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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투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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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스 Jan 24. 2022

오늘 밤에도 갈 수 있어요

투병 1일 차

2021년 1월 18일 목요일 날씨 모름 


출산일기를 백일까지 쓸 요량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또 중도 포기이다. 아이 양육보다 더 시급하고 내 일상을 장악하는 일기 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결코 쓰고 싶지 않았던, 평생 모른 척하고 살았더라면 좋았을 거리.  

오늘부터는 내 엄마 영의 투병일기를 쓴다. 


새벽 내내 칭얼대던 딸 마리 때문에 잠을 푹 못 잔 나는 오후에서야 눈을 떴다. 내 엄마 영과 같이 문구센터에 가기로 한 날이다. 너무 늦게 일어났다. 성격 급한 영이 화가 나있을 거 같아 긴장한 채로 영에게 전화를 건다. 통화가 되질 않는다.  

80일 된 아기를 키우는 나는 계속되는 불규칙한 수면 패턴과 저질의 수면 상태 탓에 요 며칠 온몸이 망치로 맞은 것 같다. 문구센터를 가는 것은 물론, 침대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귀찮다. 

 

전화가 다. 엄마 영이다. 다행히 화가 난 목소리 아니다. 

"엄마 병원 다녀왔어. 고지혈증 약을 타려고 갔는데 피검사를 하자고 해서 했거든. 근데 간수치가 높게 나왔다나 봐. 거기서 초음파 찍자 해서 찍고 이제 집 왔어." 

웬만해선 병원 다녀온 것도, 아픈 것도 이야기하지 않는 엄마 영이다. 웬일로 병원 다녀온 이야기를 술술 푼다.  

"엄마, 간수치가 높다고? 병원서 뭐래?" 

엄마 영이 말한다. 낯선 목소리다. 

"의사가 나 오늘 밤에도 갈 수 있다네? 대학병원으로 가래." 

 

이날 병원이 아닌 문구센터에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긴장한 목소리의 영을 본 게 얼마 만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니, 어쩌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떡하지. 갑자기 대학병원이라니.  

오늘 밤에도 갈 수 있다는 의사 말이 맴돈다. (두려움도 있지만 한편으론 황당해서이다. 무슨 말을 저렇게 하니?

 

우린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호흡기내과 의사를 만나 동네병원의 검사 결과를 내미니 의사는 내일 당장 입원하자고 말한다. 황달 증상이 나타났고, 바로 입원해서 검사를 해야 된다고 한다. 그리고 암의 가능성을 예고한다. 

 

내 엄마 영, 올해 나이 예순여덟. 

병원 입원 전 엄마와 마지막 식사를 한다. 속 편하게 시래깃국을 먹으려 했지만 가게를 찾지 못해 눈앞에 보이는 동태탕 집에 들어왔다. 늘 이랬다. 먹고 싶은 걸 먹는 것이 아닌 먹을 수 있는 것을 먹었던 영.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 아닌 할 수 있는 걸 해온 삶이다. 


집으로 돌아와 입원 짐을 챙기며 많은 생각이 든다. 아니, 두려움뿐이다.  

오늘 병원이 아닌 문구센터를 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눈물이 후드득 떨어진다. 오늘 밤은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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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일기를 쓸 수 없는 상황이라 조금씩 메모해놓은 글을 한 번씩 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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