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단어, 고양이
서점이자 사색 공간인 계절책방으로 들어가는 길은 쉽지 않다.
망원동 길가에서 우선 '왕뼈감자탕'을 찾고, 건물 뒤편의 주차장으로 간다.
주차장 안쪽에 상가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데 만차라면 눈에 띄지 않으니 방탈출을 하는 기분을 느끼며 집중해 보자.
폭이 큰 계단을 올라 3층까지 오르면 <계절책방 낮과밤>의 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눈에 덜 띄는>
지금 내 가방에 이훤 시인의 이 에세이가 들어 있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던 여정.
두툼하고 불투명한 문을 가진 이 책방은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눈에 덜 띄려고 안간힘을 쓰시는 중은 아니겠죠. 이런 문을 열 때는 몇 배 더 조심스럽다.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의 용기는 이 문을 여는데 쓰기로 한다.
문을 열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계절책방 낮과밤.
낭만적인 이름에 어울리는 낭만적인 공간.
아담하고 고요한 이곳의 평화가 혹시 깨질까 걸음마저 조심스러워졌다.
친절한 책방지기에게 테이블 이용료를 지불했다.
이 작은 서점은 커피를 팔지 않는 대신 테이블 이용료(시간당 2,500원)를 받는다. 계절책방의 고요함에 커피 원두를 가는 부산스러운 소리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니 좋은 선택.
중간에 놓인 큰 테이블에는 자리가 5-6개 정도 있었는데
평일 오후라 그 공간에는 책방지기와 나밖에 없었다.
창문을 바라보며 앉았다.
이 공간에서는 휴대폰을 쓰고 싶지 않았기에 사진을 몇 장 찍고 가방에 넣어두었다.
노트, 펜, 책을 나란히 꺼내 앞에 두고 창을 오래 바라봤다.
처음 이 공간을 발견했을 때 나무가 보이는 창문 풍경을 보고 '바로 이곳이야!'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앙상한 나뭇가지 뷰. 봄이 오면 이 창문으로 얼마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상상했다.
계절책방 낮과밤은 이름 그대로 계절의 변화를 감각하며 오롯한 읽고 쓰기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계절마다 하나의 단어를 정해 깊게 들여다보고 관련된 책을 판매한다.
저번 계절의 단어는 산책, 이번 계절은 고양이다.
쭈그리고 앉아 고양이와 관련된 책들을 훑어본다.
이 공간도, 마흔두 살의 나도 고양이를 닮았다.
눈에 띄고 싶은 삶에서 눈에 덜 띄고 싶은 삶으로 건너가는 중.
하지만 내 감정의 파도만큼은 내 눈에 잘 띄도록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중.
오늘의 목표는 우울하지 않기가 아니라 우울한 나를 가만히 잘 받아들이기.
다 잃어도 감정의 주인 역할은 끝까지 내가 하기.
인간이 다수의 눈에 띄지 않는 상태일 때 더 중요한 진실을 품는다고 믿게 되었다는 이훤 시인은
<눈에 덜 띄는>에 이렇게 적었다.
어쩌면 당신이 날 볼 거다. 나를 찾길 잘했다고 여길 만큼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 거다.
이 문장을 여러번 되내였다.
어쩌면, 언젠가, 누군가의 눈에 띄겠지.
그때까지 지치지 않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면 어때.
행여 오래 눈에 띄지 않더라도 우리가 만든 아름다운 무언가의 위로가 남을테니까.
이런 소망은 퍽 아름다워서 나는 이내 행복해졌다.
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