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수요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고,한 달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요즘이다.
내 딸 마리는 30분 전 어린이집 차를 타고 떠났다. 지역 내 어린이집에서 집단감염 28명이 나와서 내일부터는 차량 운행을 하지 않는다. 어린이집 등원도 오늘부터 '긴급 등원'만 가능하다. 마리는 긴급 등원 생이다. 코로나 감염의 위험을 안고 어린이집으로 떠나는 내 딸 마리의 천진하게 잠든 모습이 떠오른다.
엊그제 남편 바리가 타 지역 출장을 떠났다. 나 혼자서는 마리를 볼 수 없어 엄마 영을 집으로 불렀다.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보내는 하룻밤. 결혼 후 혼자 사는 엄마 집에서 한 달에 한 번은 자고 오겠다고 말해놓고 한 번도 가지 않은 나이다. 내 필요에 의해서 결혼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함께 잔다.
내 엄마 영은 하룻밤 신생아를 돌보는 노동을 앞둔 사람답지 않다. 오랜만에 딸과 보내는 하룻밤에 들떠있을 뿐이다.
엄마 영이 몇달 전에 먹고 싶어했던 보쌈을 이제야 먹었다.
딸 마리는 잠투정이 심하다. 조리원에서 '잠 안 자는 아이 1등'으로 유명했고, 집에 온 초반에는 이유모를 울음으로 나와 바리를 절망하게 만들었던 아이였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집에 온 후 서서히 잠이 늘었고 울음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잠투정은 심하다. 이것 역시 과거형으로 말할 날이 오길 바란다.
내 엄마 영은 내 딸 마리의 잠투정을 보고 놀란 것 같다.
"무슨 애기가 잠투정을 이렇게 오래 하냐?"
오후 6시 퇴근 후 집에 와서 자정까지는 딸 마리에게 메여있는 남편 바리가 떠올랐다. 씻지도 못하고 밥도 콧구멍으로 먹으며 퇴근 후 자정까지 딸을 재우기 위해 어르고 달랜다. 그런 날들에 비하면 이날 딸 마리의 컨디션은 최상으로 보인다. 오후 8시부터야 칭얼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엄마 영은 자정까지 울고 보채는 내 딸 마리를 안고 돌아다녔다.
얼굴살이 빠져 불독살이 생겼고, 팔다리가 얇아져 마른 체형의 나보다 더 말라 보이는 내 엄마 영. 그녀를 보며 이제야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자식은 짝사랑하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엄마 영의 서늘한 마음에 미안해진다. 걷질 못해 하루 종일 추레한 모습으로 집안에 갇혀있는 나를 보며 밥 수저를 놓고 울어버리는 엄마 영을 보며 난 같이 운다.
딸 마리를 안은 그녀의 얇은 팔과 불안한 허리에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아직까진 딸을 생각하는 마음과 엄마의 딸로서 갖는 마음 사이의 부등호는 후자를 향한다. 내 엄마를 힘들게 하는 내 딸 마리의 울음이 밉다.
딸 마리는 새벽 두 차례 토를 했다. 분유를 먹고 충분히 소화를 시키지 않아서 인 것 같다.
새벽 내내 몸을 오징어처럼 꼬고 흡사 강아지와 노인 같은 소리를 낸다. 낑낑. 성장을 하는 아이들의 '신생아 용쓰기'라고 한다는데 정말 쉬지 않고 아침에 깰 때까지 저러는 걸 보면 대체 얼마나 크려는 건지 궁금하다.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커버리는 거 아냐?
마리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혼자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난 밤에 못 잔 잠을 보충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 직장 다닐 때그토록 바라던 일상이었는데.
거실의 창문은 열어둔다. 밖을 보고 싶다. 오늘 날씨는 어떠하고 사람들 옷차람은 어떠한지를.
오늘은 오전에 샤워를 하고 잠옷 중에서도 가장 깔끔한 옷을 꺼내입을 것이다. 밖과 단절돼 추레한 딸의 모습에 마음 아파 우는 엄마 영에게 셀카를 찍어서 보내야겠다. 엄마 딸 오늘도 잘 지내고 있어. 걱정 마.
어린이집에서 잘 자고 있는 내 딸 마리. 마리의 사진에 안심하듯 내 엄마 영에게도 잘 지내고 있는 오늘의 내 사진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