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휴머니티의 간극
이 글은 oreilly.com에 올라온 Rob Girling의 AI and the future of design: What will the designer of 2025 look like?를 번역한 글입니다.
AI and the future of design: What will the designer of 2025 look like?
Designers may well provide the missing link between AI and humanity.
New York Times 는 최근 카네기멜론 대학이 인공 지능의 윤리에 대한 연구센터를 설립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Harvard Business Review 는 AI가 경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글을 싣고, CNBC는 AI 관련 주가의 동향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와 같은 AI에 대한 높은 관심이 디자이너들에게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왜냐하면 좋은 디자인이란 모름지기 창의성과 사회적인 지성에 기반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올해 내 딸은 대학에 입학해서 인터랙션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AI가 디자인에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할지 조사를 시작하면서, 장차 단순한 연관성을 넘어 AI 세계에서 성장하게 될 내 딸을 포함한 미래의 디자이너들에게 어떠한 조언을 해 주어야 할 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나 짧은 시야를 가지고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았던 건 아닌지 걱정이 된 것이다.
앞으로 2025년이 되면 우리는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어떻게 준비를 해야할지에 대한 나의 고민의 결과이다.
오늘날의 디자이너는 창의적이면서도 사회적 지성에 기반한 일을 하는 직업이다. 디자이너는 문제에 대한 공감, 문제점 정의, 창의적 해결, 협상 및 설득 능력 등을 요구받고 있다.
AI의 첫 번째 영향은, 시간이 갈수록 ‘비 디자이너'들이 그들 스스로의 피고용능력을 높이기 위해 창의성과 사회적 지성을 향상시켜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Harvard Business Review 기사를 보더라도 직장에서의 상사들에게 주는 4번째 지침이 ‘디자이너 처럼 행동하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디자인 직군은 창의적인 직업에 속해 있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이라는 방법론에 기반한 교육을 듣고 훈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디자이너들은 더이상 그들만의 창의성이라는 무기를 들고 배타적인 자세를 취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정보와 전문 지식을 습득하면서 다학제적인 관점에서의 전문성을 키워나가야만 한다.
디자인 씽킹을 전공한 선생님이 교실에서 새로운 인터랙션 방식을 교육하기 위해 사전 테스트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자. 혹은 디자이너/병원 관리자가 효율성과 사용성을 고려하며 입원 환자들의 경험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도 있다.
이런 현상들은 실제로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시애틀의 시장실은 다급한 현안 이슈와 분쟁들을 해결하기 위해 혁신팀을 가동하고 있다. 이 팀은 인간 중심 디자인을 기본 철학으로 세우고 디자이너 및 디자인 전략가들을 채용하여 움직이고 있다.
스탠포드 대학교는 이미 수년 전부터 비 디자인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창의적인 디자인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d.school 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MIT에서도 Integrated Design and Management 이라는 연구실이 신설되었다. 뿐만아니라 모 의대에서도 외과의사 양성 과정에 디자인 씽킹 교육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디자인의 범위가 더더욱 넓어지고 있음은 물론, 교육자들은 여러 분야의 교육에 창의성 연구와 인간 중심 디자인 커리큘럼을 포함하여 다학제적인 접근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게 되었다.
이미 지난 글에서 Autodesk의 Dreamcatcher 같은 프로그램이 디자인 창작을 위해 어떻게 알고리즘 기술을 사용하는지 살펴본 바 있다. 방대한 양의 선택지와 제약, 목표와 해결해야 할 문제점 등에 대한 정보만 제공해주면, 이 프로그램은 스스로 수백가지의 디자인을 제안해준다. 디자이너는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방안을 선택만 하거나, 혹은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조금만 손을 더 보면 된다.
이러한 방식은 디자인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건축에서는 Parametricism 2.0 이라고 일컫는, 여러 변수들을 조합해서 컴퓨터 스스로 그래픽 데이터를 처리하는 새로운 창작 방식이 이용되고 있다. 게임 산업계에서도 가상의 환경이나 대도시를 구현함에 있어서 역시 같은 원리가 사용되고 있다. NoMan’s Sky 는 1800경개의 행성이 존재하는 광활하고도 무한한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 게임 자체는 매우 실망스러웠지만, 게임 개발에 있어서 가상의 환경을 구축하는 방식에 관해서는 앞으로 우리가 맞닥들일 수 있는 상황임을 보여주었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목표와 변수와 제약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결과들을 점검하고 다듬는 것이라는 점이다.
생성적 디자인(Generative Design) 기술이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최근 3~4년 사이에 등장한 강력해진 딥러닝은 근래에 나타나고 있는 흥미롭고 진보적인 인공지능 학습의 혁신적 기술로 이용되고 있다. 구글의 딥마인드(DeepMind)가 만든 Deep Q 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스스로 아타리(Atari)의 게임을 플레이하며 점차 학습을 해 나가고, 심지어는 알려지지 않은 게임의 버그까지 찾아내기도 했다.
딥마인드의 Deep Q 와 그 후속인 AlphaGo (이세돌과 바둑을 겨룬 바로 그 프로그램) 의 진짜 놀라운 점은, 여기에 사용된 인공지능이 게임에 대한 배경이나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누군가가 게임 플레이 방식에 대한 코딩을 해 준 것도 아니고, 순수히 화면의 입력 정보와 물체의 조작, 그리고 점수를 얻기 위한 목적만을 가지고 학습을 해 나갔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게임은 인공 지능이 학습을 해 나가기 위해 이상적인 테스트 환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디자인 영역에서는 어떨까? 여기에서는 큐레이터로서의 역할이 요구된다. 미래에 디자이너들은 그들의 관심과 성향에 따라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디자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훈련을 시켜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Artefact 는 수년간 의료 환경에 대한 디자인 작업들을 해오면서 환자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디지털 헬스 디자인 분야의 주요 현안들에 대한 넓고 심도있는 방안들을 발전시켜 왔다. 마찬가지 관점으로,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들은 충분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에게, 감정에 흔들리거나 편향되지 않는 디자인 솔루션을 찾아내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에 의해 수백만개의 디자인 시안들이 빠르고 쉽게 생산 가능해짐에 따라 디자이너들의 업무 효율성은 눈에 띄게 높아질 것이다. 오늘 당장 필요한 것들도 눈 깜짝할 사이에 수만가지의 디자인 안들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인공지능 도구들이 발전할수록 아마추어 디자이너들이 꽤 괜찮은 - 특별히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 작업물을 손쉽게 만들 수 있고, 이는 전문적인 디자인 업체들의 서비스 가격에 부담을 주게 된다.
그렇지만 아무리 디자인에 대한 장벽이 낮아진다 하더라도, 디자인 업계의 스타 디자이너들은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우리는 90년대 출판 업계의 디자인에서의 비슷한 경향을 이미 경험했다. 테스크탑 출판 소프트웨어가 범용적으로 이용됨에 따라 시장은 몰락해 갔지만, 오히려 수작업 디자인 결과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스타 디자이너들에 의한 독특하고 차별화된 작업에 대한 관심은 증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인공지능이 정말로 놀라운 아이디어로 우리들을 놀라게 할만한 작업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면, 여전히 슈퍼 스타 디자이너들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여전히 높은 디자인 브랜드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다소 시니컬하게 들릴 수 도 있지만, 사람들이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뺏기기 시작하면, 가상 현실 세계 속에서 벗어나 가상 현실과 사물과 경험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도 있다.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는 피해야 하겠지만, 가상 현실이나 증강 현실 혹은 둘의 혼합된 형태의 세계가 다가온다는 것은 오히려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기회일 수 있다. 가상의 세계에서 서로 교류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식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매체 기반에서의 연구가 될 뿐만 아니라 창조적이고 사회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작업으로서 인공지능이 처리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뿐 아니라, 가상 세계를 창조하려는 움직임이 커져갈수록 건축이나 인테리어 디자인, 사물 디자인, 패션 등 과 같은 전통적인 디자인 원칙에 대한 수요가 오히려 더 늘어날 것이다.
인공지능이 디자인 직종을 어떻게 잠식해 나갈지에 대한 담론을 펼치면서, 인공지능이 가져다줄 이점에 대해서는 다소 무시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과 컴퓨터가 함께 작업을 함으로 인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훌륭한 결과물을 내는 경우도 많이 있다. - Michael Hansmeyer의 Unimaginable shapes 같은 작품을 보면 수백만개의 면들과 그 놀라운 형태는 도저히 사람의 능력만으로는 창작해 내기가 불가능하며, 어떤 면에서는 건축을 재정의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예시일 뿐이겠지만, 분명 개인의 창의력을 극대화하고 전문성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개인 인공지능 비서들이 디자인 대가들의 작품과 새로운 영감들에 대한 지식 정보들로 무장을 하고 나타나 끊임없이 우리의 작업에 대한 비판은 물론 개선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문제 해결 로봇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우리가 디자인한 제품을 실제로 만들기 전에 어떻게 동작할지 테스트를 하고 개선점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A/B 테스트 로봇들이 크고 작은 시험들을 계속하면서 지속해서 성능을 향상시킬 것이다.
인공지능의 디자인 직업에 대한 위협은 잠시 접어두고, 인공지능이 가져올 수많은 기회들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 시스템 인터랙션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어떻게 인공지능 디자인 툴을 디자인할 것인지? 미래의 인텔리전트 서비스와 플랫폼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의 창의력과 관계성과 휴머니티에는 어떻게 영향을 줄 것인지?
오늘날의 우리들 뿐 아니라 미래의 세대들에게도 주목해야할 흥미로운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