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엄청나게 장기를 많이 두던 시절이 있었다.
급수는 주로 18급에서 15급을 왔다갔다 했지만, 가끔 집중하면 나보다 급수가 월등한 사람에게 이기거나 엄청난 수세에 반전을 만들며 연승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물론 그러다가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반복하고 또 급한 마음에 실험적인 수를 두어 폭망하며 다시 18급까지 내려가고는 했다.
그럼에도 유투브 장기방송을 보다가 내가 제대로하면 한 1단 정도는 될거라고 정신승리를 지속했다.
그러던 중 기본수TV라는 장기유투브의 강의를 보며 부지불식간에 실력이 많이 향상되며 전에 가보지못한 급수까지 단숨에 올라가는 쾌거를 이루었다.
기본수TV의 강의를 통해 배운건 생각보다 너무 단순한 것이다.
그걸 요약해서 설명해보면
- 초반에는 아무것도 하지말고 튼튼하게 진형을 잘 갖추는데만 집중해라, 그러면 상대가 알아서 무너지며 기회를 줄 것이다.
- 진형을 튼튼하게 갖추기전에는 뭐하나 먹어보려고 상대의 진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나의 낮은 점수의 기물(졸이나 상)을 버려 상대의 높은 점수의 기물(차,마 등)을 취할 기회가 있어도 움직이지 마라.
- 원리는 간단함, 인간의 머리로 계산할 수 있는 경우의수는 제한적이라 나에게 유리한 전장(내가 구축한 진형 안)을 선택하여 상대의 수에 대응하는게 압도적으로 유리함
이 방법의 효과는 정말 대단해서 이 원칙을 잘 지켰을때는 내가 도저히 질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이 원칙을 지키는게 생각보다 힘들다고 느끼기는 했다.
원칙을 지키는 것은 대단히 지루하고 재미없는 시간을 견뎌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포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포커대회에 참여해보면 1 Level에는 정말 실력이 안되는 초보자들이 많은데, 이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주변 사람들의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블러프캐치 라던가, 씬 밸류벳 이라던가, 상대를 압박하는 블러프같은 수준높은 스킬은 필요하다.
그냥 좋은 핸드로 좋은 포지션에서 플랍을 보고 잘 맞으면 꽝꽝 벳을 이어나가면 된다.
그런데, 정말 말도 안되게 게임이 안되는 날이란게 있다.
플레이할만한 핸드가 들어오지않아서 몇시간 넘게 아무것도 못해보고 스택이 녹아내리는 날도 있고,
핸드가 들어와 플레이를 하면 빗맞거나 쿨러를 맞아 크게크게 스택을 잃게되는 답이 없는 날도 있다.
지루하고 답답함은 멘탈에 안좋은 영향을 주고 더나아가 합리적 의사결정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더해 초보자들이 바보같은 플레이임에도 운좋게 팟을 가져가는 모습을 여러번 보다보면 속에서는 불길이 솟고, 결국 실수를 저지르며 탈락하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고수는 이러한 힘든 시간을 긴 호흡으로 견디다가 결국 기회를 찾아내 살아남게 된다.
여기에서 배운걸 인간사로 확장시키며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니 또 여러 의미로 깨닮음이 뻗어나가게 되었다.
1. 어차피 인간사, 세상일은 너무 변수가 많아서 내가 통제하지 못하거나 예측하기 어려운게 대부분이다.
2. 내가 내 자리를 잘 지키며 기본에 충실하며 버티다보면, 경쟁자들이 알아서 실수를 하기때문에 기회는 언젠가 온다.