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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선영 소장 Apr 12. 2022

대화가 통하는 할아버지의 조건

어느 봄날에 만난 할아버지 친구들에 대하여

오늘 나는 그린 마더스 클럽이 된다. 초등학생 아이들의 등교길이 더 안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 우리는 그 역할을 녹색활동이라 부른다. 우리집에 있는 아이들의 등교준비를 먼저 돕고 학교에서 학교로 간다. 가벼운 바람막이 점퍼와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는다. 시원한 봄 아침바람까지 더해지니 어제까지 귀찮았던 마음이 흩어진다. 


아파트를 나와 200미터 즈음 걸었을까. 앙증맞게 피고 있는 산수유가 있다. 같은 노랑이요 같은 봄꽃이지만 개나리의 노랑과 산수유의 노랑이 이렇게도 다르다. 올해 나는 산수유의 노랑이 나는 더 좋다. 산수유의 노랑은 더 밝고 더 가볍다고 느낀다. 금방이라도 팡하고 터질 것 같은 산수유의 생김새. 산수유를 만났으니 나에게도 진짜 봄이다. 아침마다 "0"에서 출발하는 건강관리 어플 속 걸음수가 벌써 1000보를 향한다. 


학교 입구에는 학교보안관 아저씨가 있다. 인사를 나누고 학부모실은 저쪽이라는 수신호를 받는다. 오늘 녹색활동을 같이 하게 될 분들이 속속 들어온다. 가벼운 눈 인사를 나눈다. 아버님이 한분 오셨다. 

'아 저분이 하은이 아버님이시구나.' 어제 녹색활동 조장님이 보내준 문자가 떠오른다. 엄마의 역할, 아빠의 역할 구분하기 보다 부모가 함께 서로를 돕는 것 처럼 느껴져서 반갑다. 


<늦지 않도록 확인 부탁드립니다

정하은 학생은 어머님 대신 아버님이 참석예정입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옷걸이에 걸려있는 녹색활동 지정 복장, 녹색 주머니가 많은 지퍼달린 조끼를 입는다. 노란깃발과 손 호루라기도 챙긴다. 교문 앞 건널목, 아파트 단지내 주요 건널목 3군데로 나누어져 있는 위치 중에서 내리막길쪽 장소로 간다. 아래쪽 건널목에 먼저 나와계신 할아버지들이 계신다. 할아버지들의 복장은 나와 다른듯 비슷하다. 노란깃발도 들고 계신다. 

"안녕하세요? 일찍 나오셨네요?" 


두분의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네니 살짝 웃어주신다. 할아버지들은 학교가 아닌 서울시에서 배정한 인원이라고 하신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좌우를 살피고 건널 타이밍, 멈출 타이밍을 정해 알려준다. 

"잠시만"

"이제 건너도 돼"

"안녕 잘 다녀와"

"좋은하루"


짧고 다정한 인사로 아이들을 응원해본다. 부끄러운듯 인사를 받아주는 아이들이 귀엽다. 에너지가 차오른다. 등교시간 피크타임이 지나고 여유가 찾아온다. 온라인 수업을 병행해서 진행하는 시기라 아이들이 금새 줄어든다. 길이 한산해질 때즈음 반대편에서 녹색활동을 하던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온다. 


"애기엄마 혹시 성씨가 강씨세요?"

"저요? 아니예요 어르신(웃음), 제가 강씨 같은가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인상이 참 좋아요. 밝고 단단하고 예리한 면도 보이고...내가 아는 강씨 성을 가진 친구가 생각나서"

"아 관상을 보시나봐요?"

"성균관대에서 좀 배웠어요. 거기 관상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 있거든요"


관상으로 시작한 대화가 작은 파도를 타고 흐른다.

"아 군인 출신이구만. 그래서 인상이 그랬구만. 이해가 됐어요!"

"인상이 먼저인지 직업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연결이 되긴 하나봐요."

"어르신 그런데 저는 인상을 보고 저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좀 있어요. 조금 더 친근한 인상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너무 친근해도 별로예요!"

"사람들이 자기를 우습게 본다고 스트레스 받아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사람들이 보기에 애기엄마 같은 인상이 부럽지! 그래도 친근한 인상을 주고 싶을 때는 웃어요 많이. 

 웃음  보다 친근한건 없잖우"

(중략)

"아이고 애가 넷이라고. 애국자구만. 요즘 애들하고 얘기를 해보면 다들 너무 영민하고 착해요. 대한민국 미래가 밝은게 느껴져. 잘 키워요. 지금처럼..."


48년 쥐띠, 전직 선생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그렇게 10분즈음 이어졌다.  

"네 선생님 오늘 덕분에 즐겁고 유익했습니다. 건강히 지내셔요!"


그렇게 녹색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또다른 할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5년전 주민센터 논어공부방에서 만난 할아버지 친구. 그분의 타이틀이야 대표님이자 교수님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편안한 할아버지 친구다. 의논할게 있으니 차한잔 하자고 하신다. 같은 동네에 사니 이렇게 만날 수 있어 좋다. 요즘 날씨가 좋으니 차라리 등산로 산책을 하자는 제안이 오고간다. 


그렇게 만난 할아버지 친구. 지난번에 부탁드렸던 전문가 소개를 받고, 봄날씨 꽃이 더 좋아지는 40대, 절이 있는 곳에 기운, 노을이 좋은 이유를 나눈다. 40분 짧지만 충만한 대화. 수많은 존재들 중에서 일로 우연으로 할아버지들을 만나는 내 일상의 부분을 들여다 본다. 나의 할아버지 친구들의 공통점이 뭘까 생각해본다. 

  

생각은 어렵지 않게 정리된다. 그들의 공통점

하나는 상대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요.

하나는 긍정적이고 경청하는 태도요. 

하나는 위트와 진솔함을 통해 나오는 지혜와 성품이라고 느껴진다.


녹색활동을 하면서 만난 할아버지 덕분에 나는 한번 더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 것이 좋을까?  


"그래 나는 청춘들이 이야기 나누고 싶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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