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탁의 결단
동탁은 늦은 밤 여포로부터 갑작스러운 면담 요청을 받았다.
의아한 마음으로 집에서 여포를 맞이하였다.
여포는 평소와 다르게 꽤 뜸을 들이며 이야기를 바로 시작하지못했다.
더 이상 초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진 않았어서 여포의 긴장한 표정을 보니 또 초선이 무슨 사고를 쳤나하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역시나 초선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여포의 말들은 정말 뜻밖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한참을 여포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동탁은 중간, 중간 참을 수 없는 감정을 얼굴에 들어내기도 했지만 말은 많이하지 않았다.
여포가 돌아가고 동탁은 혼자 와인을 마시며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그는 초선이 아닌 여포에 대한 생각을 했다.
자신의 뜻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
아니아니, 자신이 여포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게 더 정확할 것 같았다.
여포는 자신이 전에 모셨던 대기업의 회장님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 그 회장님은 어찌보면 제국을 건설하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사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같아 보였다고 할까요?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는 것 처럼 보여서 대표들이 힘들어했지만, 항상 대표들이 원하는 결정을 하게 만들었죠. 생각해보면 신기합니다. 비전을 제시한다거나 구성원들이 생각에 귀를 기울인다거나 뭐 그런 소통도 별로 없었죠.
가끔 지시사항을 이해하기위해 의도를 물어보면, 대충 그냥 재밌잖아 이런식의 답변만 하는 엉뚱한 양반이었습니다.
- 정말 빛나는 인재들이 많았는데, 별로 대우를 잘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큰 성과를 낸 직원들이 보상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회사를 떠난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잘해줘도 나갈 놈은 어차피 나가고, 안나갈 놈은 안나갈텐데, 안 잘해주는게 합리적이라는 희한한 논리도 가끔 설파했는데, 정말 이해가 안 갔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재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하여 찾아오면 팔을 비틀어서라도 투자를 하고, 성과를 내면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만한 조건으로 회사를 인수해주었습니다.
많은 부자들이 탄생하였고, 이를 본 다른 직원들은 회사에서 팀을 구성해 창업을 하고 성공한 다음 인수되어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걸 목표로 삼을 정도였습니다.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의 새장에 인재들을 가둔 셈이었죠.
- 요즘 세상은 한 명의 천재가 수천만명을 먹여살리는 세상입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죠. 한 명의 인재, 한 명의 리더의 능력이 과거보다 훨씬 더 중요해졌습니다.
세상이 복잡해졌고, 고려할 사항들이 너무 많기때문에 모든 상황을 정점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한 명이 과거보다 훨씬 중요해졌습니다.
회장님이 그러하듯 초선은 그런면에서 독보적인 인재임에 틀림없습니다.
초선의 언행과 요구가 다른 구성원들에게 박탈감을 주고 잠자고 있던 욕망을 부추겨 조직을 시끄럽게 하는 역기능이 있겠지만,
어쩌면 능력이 있고 성과를 내면 저래도 되는구나, 저 정도 보상을 받을 수 있겠구나하는 목표의식을 자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이렇게 초선의 일을 마무리하는 것은 새를 죽이기위해 새장을 부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라도 새를 죽이면 새장은 다시 지으면 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초선은 다시 살아날것 같습니다.
우리가 법률적 장치를 발동해 초선을 힘들게 만들 수 있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더 높이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녀를 따라 많은 인재들이 제2,제3의 초선이 되기위해 뛰쳐나가면, 다시는 회장님만의 새장을 다시는 만들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 이미 우리가 가진 실력은 다 보여줬습니다. 초선을 좌절시키고 회사밖으로 비참하게 내던지는게 승리라면 이미 승리했다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그녀는 순교자,영웅이 되고 더욱 더 그녀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질텐데, 초선이 새장을 나가 더 높이 날게 하는 것이 우리의 승리라고 할 수 없을겁니다.
사실 초선은 경제적 목적을 초월한 Creator로서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명분으로 삼았기때문에 우리가 내보내지 않으면 새장 문을 열어놔도 새장을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초선과 화해하고 다시 함께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면 회장님의 권위는 떨어져보이겠지만 수많은 초선들을 가둘 수 있는 새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들이 회장님을 만만하게 생각하게 될지는 몰라도 그들이 내는 모든 성과는 모두 회장님의 것입니다.
- 초선을 용서하고, 아니 초선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녀의 요구 조건을 대부분 수용하는 것을 한번 더 고민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그 회장님 이야기를 하자면, 마지막에 뵈었을때 같이 등산을 했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고민이 되면 그냥 힘든 길을 선택해라, 산을 올라가는게 목적이라면 오르막길은 늘 힘드니까."
뭐 20년동안 함께 일하면서 그 회장님에게 들은 말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그럭저럭 말이 되는 충고같은 말씀이었죠.
동탁의 머리속은 복잡했다, 여포에 대한 감정도 오락가락했다.
- 나는 원래 구체적이 설계나 꿈이런거 안좋아하는 사람었는데, 어찌보면 여포에게 위대한 기업이라든가, 제국의 꿈이라하는 것들에 가스라이팅을 당해 이 지경이 된 것도 같고..
- 내가 직접 내렸던 큰 의사결정들이 어쩌면 여포가 원하는 결정들이었던 거 같기도 하고..
동탁이 이러한 상념에 젖어 있는 그 시간에 초선은 사무실에 앉아 곧 시작할 마켓팅 캠페인에서 사용할 소품을 고르고 있었다.
곧 주총이 열려 대표이사에서 해임될 것이 기정사실화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새벽에 혼자 업무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동이 트려는지 창밖이 밝아지고 있었다.
진동이 울려 반사적으로 폰을 집어들었다.
동탁으로부터 문자가 와있었다.
"여포, 밟아줄 수 있죠?"
문자를 본 초선은 짧은 한 숨을 내뱉었다.
뭐라는거야 대체.. 나도 나지만 정말 너도 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