수 있습니다.>
삶이 지루해질 때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쑥 빠져 있는 일상을.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는 그 상상 끝에서 '사랑해요, 고맙습니다'라는 뻔한 고백을 뻔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충분히 표현한다면 먼 훗날 하게 될 많은 후회 중에 하나만큼은 지울 수 있을 거예요. 오늘치의 용기를 내봅시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그곳에 있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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