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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완수 Jul 14. 2021

인어공주의 외출

  선숙이는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처음 읽고 그날 밤 쉽게 잠들 수 없었어요. 다음 날부터 인어공주가 생각날 때마다 선숙이는 동화책을 꺼내 읽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인어공주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 갔어요. 선숙이가 방에만 콕 틀어박혀 있자 부모님은 선숙이가 걱정됐어요. 그러다 아빠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어요.

  “선미도 이제 내년이면 학교에 들어가니까 우리, 주말마다 한강공원에 나가 바람을 쐬면 어떨까?”

  아빠가 말했을 때, 선숙이는 처음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어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혹시 누가 알아요? 인어공주 동상도 코펜하겐 바닷가에만 있는 게 따분해 바람 쐬려 우리나라를 찾을지.”

  엄마가 아빠 말을 거들고 나서자 선숙이의 눈이 반짝였어요.

  “아빠, 동상이 움직일 수 있는 거야?”

  아빠 무릎 위에 앉아 있던 선미도 관심을 보이며 한마디 했어요.

  “그럼! 인어공주도 바위 위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얼마나 불편하고 답답하겠니?”

  아빠 말을 들은 선숙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하지만 선숙이는 동상이 움직인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선숙이는 부모님이 자기를 놀리는 것이라 생각해 입을 삐죽 내밀었어요.

  “누가 그랬더라. 밤마다 한강공원 강가에 인어 비슷한 사람이 나타난다고 하더라고요.”

  엄마가 갑자기 아빠에게 큰 소리로 말했어요. 

  “정말이에요? 지금도 나타나는지 모르겠네.”    

  아빠가 슬쩍 선숙이를 보며 맞장구 쳤어요. 선숙이는 점점 귀가 솔깃했어요.

  “아빠, 우리도 보러 가자. 응?”

  선미가 아빠에게 떼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럴까? 그럼 당장 이번 주말부터 가 보자.”

  “와, 신난다!”

  아빠 말에 선미가 환호성을 질렀어요.

  “선숙이, 너는 집에 있을래?”

  엄마가 말하자 심통이 난 선숙이는 “몰라요!” 하고 찬 바람 같은 말을 내뱉으며 제 방으로 들어갔어요. 


  아직 여름 밤더위가 남아 있기 때문인지 여의도 한강공원 둔치엔 많은 사람들이 나와 땀을 식히고 있었어요. 주말을 맞아 선숙이는 못 이긴 척하고 부모님과 함께 집 밖으로 나섰는데, 막상 한강공원에 나오니 속까지 시원했어요. 하지만 선숙이는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어요. 아빠의 제안으로 선숙이는 분수대에서 물줄기가 솟아오르는 물빛광장으로 갔어요. 선미는 집에서 나올 때부터 들떠 부모님 손을 잡은 채 앞서갔어요. 광장 주위엔 텐트들이 웅기중기 쳐져 있었고, 분수대 주위는 아이들이 점령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어요. 선숙이는 문득 엄마에게 들은 말을 떠올렸어요. 선숙이는 공원 강가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어요. 선숙이는 부모님의 눈을 피해 강가로 갈 기회를 엿봤어요. 마침 아빠는 둔치에 자리를 잡아 가져온 돗자리를 펴고 있었고, 엄마는 선미를 보느라 정신없었어요. 선숙이는 이때다 싶어 광장 앞에 있는 강가로 몰래 갔어요. 


  강가에 이르니 시원한 밤바람이 맞아 주고 있었어요. 강가에도 사람들이 많았지만, 분수대처럼 북적거리진 않았어요. 선숙이가 강가를 휘둘러보는데, 낯선 덱(deck)이 눈에 띄었어요. 선숙이는 강가를 따라 덱 쪽으로 갔어요. 덱에는 들어온 물을 건널 수 있도록 징검돌들이 반듯반듯 놓여 있었어요. 그런데 순간 덱 위에서 뭔가 시커먼 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어요. 선숙이는 겁이 덜컥 났어요. 선숙이는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덱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덱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그때 갑자기 강가에서 물속에 툼벙하며 빠지는 소리가 들렸어요. 선숙이는 움찔하다 살금살금 강가로 갔어요. 선숙이가 덱 끝에서 고개를 내밀어 강을 내려다봤어요. 그때 수면 위에서도 고개를 내미는 게 있었어요. 선숙이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어요.

  “나 때문에 많이 놀랐나 보구나? 난 코펜하겐에서 온 인어공주야.”

  인어공주가 말을 마치고 주위를 살피더니 덱 위에 힘겹게 올라앉았어요. 선숙이가 인어공주에게 다가갔어요.

  “우리 부모님 말씀이 사실이었단 말야? 근데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니?”

  “안데르센 아저씨 덕에 내가 어린이 친구들에게 많이 알려졌잖아. 친구들이 정말 나를 좋아하는지 세계를 돌아다녀 보고 싶었어.”

  인어공주가 방긋 웃으며 말했어요.

  “와, 그럼 일부러 코펜하겐에서 헤엄쳐 온 거란 말야?”

  선숙이 말에 인어공주가 발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가까이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인어공주가 고개를 홱 돌려 소리 난 쪽을 보더니 황급히 몸을 피했어요. 인어공주는 쏜살같이 강물 속으로 철버덩 뛰어들었어요. 곧 어른들 몇 명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 덱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어요. 선숙이는 냉큼 인어공주가 물에 빠진 곳으로 갔어요. 하지만 그 자리에선 거품과 함께 잔물결만 일 뿐이었어요. 선숙이는 모든 게 꿈만 같았어요. 선숙이는 마음이 허전했어요.  


  부모님께 돌아온 선숙이는 허락도 안 받고 혼자 강가로 갔다고 혼쭐이 났어요. 하지만 인어공주를 봤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요. 인어공주와의 만남을 혼자만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선숙이는 빨리 주말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어요. 하지만 주말을 기다릴수록 시간은 가지 않았어요. 선숙이는 주말을 하루 앞두고 내내 마음이 한강공원에 가 있었어요. 약속은 못 했지만, 인어공주와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렜어요. 저녁을 먹은 선숙이는 방으로 갔어요. 그리고 빨리 아침을 맞기 위해 선미가 먼저 잠들어 있는 침대에 따라 누웠어요. 하지만 아무리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어요. 그때 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들리고, 부모님이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어요. 선숙이는 호기심에 거실로 나왔어요. 부모님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뉴스를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뉴스에서 선숙이의 귀를 번쩍 띄게 하는 소식이 들렸어요.  


  “최근 여의도 한강공원 물빛광장 앞 강가 덱 부근에서 시민들이 인어공주를 봤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에 따라 시민들과 어린이들이 동심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덴마크 코펜하겐 시와 협력해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동상을 본뜬 동상을 물빛광장 앞 강가 덱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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