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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맥타 Dec 20. 2018

캐럴은 원래 춤이다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치우자 여왕은 악기를 가져오라 명했다. 그곳에 있는 여성과 남성 모두 캐럴 추는 법을 알고 있었고 그중 몇몇은 연주와 노래에 매우 능했다. 여왕의 명에 따라 디오네오가 류트를, 피암메타가 비올을 잡았고 아름다운 소리로 함께 춤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여왕은 하인들을 물리고 다른 여인들, 그리고 두 청년과 함께 느릿한 템포로 캐럴을 추기 시작했다.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중 '첫째 날'


14세기 이탈리아 소설 <데카메론>의 '첫째 날'에 관한 묘사에서 사람들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함께 캐럴을 춘다. 캐럴을 춘다고? 캐럴은 노래 아닌가? 맞다. 지금 우리가 아는 캐럴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부르는 노래이다. 하지만 원래 캐럴은 14세기까지 유럽 곳곳에서 흔히 추던 춤이었다.


프랑스어로 꺄홀(carole), 이탈리아어로 카롤라(carola), 영어로 캐럴(carol)이라 불리던 이 춤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추는 춤이었는데, 중간중간 발을 구르거나 박수를 치는 동작이 더해지기도 했다.


<데카메론>에서처럼 때로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궁정에서 사교춤으로 캐럴을 추기도 했지만, 캐럴은 서민들이 개방된 공간에서 추는 민속춤이기도 했다. 서민들은 주로 교회의 중요한 축일을 기념하기 위해 캐럴을 췄다. 축일 전날 저녁에 교회 마당이나 도시의 광장 같은 탁 트인 공간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불을 지펴놓고 밤새도록 둥글게 돌며 춤을 췄다.


대략 이런 느낌


춤이 있는 곳에 음악이 빠질 수 없으므로 당연히 간단한 기악 반주가 곁들여졌고, (영상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캐럴을 출 때는 늘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다 같이 합창으로 후렴을 부르며 노래가 시작되면 한 사람이 독창을 하고, 이어서 다 같이 후렴을 합창하는 식으로 독창과 합창이 교대되었다(like 쾌지나 칭칭나네, you know?).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캐럴을 추면서 부르는 노래의 선율과 리듬은 매우 단순했다. 정식 교육을 받은 전문 음악가들이 제대로 된 음악으로 취급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16세기 북유럽 필사본에 수록된 캐럴 'Gaudete' - 실제로 춤을 출 때 불렀던 노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독창과 합창(후렴)이 교대되는 캐럴의 노래 형식을 들을 수 있다.


캐럴을 추는 것은 교회의 중요한 축일을 기념하기 위해 평신도들 교회 밖에서 즐기는 전야제였고 일종의 동네잔치였다. 물론 크리스마스도 포함되었지만 크리스마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한 마디로 시시때때로 모여서 밤새도록 춤을 추며 이 단순하고 중독성 강한 중세의 후크송을 불렀다는 말이다. 그것도 성직자들이 기거하는 교회 옆에서.


저명한 음악학자이자 중세음악 전문가인 크리스토퍼 페이지에 따르면, 12세기의 한 기록에 영국 우스터(Worcester) 교구의 한 사제가 동네 사람들이 교회 앞에서 밤새도록 춤을 추며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불러대는 통에 잠을 못 이루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당연히 서민들이 추는 캐럴은 <데카메론>에 묘사된 것처럼 느리고 우아하지만은 않았다. 흥이 오를수록 목소리는 높아졌고, 나이 든 사람에게는 힘에 부칠 정도로 춤이 격렬해졌다고 하니, 이 사람들이 교회 옆에서 얼마나 요란을 떨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때 사람들이 부르던 후렴구의 가사가 '스웨테 리만 딘 아레'*였는데, 다음 날 이 사제는 미사를 드리는 도중에 '도미누스 보비스쿰'**을 불러야 하는 시점에 밤새도록 들었던 '스웨테 리만 딘 아레'를 불러버리는 바람에 큰 물의를 빚었다. 이 일로 우스터의 주교는 자신의 교구 내에서 캐럴을 완전히 금지해버렸다고 한다. 페이지에 따르면 6세기 스페인에서도 이 춤을 금지했는데, 14세기까지도 유럽 곳곳에서 사람들이 캐럴을 추었던 것을 보면, 그러한 금지 조치가 그다지 효과는 없었던 모양이다. 


14세기 이탈리아의 예배당 벽화에 묘사된 캐럴


이후 캐럴은 춤 없이 부르는 비전례적-종교적 다성음악이 되었다가 여차저차하여 크리스마스 시즌에 부르는 대중적인 노래를 가리키게 된다. 캐럴의 역사는 매우 복잡하고,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러나 몇 가지 확실한 것은 초기 캐럴은 춤이었다는 것, 중세시대에도 캐럴이 크리스마스와 관련이 있었다는 것, 무엇보다 본질적으로 흥겹고 즐거운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영어 단어 carol에는 ‘즐겁게 노래하다’라는 뜻이 있다. 이 단어가 그냥 노래하는 것도 아니고 ‘즐겁게’ 노래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캐럴의 이러한 본질을 잘 보여준다.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에 우리가 듣는 음악의 상당수가 절로 어깨가 들썩이는 흥겨운 분위기로 만들어지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캐럴 한 곡 들으며 어깨춤을 추어보자. 메리 크리스마스!     


Pentatonix, 'O Come, All Ye Faithful '





*Swete lemman dhin are: 중세 영어로 '달콤한 연인이여, 내게 자비를 베풀어주오'라는 뜻.


**Dominus vobiscum: 가톨릭 전례에서 사용되는 일종의 전례적 인사말. 라틴어이며 우리말로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번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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