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장대비가 내리 쏟는다.
일기예보에서는 국지성 호우라고 하니 이러다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질 걸 안다.
우산을 챙겨 집 앞을 나서자마자 비가 차츰 잦아진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시물레이션 된 세계라면
일기예보나 신호등처럼 어떻게든 내게 신호를 보냈을 텐데
왜 나는 알아채지 못하고 매번 허우적거리는 걸까
벌써 나이도 많은데 언제까지 학습하고 또 반복하고 해야 하는 걸까
아,
그만 허우적 대고 싶다.
오늘 같은 날,
곧 잠잠해질 것을 알지만
일정하게, 한정된 지역에 내릴 걸 아는 큰 비에 대비해 우산을 챙겨나가는 것처럼
내 인생에도
언젠가 해 뜰 날 올 것을 알지만
지금 내리는 비는 피할 수 있도록 작은 우산 하나 정도는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챙기고 싶다.
가끔 내리는 비를 맞는 건 때론 즐겁지만 내리꽂는 비는 피할 방도가 없더라.
그러니 이제는 어떤 형태로 보내든 간데 그 시그널을 알아챌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싶다.
아,
암흑 같은 마음의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