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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맥타 Apr 26. 2019

바흐 – 아니, 음악의 아버지 말고요

음악의 아버지 바흐, 음악의 어머니 헨델. 누구나 살면서 이런 수식어를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였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정말로 음악의 아버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누군가의 아버지였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여러 음악가들의 아버지였다. 친아버지 말이다.      


J.S. 바흐(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잘 알려져 있다시피 J.S. 바흐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바흐 일가는 수 세기에 걸쳐 다수의 음악가를 배출했는데, 유명한 『그로브 음악사전』의 온라인 판에 개별 항목으로 등재된 인물만 십수 명, 본문에 이름이 언급된 인물까지 합하면 수십 명에 이른다. “바흐 일가(Bach family)”라는 항목이 따로 있을 정도이니 그 규모를 알만 하다. 바흐 집안의 아들들은 물론 사위들까지 음악가인 경우가 많아서 가족 모임을 했다 하면 거의 음악회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고 한다.      


1802년에 포르켈은 J.S. 바흐의 아들들에게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모임 장소는 보통 에어푸르트, 아이제나흐, 또는 아른슈타트에 위치했다. 그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오로지 음악에만 몰두했다. […] 가장 먼저 한 일은 코랄을 부르는 것이었다. 이렇게 경건하게 모임을 시작한 다음에는 그와 반대되는 익살스러운 음악이 이어졌다. 그들은 아주 웃기고 상스러운 내용의 민속 노래를 불렀는데, 즉흥적으로 화음을 붙였고 각 파트의 가사가 서로 달랐다. […] 이렇게 노래를 만들어 부르면서 본인들도 떠들썩하게 웃었을 뿐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배꼽을 쥐고 웃게 만들었다.”**


J.S. 바흐도 그의 자녀들도 이러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아들이라면 당연히 음악가의 길을 걸어야 했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나 삼촌, 형 등 가족 구성원에게 음악을 배우며 음악가로 길러졌다. J.S. 바흐는 두 번의 결혼을 통해 스무 명의 자녀를 얻었는데, 그중 열 명이 생존하여 장성했고, 여섯 아들 중 정신 질환이 있었던 한 명을 뺀 전원이 음악가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잘 자란 두 명이 있었으니, C.P.E.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와 J.C. 바흐(Johann Christian Bach, 1735~1782)였다. 이들의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라면 믿기 어렵겠지만 C.P.E.와 J.C.는 본인들이 활동하던 시기에 아버지보다 더 유명세를 떨친 음악가들이었다. 


C.P.E. 바흐(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


J.S. 바흐의 차남이었던 C.P.E. 바흐는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웠다. 그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독일에서 활동했고, 아버지 못지않게 다작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같은 음악을 한 것은 아니었다. C.P.E.가 활동할 당시에는 작곡가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감상적인 음악, 들으면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리게 하는 그런 음악이 유행이었다. C.P.E.의 세대는 통일된 음악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착착 진행되는 음악보다는 인간의 감정처럼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음악, 감정 표현에 충실한 음악을 선호했다. 그리고 C.P.E.는 이런 음악의 대가였다.           


그러나 감정을 표현한다고 해서 C.P.E.의 음악이 단순하고 가벼웠던 것은 아니다. 그는 감정을 표현하고 그것이 청중에게 전달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그러면서도 아버지에게 배운 음악적 원칙에 충실했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많은 음악가들이 이러한 C.P.E.의 음악을 높이 평가했고, C.P.E.는 하이든과 함께 독일적인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칭송받았다.*** 


C.P.E. 바흐의 ‘뷔르템베르크’ 소나타, Wq.49 No.1, a minor      
C.P.E.는 건반악기를 위한 음악으로 유명했고 그중에서도 클라비코드를 가장 선호했다. 


J.S. 바흐의 막내아들인 J.C. 바흐는 성인이 되기도 전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J.S.가 세상을 떠난 뒤 J.C.는 베를린으로 가서 거의 삼촌뻘인 형 C.P.E.와 함께 기거한다. 그전까지 J.S.에게 음악을 배우던 J.C.는 C.P.E.의 지도하에 음악 공부를 이어갔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로 가서 경험과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1762년, 마침내 런던에서 오페라를 작곡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 문장에 ‘마침내’라는 부사가 필요한 이유는 이 요청이 J.C.의 음악 인생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요청을 계기로 J.C.는 런던에 진출하고, 그곳에 정착하여 ‘런던 바흐’ 또는 ‘영국 바흐’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국제적인 명성을 누린다. 


J.C. 바흐(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음악적으로나 음악가로서 걸었던 길이나 모든 면에서 J.C.는 아버지나 형과는 달랐다. 그는 바흐 집안의 음악가 중 유일하게 오페라를 작곡한 인물이었고, 기악곡을 쓸 때도 복잡한 짜임새보다는 듣기 쉽고 편안한 음악을 선호했다. J.C.의 음악을 들어보면 J.S.나 C.P.E.의 음악보다는 모차르트의 음악과 훨씬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실제로도 J.C.는 모차르트에게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다음은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어렵고 복잡한 음악보다 가벼운 음악이 더 위대할 수 있다며 J.C.의 음악을 칭송하는 부분이다.    

  

가벼운 음악도 위대할 수 있단다. 자연스럽고, 물 흐르듯 흘러가고, 듣기 쉬운 스타일로 쓰면서도 빈틈없이 완벽하게 작곡한다면 말이야. 이런 음악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지도 못할 어려운 화성 진행으로 채운 음악이나, 듣기는 좋지만 연주하기는 어려운 음악보다 훨씬 작곡하기 어렵단다.****    


J.C. 바흐의 오페라 <골의 아마디스> 중 서곡 


음악학자 폴 코닐슨은 자신의 저서 『J. C. Bach』에서 레오폴트가 위의 서신에서 J.C.의 음악에 대조시키는 것이 C.P.E. 같은 부류의 작곡가들이라고 말하면서 C.P.E.가 당시 어렵고 기술적인 화성 진행으로 높이 평가받는 작곡가였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C.P.E.와 J.C.가 각자의 음악으로 서로 다른 위치에서 당대 음악가들의 존경을 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에겐 정말로 위대한 음악가 아들들이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적응이 안 되지만,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세바스찬이 아니고 제바스티안이다. 

**Wolff, Christoph, et al. “Bach family,” Grove Music Online.

***Wolff, Christoph, and Ulrich Leisinger. "Carl Philipp Emanuel Bach," Grove Music Online.     

****Corneilson, Paul. J. C. Bach(Routledge, 2017), xv~x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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